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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하이힐 폭행

by 답설재 2010. 1. 28.

신문기자들은 어떤 일에 대한 기사의 제목을 기가 막히게 잘 붙이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신문사설 제목에 '공중부양(空中浮揚)'이라는 단어가 보여서 '무얼 공중으로 띄우나?' '우리 학교 입학식 때 아이에 대한 부모의 소원을 쓴 작은 종이를 수소풍선에 매달아 띄우게 했는데, 법원에서도 그런 식으로 무얼 띄우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사를 읽어봤더니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글이었습니다.1

 

서울남부지법 형사1단독 이동연 판사는 14일 작년 1월 국회 사무총장실 탁자 위에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외신을 타 '공중 부양(浮揚)'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강기갑 민노당 대표의 혐의 내용 3가지 모두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강 대표는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미디어법 등의 처리 반대 농성을 벌이다가 국회 경위(警衛)들이 민노당이 내건 현수막을 강제 철거하려 하자 경위들 멱살을 잡고 폭행하고 국회 사무총장실에 들어가서는 "뭐 하는 짓이냐"며 보조 탁자를 부수고 사무총장이 앉아 있던 원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원탁을 뒤엎으려 하다가 끝내는 원탁 위에 올라가 껑충 뛰는 이른바 '공중 부양'2을 하기도 했다. 소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회의장실로 달려가 "의장 나오라"고 소리치며 문을 걷어차며 한 시간 동안 내리 소동을 피웠다. 검찰은 이런 그에게 징역 1년6월을 구형했었다.

 

그 '공중 부양' 국회의원에게 징역 1년6월을 구형한 검찰이 옳은지, 무죄 판결을 한 법원이 옳은지, 저 같은 사람은 알 길이 없습니다. 그건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다르기 때문인데, 그러니까 저로서는 '국회의원, 그것도 한 당의 대표가 뭐 그런 짓을 하나?' 싶기도 하고, '오죽 정치를 우습게 하면 그럴까?' 싶기도 하여 결국 알쏭달쏭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도 혼자 생각일 뿐입니다.

그 사설을 읽은 이틀 뒤의 다른 신문에서 반백의 수염을 기른 그 국회의원이 핑크빛인가 한복을 차려입은 채로 탁자 위를 펄쩍 뛰어오른 천연색 사진이 실렸는데, 제게는 그분의 성난 얼굴이 돋보이기도 했습니다.3

 

 

정치권 때문에 '공중 부양'이라는 희한한 단어가 나오자, 이번에는 교육계에서 '하이힐 폭행'이란 단어를 등장시켰습니다. 그러니까 희한한 말을 만들어내는 면에서는 정치권과 교육계가 '막상막하', '난형난제'라고 해도 될 지경입니다.

 

저에게는 하이힐이 참 예쁜 신발, 누가 꾸중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때로는 선정적이거나 고혹적인 신발쯤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다가, 요즘에는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란 프로그램 이름처럼 '만약 운동신경이 좋은 여성이 높이 뛰어올라 그 하이힐로 사정없이 차버리면 쓰러지지 않을 장사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면서 이제 정신 못차리는 남성들은 그런 '하이킥'을 당하는 '루저'로 전락하기 일쑤일 것이라는 연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하이킥'을 어느 여성 장학사님께서 직접 해보이셨다니,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여성 장학사의 '하이힐 폭행'을 조사했더니4

 

 

작년 12월 3일 새벽 4시30분 서울 중계동 대로변에서 서울 동부교육청 여성 장학사 고모(49)씨가 근처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나온 서울시교육청 본청 장학사 임모(50)씨의 머리를 하이힐로 내리찍었다. 경찰서로 연행된 고씨는 술집에서부터 다투던 화가 덜 풀린 기분에 "내가 임 장학사에게 2000만원을 주고 장학사 시험을 통과했고 다른 장학사도 1000만원을 줬다"고 폭로했다. 서울서부지검이 수사 중인 서울시교육청 교직 매매(賣買) 사건은 바로 이 '하이힐 폭행'에서 시작됐다. 얼마 후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임씨 승용차를 수색해 현금 300만원을 발견했는데 임씨는 돈의 출처를 설명하지 못했다. 검찰은 계좌추적 끝에 임씨 차명계좌와 연결된 현직 교사 명의의 다른 통장에 1억원 정도가 들어 있는 것을 찾아냈고, 이 통장의 실 소유주가 임씨 상관이었던 당시의 서울시교육청 장학관(현 고교 교장)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연간 예산이 6조3000억원이고, 1300개 초·중·고교 5만명의 인사를 관장한다. 장학사는 부장교사 또는 교감을 거친 사람 중에서 뽑는 교육전문직으로 일선학교 예산과 인사에 간여(干與)할 수 있는 위치다. 또 장학사를 거쳐야 교장·장학관에 쉽게 승진할 수가 있어 임용(任用)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시교육청은 인사 때마다 뒷말이 많은 곳이다. 인사를 전담해온 어떤 과는 '무슨 무슨 지역 마피아의 돈지갑'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어떤 인사 때는 인사 상납금이 '따블'이 됐느니 '따따블'이 됐느니 하는 말까지 돌아다녔다. 돈을 주고 교감·교장, 장학사·장학관 자리를 꿰찬 사람들이 일선학교나 교육청에서 무슨 일을 할 건가는 보나마나다. 교육보다는 본전 챙기기에 급할 수밖에 없다. 교육청 발주(發注) 건물은 10년만 지나면 금이 간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전국 공공기관과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한 청렴도 평가에서 2008년 꼴찌, 2009년엔 꼴찌에서 세 번째를 했다.

 

2008년 7월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1·2등을 한 사람이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선거비용이 각각 34억원, 30억원이었다. 그 사람들이 교육에 관한 자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선거에 그 많은 돈을 들였을까. 국회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교육계 경력이 없더라도 교육감·교육위원 선거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의 입법(立法)을 서둘러야 한다. 교육개혁의 알맹이의 하나가 교육계 정화(淨化)다.

 

 

이런 사설에 대해 우리 교육계는 -직접적으로 서울시교육청이나 서울동부교육청에서는- 어떤 논평을 낼 수 있을까요?

 

○ "사실과 다르다." - 지금까지 흔히 사용한 수법이기도 하지만, 사실과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그런 해명을 듣고 "에이, 신문이 영 엉터리였구만." 그럴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 "극히 일부(혹은 극소수)가 일으킨 일일 뿐이다." - 그럼,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난다면 그게 무슨 사회고, 그게 무슨 교육이겠습니까. 우리는 대통령부터 나서서 "국격(國格)을 높이자"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지만, 아직 국격(國格)이 뭔지도 모르는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극소수의 문제'라고 하는 건 우리 국민들, 시민들, 학부모들, 학생들을 대상으로 써먹을 수 있는 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 "발본색원(拔本塞源), 환골탈태(換骨奪胎) 같은 용어를 동원하여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발표한다." - 사전을 펴놓고 발본색원, 환골탈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왜 불가능한 일인지부터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고,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동안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발본색원하겠다", "환골탈태하겠다"고 장담했지만 그 다짐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논평하고 해명하는 것이 현명한지, 저는 그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시골 학교 교장이나 하고 교직계를 떠나게 된 것이겠지만, 훌륭한 분들은 이런 경우를 어떻게 설명하고 해명하는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혹 서울교육청 쪽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문건이 있으면 그걸 좀 잘 살펴보고 싶습니다. 교과부 사람들이 학원 심야교습을 단속함으로써 사교육비를 줄여보기 위해 '학파라치'라는, 교육과는 무관한 '기상천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방법(학생들이 뭐라고 할까요? "저기 '학파라치' 온다" 그럴까요?)을 동원하는 걸 보고, 서울 사람들도 비리를 신고하는 '비파라치'(가칭) 같은 걸 동원하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전혀 그럴 의사가 없는 고고한 입장이지만,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들 중에 나쁜 짓을 하는 놈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잘라낼 용의가 있다"며, 자신들이 임용하는 사람들이지만 잠재적인 악질들과 미리 선을 그어두고 살아가려는 또 하나의 기상천외한 방법!

 

 

 

  1. 조선일보, 2010. 1. 16, A27, 사설「법정에서 '공중부양'하면 그것도 無罪라 할 건가」의 첫 문단. [본문으로]
  2. 부양[浮揚]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명사] 가라앉은 것이 떠오름. 또는 떠오르게 함.'이고 '떠오르게 함'에 비중을 두어 해석하는 경우에는 '도대체 무얼 띄워 올렸나?'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본문으로]
  3. 2010. 1. 18, 3면, 기획기사 '法-檢 갈등 심화' 중 사진(설명 : 지난해 1월 5일 강기갑 민노당 의원이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실 원탁 위에 올라가 국회 경위들이 민노당의 국회 로텐더홀 농성을 강제 해산시킨 데 대해 항의하고 있다). [본문으로]
  4. 조선일보, 2010.1.26. A35. 사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