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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내가 설˙추석 선물을 보내는 곳

by 답설재 2020. 9. 22.

교장선생님!
코로나로 전국이 혼란스러운데도

명절 한과는 길도 잃지 않고 잘 도착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염치를 무릅쓰고) 늘 건강하셔서

일 년에 한 번씩만 앞으로 이십 년간 더 받기를 원합니다. ㅋㅋ

그렇게 해 주실 거지요?

올해 한가위에는 긴 장마로 여름 감귤류가 너무 싱거워

따가운 가을 햇살을 담뿍 받은 것으로 기다렸다 보내드릴게요.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엔 가지 마옵시길...^^

 

 

 

 

 

 

좀 서글퍼서 밝히기가 싫기는 하지만 이제 나는 일 년에 두 차례의 명절 선물을 딱 두 군데만 보냅니다.

한 군데는 교육부에서 근무하며 만난 열한 명의 장관 중 한 분입니다. 그분은 내가 교장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선비처럼 살라"고 부탁했고, 학교를 방문해서 아이들에게 한 시간 강의를 하고 선생님들과 두어 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건 정말 특별한 선물이었고, 그 선물에 대한 답례는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군데는 나에게 위의 저 문자 메시지를 보낸 분입니다.

내가 교장이었을 때 함께 근무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지금은 퇴임해서 부군과 함께 서귀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2004년 9월, 내가 그 학교 교장으로 간다니까 교육부에서 나오는 인간을 만나기보다는 3년인가 남기고 차라리 명퇴를 하려다가 새로 교장으로 온다는 인간이 도대체 어떤 '물건'인지, 반년 간 확인이라도 해보고 연말에 명퇴를 하든 뭘 하든 하자고 했더랍니다.

교사생활을 하며 그때까지 직간접적으로 겪어본 바로는 교육부 놈들은 톱니바퀴 같아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건 물론이고 철면피에 막무가내, 독종, 어쨌든 인간 말종으로 여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난 그분은 나와 1년 반인가 더 있다가 그 학교 만기가 되었고, 명퇴를 하지 않고 이웃 학교로 전근을 갔습니다.

전근 간 지 얼마 후, 어떤 선생님 편에 나더러 행복한 교장인 줄 알라고 전해왔습니다.

자신이 그만큼 좋아하는 교장이라는 것이었지요.

그 학교 교장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 교장이 "도대체 어떤 교장이기에 그렇게 좋아하는가?" 묻기에 "그걸 어떻게 설명하나? 설명해주어도 파악할 수 없다. 가슴속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으니 여느 교장들은 죽어도 이해할 수 없다"고 대놓고 이야기했더랍니다.

 

나는 정말 저 선생님 때문에 행복했으므로, 당연히 명절 선물을 보내야 하는데 그걸 겨우 몇 년 전에 알아차렸습니다.

그것도 저 선생님이 해마다 쌀을 보내고, 제주도로 이사 간 후에는 감귤을 보내주어서 어떻게 받기만 할 수 있느냐는 아내의 말을 듣고 '아, 그렇구나!'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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