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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신기한 이름

by 답설재 2020. 9. 12.

 

2012년 12월 5일에 쓴 원고입니다

괜히 각주를 달아서 이렇게 새로 탑재하게 되었습니다.

댓글은 그 당시 블랙커피님이 대표로 달아주셔서

아래에 옮기고 댓글란을 열지 않았으므로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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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느낌'을 쓴다.

'개인적인 느낌'? 그런 글 아닌 게 어디 있나? 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이런 것이다.

 

"저─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그런 말부터 꺼내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와락 짜증이 일곤 했다.

회의를 하자고 해놓고 개인적인 견해를 이야기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건 회의도 아니다. 말이란, 의견이란 본래 개인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정말로 회의가 뭔지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개인적인 견해를 이야기하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던 것이었을까?

 

라디오를 들으면 꼭 그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그것도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의 부질없는 발언을 들을 수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제일 좋아합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한다면 그게 말로서 성립이나 되는가.

 

그럼 개인적인 느낌을 쓴다는 건 무슨 뜻인가. '책임질 수 없는' '무책임한' '객관성이 전혀 없는'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2012 PR인의 날'

'PR인'은 특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교과서의 날'은 승인도 받지 못한 기념일인데 'PR인의 날'은 정부의 승인을 받았는지 궁금한, 좀 특이한 기념일 같고──하기야 저 유명한 '빼빼로데이'에 비하면 'PR인의 날'은 특이하다는 말이 성립될 리가 없긴 하지만── 그 'PR인'들의 '한국PR협회'는 아무래도 '아하~ 이런 협회도 있구나!' 싶었다.

그 이름들을 어느 신문 인물란의 다음과 같은 사진 설명에서 봤다.

 

"한국PR협회는 15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정상국(LG부사장) 협회장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2 PR인의 날'을 개최하고 우체국쇼핑을 '올해의 PR대상', 이길주 KT 홍보실장을 '올해의 PR인'으로 각각 선정했다. …(후략)…1

 

‘한국PR협회’ ‘한국PR협회’…… 되뇌어 보니까 참 보편적인 이름이다. 그걸 보면 처음 들으면 신기하게 느껴지기 쉽다.

 

 

 

 

서울 중심지 어디에서 '한국속눈썹협회' 간판을 본 적이 있다. 그걸 보면서 '아! 속눈썹은 내가 지금까지 생각한 것에 비해서는 훨씬 더 중요한 것이구나!' 생각했는데, 함께 걸어가던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협회를 참 좋아해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내 제자였다.

 

 

 

 

소설에서 이런 얘기도 읽었다.2

 

"고양이 입양재단에서 보름 전에 데려왔거든. 오늘 재단에서 현장 방문을 다녀갔어. 고양이가 살 만한 환경인지 아파트 시찰을 나오는 거야. 아이 입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곧 입양절차를 밟게 될 것 같아."

"고양이 입양이라니……"

내가 소리 내서 웃자 소피가 말을 이었다.

"상상할 수 없을걸. 책상에서 일하고 있을 때, 고양이가 살그머니 다가와서 발꿈치에 털을 비빌 때의 그 기분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지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이건 프랑스에서의 이야기다. 참 흥미롭다 싶은 것은, 고양이 입양이 아니다.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그건 당연하거나 평범한 일일 것이다. 바로 그 '고양이입양재단'이라는 이름이다. '고양이입양재단'이라니…… 우리나라에도 그런 재단이 있다면, 지식의 축적으로 보아 나는 참 한심한 사람이다.

 

 

 

 

나의 경우에는 지금 '한국교과서연구재단'이라는 곳에 사무실이 있고, 우리 국민들 중에는 "한국교과서연구재단? 무슨 그런 곳이 다 있을까?" 할 사람이 아주 많을 것 같긴 하지만(한국교과서연구재단은 교육부 수첩에도 그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고양이입양재단'이라니, '재단'이란 것이 도대체 뭔지 쑥스럽긴 하지만 이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고양이와 교과서를 똑같은 거리로 가까이하거나 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 중 몇 명에게 부탁해서 '교과서연구재단'과 '고양이입양재단'은 어느 것이 더 특이하게 느껴지는지, 혹은 어느 것이 더 보편적인 것으로 느껴지는지 물어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고양이의 날', '교과서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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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지만 아래 두 가지를 각주로 달았었다.

 

1.문화일보, 2012.11.16, 36면. [본문으로]

2.이화열 에세이─'窓과 거울·내가 사는 다른 곳' 제13회 「소피의 선택」(『현대문학』 2012년 6월호,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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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은 딱 한 분이 달고 갔다.

 

블랙커피

2012.12.08 11:25

 

한국속눈썹협회 ㅎㅎ~ - 아니, 절대로 그 협회를 웃는 것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모차르트를...' - 아마도 브람스나 슈벨트... 를 좋아하는 모임에 참석하게 된

그 전문가가 한 말이겠지욤, 푸하하하~~~

선생님 글 덕분에 주말아침이 유쾌합니다.

 

블로그산책협회 !

 

(답글) 파란편지

2012.12.08 13:56

 

아!

정말로!!!

블로그산책협회는 왜 없는 거죠? '한국블로그산책협회'!!!

누가 '한국블로그재단' 그런 걸 세워도 될 텐데......

 

"저는 개인적으로 모차르트를~"

그렇게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름대로 '아주 잘난 주제'들이었습니다. "너희들 범생이들은 따라오지 말라"는 걸까요? 아니면 "나는 이 얘기를 하고 있지만 아주 아주 고고한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요?

(내 참 더러워서...... 아, 이건 송구스럽습니다.)

 

차가운 날씨지만 햇볕은 곱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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