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중턱까지 2킬로미터는 잘 걷는 사람은 사십 분쯤? 내 아내도 한 시간 삼십 분쯤이면 다녀옵니다.
나는 그렇게 걷는 걸 싫어합니다. 땀을 흘리며 올라가는 것도 그렇지만 아주 드러내 놓고 팔을 휘두르며 푸푸거리고 올라가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삼십 분에 주파(?)하겠지요? 그렇게 애써서 올라가면 그다음엔 뭘 합니까?
나는 그 길을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을 하며 혼자 오르내립니다. 올라갈 때는 저절로 과거와 미래의 일들이 떠오르게 되고 내려올 때는 주로 현재의 일들이 생각나고 더러 가까운 미래의 일도 생각합니다.
어슬렁거리는 꼴이니 힘들지도 않고 외로워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내려오며 이 행복한 시간이 언제까지 주어질 수 있으려나 했고, 카페에 들러 건강빵을 하나 사 갖고 들어갈까 그냥 들어갈까 갈등을 느끼다가 참는 쪽을 선택했는데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걸 보고 자칫하면(빵을 샀더라면) 아내에게 또 한소리 들을 뻔했구나 싶었습니다.
아내는 내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다 짐작하면서도 굳이 물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쉬던 곳'인지, '갈림길'인지, '약수터' 혹은 '오솔길이 끝나는 곳' '나무의자 있는 곳'인지 걸린 시간에 비례해서 적절한 목표 지점을 대어야 합니다.
가령 두 시간이나 걸렸는데 ‘갈림길’까지 다녀왔다고 하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곳이라면 기어서 다녀와도 충분할 시간인데 도대체 그걸 등산이라고 다녀왔느냐는 핀잔을 듣게 됩니다. 아내는 지병이 있는 내가 기를 쓰고 빨리 걷는 것도 경계하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어슬렁거리는 것도 싫어합니다. 나는 아내의 의중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적당히! '체육'이 되게!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 그게 정답인데 '미래'니 '과거'니 하며 어슬렁거리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할 건 뻔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어슬렁거리는 그 산책, 나의 그 '미래와 과거, 현재'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당연히 나의 그 '미래와 과거, 현재'는 아무런 소득이 없는 유치하거나 쓸데가 없거나 산을 내려오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당장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그런 '공(空)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의 그 행복감은 설명하기가 어려운 유용성을 지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다른 사람들은 '등산'을 하는 동안 나는 '산책'을 하는 것이고, 유의할 점은 어디까지 다녀왔는지 아내가 물을 때 그날 걸린 시간에 따라 다녀온 지점을 따로 설정해서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생활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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