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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한국제

by 답설재 2020. 9. 14.

 

 

 

요즘은 시장을 거의 나 혼자 봐옵니다. '코로나 노출'을 50%로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당연히 한국 제품인 줄 알고 사 온 물건이 독일 제품인 걸 아내가 발견한 걸 보고 한참 동안 참 떨떠름했습니다. 설사 독일 제품이 더 낫다 하더라도 그게 더 낫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무슨 정보를 얻고 싶어도 독일어를 할 줄 알아야 그 회사로 문의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닙니까?

그에 비하면 한국 제품을 쓰면 일단 편리하지 않습니까? 못 미더우면 당장 전화 문의라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 칼손. 장난감 분야에 새로운 소식 좀 없어? 애들한테 사기쳐서 코 묻은 돈 빼먹을 만한 새로운 구상 좀 했냐고?"

칼손은 콧방귀를 뀌었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떠들고 있구먼. 사기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야. 도둑질을 얼마나 극성맞게 해대는지 상상도 못 할걸. 애들이……"

"그래, 그래, 그래. 그래도 이 크로나 주고 한국제 플라스틱 잡동사니를 사다가 백 크로나에 되팔며 손익분기점은 나올 거 아니야."

"우리 공장에서는 그딴 건 취급 안 하는데."

"물론 안 하겠지. 그런데 며칠 전에 가게 쇼윈도에서 내가 뭘 봤더라? 스머프였나? 뭐였더라? 뱅트포슈 뭐시기에서 만든 고급 장난감?"

"말이 끌어야 겨우 달리는 자동차나 파는 사람한테 이런 말이나 듣다니 웃기지도 않아서, 원."

 

 

얼마 전에 읽은 소설『렛미인 1』(욘 A. 린드크비스트, 문학동네, 2009, 207)에서 발견한 문장입니다.

'한국제'를 아주 우습게 써놓은 걸 보고 기분이 묘하긴 해도 아주 나쁘진 않았습니다. 다 옛날 얘기고, 지금은 한국 제품 중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것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며, 이 세상 어디에 살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촌놈이니까요.

 

한국제를 우습게 알던 것을 '옛날 얘기'라고 했지만 그래도 그땐 그나마 괜찮았을 때였지요?

한창 경제개발을 서두르고 있을 때였고 대학을 졸업하기만 하면 '산업역군'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사실은 저 소설에서 "이 크로나 주고 한국제 플라스틱 잡동사니를 사다가"라고 쓴 부분을 읽는데 우리 어릴 때가 떠올랐습니다.

"이거 미제(美製, Made in USA)야!"

어떤 아이가 무슨 물건을 보이며 그렇게 뻐기면 우리는 일단(무조건) 부러워했습니다.

썩 괜찮은 물건을 보면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거 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