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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노년일기304

"이왕 가는 거 끌려가면 안 돼요" "가황(歌皇)으로도 불리는 나훈아가 추석 때 한 말들을 두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강조한 인물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사실은 상식적인 내용들인데도 평소 잘 펼쳐보지 않았던 성전(聖典)의 몇 구절을 때맞추어 내놓은 것처럼 해석하게 되는 이유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그간 불렀던 노래들과 함께 '테스형'이라는 노래도 불렀다는데 그 테스가 소크라테스라고 해서 가사를 찾아봤습니다('멜론 뮤직').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 2020. 10. 9.
소노 아야코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2 - 계로록(戒老錄)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소노 아야코의 계로록(戒老錄) 오경순 옮김, 리수 2004 전체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자극적인 문장이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부분을 옮겨놓았습니다. 몇 가지 안 되는 것 같았는데 옮겨놓으니까 이렇습니다. * 서문에서 * 나는 극도로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입장에서, 노인이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중증 치매에 대해서는 거의 공포감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그렇게 되면 이미 나는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누군가가 이 점에 있어서 힘들다 해도 그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그게 싫다면 내가 어딘가에 공공연하게 버려질 수도 있겠지만, 정신이 나간 상태이기 때문에 별로 외롭지도 괴롭지도 않을 것이므로 태연할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내.. 2020. 9. 24.
내가 설˙추석 선물을 보내는 곳 교장선생님! 코로나로 전국이 혼란스러운데도 명절 한과는 길도 잃지 않고 잘 도착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염치를 무릅쓰고) 늘 건강하셔서 일 년에 한 번씩만 앞으로 이십 년간 더 받기를 원합니다. ㅋㅋ 그렇게 해 주실 거지요? 올해 한가위에는 긴 장마로 여름 감귤류가 너무 싱거워 따가운 가을 햇살을 담뿍 받은 것으로 기다렸다 보내드릴게요.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엔 가지 마옵시길...^^ 좀 서글퍼서 밝히기가 싫기는 하지만 이제 나는 일 년에 두 차례의 명절 선물을 딱 두 군데만 보냅니다. 한 군데는 교육부에서 근무하며 만난 열한 명의 장관 중 한 분입니다. 그분은 내가 교장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선비처럼 살라"고 부탁했고, 학교를 방문해서 아이들에게 한 시간 강의를 하고 선생님들과 두어 시간 대화를 .. 2020. 9. 22.
외손자와 놀던 곳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저 계곡으로 들어갔다 나오곤 합니다. 그때마다 이 개울을 확인합니다. 녀석이 어디쯤에서 바지를 걷고 물속을 들여다보았지? 할머니는 어디서 녀석을 바라보았지? 그때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그 대화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한 해 월반을 해서 지금은 대학 2학년입니다. 코로나만 아니면 훨씬 더 좋겠는데, 매일처럼 홍대 앞에 나갈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잘 지내기를, 내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신나는 나날이기를 저곳에서 생각하고, 다시 올라갑니다. 2020. 9. 21.
끔찍한 기념 타월 마트에 진열된 수건들은 늘 눈길을 끈다. 몇 장씩 묶여 있는 그 수건 세트를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색상도 무늬도 아름다운 저 수건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 몰래 사서 누가 주더라고 해볼까? 한동안 생각하다가 그 사기(詐欺)는 포기하고 말았다. 아내는 기념 타월을 차곡차곡 챙겨 자신은 아껴 쓰고, 아낌없이 나눠주면서 “지금까지 수건은 사서 쓴 적이 없다”고 하는 걸 몇 번 들었는데 좀 자랑스러운 느낌이 배어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아내와 나)의 삶이 신산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아내가 모아두고 쓰는 그 기념 타월이 우리의 곤궁함을 보여주는 상징은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돈으로 치면 몇 푼 하지 않을 그 기념 타월을 얻게 되면 집에까지 오는 동안 분실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써서 전철이나 어.. 2020. 9. 18.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1-소노 아야코의 계로록(戒老錄)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戒老錄) 오경순 옮김, 리수 2004 이런 것들은 어떤 기준에서 열거된 것일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가령, 젊은이가(혹은 젊은 시절에) 보기에 좋지 않다고 지적하고 싶은 노인의 행태, 혹은 젊은이들이 나중에 자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를 가정하며 떠올려본 것들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전에는 이런 것들을, 실력이 없어서 걸핏하면 이런 건 외워두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런 걸 시험에 내는 교수의 시험 출제 예상 문제를 암기해두듯 하나하나 기억하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은? 일일이 기억할 수 없으니까, 그게 불가능하니까 기억하려들지 않고 그저 전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게 되었습니다. 1. 엄중한 자기구제 * 남이 ‘주는 것’, ‘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 2020. 9. 10.
그리운 지난해 겨울 건너편 아파트에서 저녁 늦게까지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떤 이야긴지도 모른 채 포근함을 느낍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이곳 여름 장마는 지난 8월 29일 토요일 저녁에 끝났을 것입니다. 새벽까지 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서였던지 가벼운 감기에 걸렸었습니다. 아무래도 여름밤 같지 않게 스산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지난 겨울날들의 꿈을 꾸었습니다. 지난겨울은 아무런 생각 없이 지냈습니다. 저녁이 되면 일주일에 서너 번 헬스장에 갔고, 가수 M도 만났습니다. 눈이 아주 큰, 젊은 가수 M. 나처럼 허름한 운동복을 입고 있어서 바라보기도 편했습니다. 그도 우리 아파트에 사는데 사람들은 개그만 A, 탤런트 I 부부 이야기만 합니다. 헬스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나는 올해 내내 가지 못했습니다. 암.. 2020. 9. 6.
'대화'라는 것 이 좋은 길을 젊은 부부가 걸어옵니다.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을 연령입니다. 그들이 내 곁을 지나가며 이야기합니다. 두 마디만 들렸습니다. "1 키로면 겨우 1000미터 아이가, 이 사람아!" "그래, 오르막길 1 키로면 멀다고!" 어느 한쪽이 양해할 것 같지는 않았고, 그들은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판단해서 미안합니다. 어쩌면 그 별 것 아닌 것이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대화란 동등(同等)한 입장에서는 부질없을 때가 있다는 걸 인정할 필요가 있고, 어느 한쪽만이라도 그걸 인정한다면 그쪽이 입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대로라도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2020. 9. 4.
내 친구 준○이 산책을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내 친구 준○이를 보았습니다. 나는 맨바닥에 앉아서 노는 애들을 보면 지금도 부럽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놀았기 때문에 지금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옷이 더러워질까 봐, 그로 인해 일어날 성가신 일들을 피하고 싶어서, 병균이 침입할까 봐, 사람들이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할까 봐, 이젠 그렇게 할 나이가 아니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렇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좋구나!' 하게 되고 순간 그 아이 옷을 세탁할 아이 어머니 생각도 합니다. 일전에는 내가 살던 아파트 12층에 사는 여자애가 저렇게 놀고 있는 걸 봤습니다. 걔네는 아이가 걔 혼자입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걔네 엄마 아빠는 걔를 끔찍하게 여깁니다. 십여 년 전 갓난애 시절부터 쭉 지켜봐서.. 2020. 8. 27.
「카라얀의 지휘」 젊은 시절의 그의 지휘를 비디오로 본 적이 있는데, 실로 시원시원하고 늠름한 몸짓이었다. 70년대 후반까지는 신체의 움직임도, 지휘봉을 휘두르는 방식도 활달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부터, 다리를 끄는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신체의 움직임이 점점 적어지고 지휘봉을 휘두르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갔다. 만년에는 휠체어에서 겨우 일어서서 지휘봉으로 그저 몇 번 공간을 날카롭게 찌르는가 싶더니, 공중을 나는 듯이 조용히 휘두르고는 지휘봉을 쥔 손을 들어 올린 채 멈추고, 왼손을 가슴에 대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이것은 지휘를 한다기보다, 거기에 울리고 있는 오케스트라를 듣고 있는 모습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멋지게 지휘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이니 놀랍다. 이우환(에세이)「카라얀의 .. 2020. 8. 19.
"나를 위에서! 상대를 위에서!" # 나는 코로나 전에도 나는 웬만하면 마스크를 쓰고 다녔습니다. '뭐 저런 사람이 있을까?'('곧 죽을병에라도 걸렸나?') 싶어 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했습니다. '죽다 살아나서 면역력이 떨어져 봐라. 감기 걸린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바람만 불어도 너도 걸린다.' # 코로나가 왔고 마스크를 써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무슨 사정이 있어서 쓰지 않은 사람이 보이긴 해도 대부분 쓰고 다녔습니다. 쓰지 않은 사람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마스크 쓴 얼굴을 보는 것이 일반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 그러던 것이 최근 - 코로나라는 괴물이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 너도 나도 마스크를 벗어던졌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번에도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 바닥인.. 2020. 8. 16.
등산 혹은 산책, 삶의 지혜 뒷산 중턱까지 2킬로미터는 잘 걷는 사람은 사십 분쯤? 내 아내도 한 시간 삼십 분쯤이면 다녀옵니다. 나는 그렇게 걷는 걸 싫어합니다. 땀을 흘리며 올라가는 것도 그렇지만 아주 드러내 놓고 팔을 휘두르며 푸푸거리고 올라가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삼십 분에 주파(?)하겠지요? 그렇게 애써서 올라가면 그다음엔 뭘 합니까? 나는 그 길을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을 하며 혼자 오르내립니다. 올라갈 때는 저절로 과거와 미래의 일들이 떠오르게 되고 내려올 때는 주로 현재의 일들이 생각나고 더러 가까운 미래의 일도 생각합니다. 어슬렁거리는 꼴이니 힘들지도 않고 외로워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내려오며 이 행복한 시간이 언제까지 주어질 수 있으려나 했고, 카페에 들러 건강빵을 하나 사.. 2020.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