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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내 친구 준○이

by 답설재 2020. 8. 27.

내 친구 준○이와 그의 친구

 

 

산책을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내 친구 준○이를 보았습니다.

 

나는 맨바닥에 앉아서 노는 애들을 보면 지금도 부럽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놀았기 때문에 지금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옷이 더러워질까 봐, 그로 인해 일어날 성가신 일들을 피하고 싶어서, 병균이 침입할까 봐, 사람들이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할까 봐, 이젠 그렇게 할 나이가 아니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렇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좋구나!' 하게 되고 순간 그 아이 옷을 세탁할 아이 어머니 생각도 합니다.

일전에는 내가 살던 아파트 12층에 사는 여자애가 저렇게 놀고 있는 걸 봤습니다. 걔네는 아이가 걔 혼자입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걔네 엄마 아빠는 걔를 끔찍하게 여깁니다. 십여 년 전 갓난애 시절부터 쭉 지켜봐서 기억하는 장면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놀고 있는 그 여자애 모습에 걔네 엄마 아빠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이런!

자칫하면 딴애 이야기나 실컷 할 뻔했습니다.

저 두 녀석을 보며 지나오다가 무심코 뒤돌아봤는데 그 순간 준○이가 "어?" 했습니다.

나도 놀랐습니다. "어떻게 지내?"

"잘 있었어요."

"할머니도 엄마도?"

"예~."

"안부 전해?"

기억하기로는 대충 그렇게 하고 돌아서는데 걔 친구가 물었습니다.

"누구야?"

"아~ 전에 나하고 제일 친했던 할아버지야."

"(그 친구가 다시 뭐라고 뭐라고.)"

"코로나 없을 땐 샤워장에서도 맨날 만나고 학교 가는 길에서도 만나고......"

 

몇 발자국 더 걸어오자 걔네 대화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다른 얘기를 했겠지요? 딱지치기 중이었으니까 딱지 얘기? 글쎄요, 알 필요 있나요?

'코로나가 없을 땐......'

'전에 나하고 제일 친했던......'

= '코로나가 없을 땐 나하고 제일 친했던 할아버지'......

 

돌아서 오는 길이 쓸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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