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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내가 죽었다는 통보(부고)

by 답설재 2020. 8. 31.

 

 

 

'내가 죽었다는 통보', 이걸 생각해봤습니다. 이 순간의 실제 상황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언제 실제 상황이 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듣기 싫다" 하고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말라"고 할 사람이 없지 않겠지요. 그런 분은 흔히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지만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George Bernard Shaw)는 묘비명을 쓰게 한 작가가 있었지 않습니까?

 

사실은 이 정도는 준비도 아니지요. 그냥 생각을 해보는 거지요.

일전에 지인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소천(召天)"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소천? 알고 보니 개신교에서 쓰는 말이었습니다. 하기야 하늘은 날 부를 리 없어서 결코 내가 갈 곳은 아닙니다.

'그럼 내가 죽으면 뭐라고 하지?(누군가 알아서 하겠지만...)'

 

 

DAUM 사전

유의어 사(死), 사거(死去), 사몰(死沒), 운명(殞命), 입몰(入沒), 장면(長眠), 절명(絶命), 사망(死亡)

높임말 작고(作故)

 

DAUM 백과사전

사(死) - 죽은 직후부터 장례를 치르기 전까지를 말한다. 이때는 죽은 이를 사자(死者)라고 한다.

망(亡) - 장례를 치른 이후를 말한다. 이때는 죽은 이를 망자(亡者)라고 한다.

사(死) - 일반 사람의 죽음.

졸(卒) - 대부(大夫)의 죽음.

붕(崩) - 황제의 죽음.

훙(薨) - 제후의 죽음.

불록(不祿) - 선비의 죽음. 녹(祿), 즉 조정에서 주는 녹봉이 끊어졌다는 뜻이다.

 

영평사 템플 스테이 cafe.daum.net/youngpyengsa/Hon7/33

別世(별세) : 세상을 하직한다는 말로 죽음을 뜻함.

棄世(기세) : ①세상을 버린다는, 죽음을 높이어 이르는 말. ②세상에 나아가지 않음. 둔세(遁世).

永眠(영면) : '영원히 잠들다'라는 뜻으로 죽음을 뜻하는 말.

永逝(영서) : '영원히 가다'라는 뜻으로 죽음을 이름.

作故(작고) : 고인이 되었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

潛寐(잠매) : '잠들다'라는 뜻으로 죽음을 이름.

他界(타계) : ①다른 세계, ②저승. 어른이나 귀인(貴人)의 죽음.

昇遐(승하) : 임금이 세상을 떠남, 등하(登遐).

死去(사거) : 죽어서 세상을 떠남.

逝去(서거) : 사거(死去)의 높임말. 장서(長逝).

涅槃(열반) : ①불교에서 일체의 번뇌에서 해탈(解脫)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높은 경지, 해탈. ②죽음. 특히 석가나 고승(高僧)의 입적(入寂)을 이르는 말. 적멸(寂滅).

入寂(입적) : 불교에서 수도승(修道僧)의 죽음을 이르는 말. 귀적(歸寂). 입멸(入滅). 멸도(滅度).

歸寂(귀적) : 불교에서 중의 죽음을 달리 이르는 말. 천화(遷化).

召天(소천) :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 개신교에서는 죽음을 이르는 말.

善終(선종) : 임종 때에 성사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

 

 

더 찾아보려다가 '나중에...' 했고, 대단한 죽음이 아니므로 이 정도 연구로도 차고 넘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을 벌여놓으니까(!) 더 난감합니다.

대부, 황제, 제후, 선비, 귀인 같은 경우와 종교에서 쓰는 말을 제외하고도 남는 말이 많고, 드디어 내 죽음의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사거(死去), 사몰(死沒), 운명(殞命), 입몰(入沒), 장면(長眠), 절명(絶命), 사망(死亡) 등 사전이 제시한 말들은 나도 쓸 수 있는 것들인 것 같고, 카페 "영평사 템플 스테이" 자료에서도 별세, 영면, 영서, 잠매는 아무나 써도 좋을 것 같지만 기세, 작고, 타계는 아무래도 주제넘다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써서는 곤란한 말도 있습니다. "○○○가 장면(혹은 영서, 잠매)했습니다" 하면 받는 이들이 '장면? 이 인간이 어떻게 되었다는 거지?'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가 창궐한 이래 몇 달간 세상이 변하는 걸 보면 이런 걱정은 다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딱 한 가지면 됩니다. 내가 여러 번 죽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파란편지)가 죽었으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죽었는지도 모르고 난데없이(혹은 오랜만에) '핸폰'을 하면 그것도 참 난감할 것입니다. 이런 문자도 그렇지요. "파란편지야! 오랜만이다. 식사라도 한번 하자^^"

 

"나 죽거든 내 핸폰부터 얼른(당장) 꺼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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