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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우리 집을 사신 아주머니께

by 답설재 2020. 8. 9.

 

 

 

아주머니!

어떻게 지내시나요?

이제 반년이 지났으니까 우리 집(아, 아주머니 집)에 잘 적응하셨겠지요?

 

제 실내 정원(이런! 아주머니의 실내 정원)도 잘 있습니까?

그 작은 정원의 여남은 가지 푸나무들은 한 가지도 빼거나 보태어지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것들은 제가 그 집을 분양받고 처음 입주할 때 전문가를 초빙해서 만들었거든요.

꼭 심어주기를 기대한 건 남천(南天) 한 가지밖엔 없었고요.

그 전문가가 우리 집(아, 그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이렇게 소파도 없이 책으로 채운 거실은 처음 봤다며

이 분위기의 실내 정원을 만들어주겠다고 한 거거든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물만 주면 되도록 해달라'는 특별 부탁을 했고요.

 

아주머니께서 집을 보시려고 처음 방문하셔서 그 실내 정원을 보시는 순간 "이런 정원에서 차를 마셔보는 게 로망"이라고 하셨을 때, '이 정원의 주인은 이제 내가 아니고 곧 이 아주머니가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게 저에게는 슬픔이었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전 이 정원과 헤어지는 게 슬픕니다!" 하면 아주머니나 제 아내나 뭐라고 했겠습니까?

'뭐 이런 노인이 다 있을까?'

아주머니가 그렇게 생각하시는 동안 제 아내는 그랬겠지요. '내가 이런 인간과 오십 년을 살았다니...'

 

아주머니!

그때 말씀드렸지만 물은 일주일에 한 번만 충분히 주세요. 그렇게 하셔도 절대로 습기가 차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벌레는 창문의 그 방충망만 닫아놓으면 절대 생기지 않을 거고요.

거름도, 글쎄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고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다른 식물을 들이는 건 조심하세요. 자칫하면 어울리지도 않고 괜히 이상한 벌레만 따라올 수 있거든요.

전지(剪枝)는 겨울이었지만 제가 일단 한번 해두었습니다.

남천은 너무 잘라버렸나요? 지금쯤 괜찮아졌을 거예요. 저 녀석은 곧 제 세상인양 뻗어오르곤 하니까요.

남천은 일 년에 한두 번 그렇게 과감히 잘라주시고, 동백은 너무 자르진 마세요. 꽃을 보기가 어려워지거든요.

덩굴은 마구 잘라주셔도 금방 보기 좋게 벋는 녀석들이지요.

 

쓸데없는 걱정을 늘어놓았나요?

새 주인이 어련히 하실까요.

처음 만들고 십수 년 관리해온 사람의 사랑과 미련으로 봐주세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그런 것 같아요.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그런 것에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잠시 그 정원 앞 공간에 앉아 계시면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이렇게 비가 오지 않으면 그 정원의 달빛이 참 좋을 때인데...전 자다가도 일어나 그 집까지 찾아와 준 그 달에게 미안해서 정신을 차리곤 했거든요... 안타깝긴 하지만 달은 다음 달에도 또 뜨니까 기다려보세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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