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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엄청나게 큰 엉덩이

by 답설재 2020. 8. 13.

 

 

'무슨 엉덩이들이 저렇게나 클까?'

 

그림을 보는 순간, 삽화(일러스트레이션)였던지 만화(카툰)였던지, 1970년대의 어느 날 신문에서 본 그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여성의 엉덩이를 터무니없이 크게 그려놓고, 그 옆에는 무슨 연구원 혹은 박사의 머리가 기형적으로 빅 사이즈인 남성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이상할 것도 없지만) 유독 여성 쪽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림은 여성들이 비만 상태가 되는 걸 나타낸 건 아니었고 다른 곳은 정상적이고 하필 엉덩이가 빅 사이즈였습니다.

 

의아한 일이긴 하지만 50년쯤(100년이었나?) 후, 우리 인간은 이렇게 변할 것이라는 미래예측 특집 속 그림이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 것 같았는데 사실은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성만 밝히고 성에만 집착하는 여성들이 늘어난다는 건가?' '육체적 활동보다 정신적 활동에 치우져 머리통이 더 커진다는 건가?'......

그렇게 되거나 말거나 내가 나서서 헛소리 말라고 항의할 일도 아니고 국가사회적으로도 당장 큰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살아오면서 그 그림을 수백 번은 떠올렸을 것입니다.

심지어 지나가는 여성을 보고도 '예쁘구나!' 감탄하기보다 '저런  여성의 엉덩이도 그렇게 변한단 말이지?' 생각하다가("그동안 내가 바라본 예쁜 여성님들, 정말 미안합니다") '내가 왜 이러지?' 머리를 저어 제정신을 찾느라고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늙어빠져서 여기에 이르러 다시는 기어오를 수 없는 계곡, 구렁텅이에 빠져 버렸습니다. 남녀 간에 우리가 어떻게 변하든 별 관심이 없게 되었습니다.

TV 속 선남선녀들이, 하필이면 내가 바라볼 때마다 우리네와 다른 생활을 하는 것(어느 날이고 잘만 먹는 장면, 대체로 가볍고 즐거운 토크로 일관하는 장면 등등)에 대해서도 지나친 관심을 갖거나 간섭을 하고 싶은 마음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지냅니다.

TV 속에서처럼 그렇게 살다보면 어떤 사람은 더욱더 늠름해지거나 점점 더 영리해지는 한편, 어떤 사람은 더욱더 섹시해지다가 마침내 엉덩이가 그처럼 엄청나게 커지거나 어디가 어떻게 되는 건지 잘 모르지만 그 또한 나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어쩌면 늠름함이나 지혜로움, 풍만함은 우리가(인간이) 추구해온 기본적인 것들 중의 기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꾸 거기에 눈길이 가고, 거기에 의지하거나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잔설(殘雪)처럼 남아 있는 느낌입니다.

 

내가 뭘 포기하거나 한 건 결코 아닙니다.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버리면 뭐가 남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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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이야기 *

 

저 그림은 모리스 유트리요(Maurice Utrillo: Paris 1883-Dax 1955)가 그린「베르노의 집(La Maison Bernot)」(1924)이랍니다.

블로그 《Welcome to Wild Rose Country》에서 옮겨왔습니다. 그림 아래 부분의 글씨는 불친 헬렌의 사인입니다. 헬렌은 캐나다 로키산맥 기슭에서 마치 신화 속 헬렌처럼 살아가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온갖 진기한 자료를 엄청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 그림(detail)도 물론 헬렌이 직접 가서 보고 "[프랑스 여행 59] 오랑제리 박물관에 소장된 유트리오(Maurice Utrillo) 작품 감상하기"에 소개한 자료에서 가져왔습니다.

이런 소개문도 붙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파리의 몽마르트르 동네의 몽-세니 길/Rue du Mont-Cenis을 그린 그림으로, 1912년에 완공된 성심 대성당/basilica of the Sacred Heart도 보인다. 유트리요는 그가 태어난 몽마르트르 동네를 떠나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엽서에 답긴 장면을 바탕으로, 그가 기억하는 고향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