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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의 노후·사후

by 답설재 2020. 7. 11.

 

 

 

  십이층 할머니는 내 또래였습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마다 눈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를 휠체어에 태운 그녀의 아들과 인사를 나눴는데 그제야 '우리'(그녀와 나)가 한동안 만나지 못한 걸 알아챘습니다. “가까운 요양원에 모셨는데 오늘 생신이셔서 외출 나왔습니다!” 아들은 가까이 모셨고 외출까지 시켜주는 걸 자랑스러워하며 그렇게 설명했고 그런데도 모든 걸 체념한 듯한 그녀는 눈에 힘이 빠진 채로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하니까 우리는 그만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괜히 그녀를 자주 떠올려보곤 합니다. 정말 괜히!

 

  이층 할머니는 자그마한 키에 늘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만날 때마다 무슨 얘기든 해주었습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꽤나 곱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마주치는 것이 괜히 즐거웠습니다.

  그녀는 외손녀 한 명을 데리고 노는 것이 일과일 때는 그렇게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그랬는데 그 외손녀가 학교에 다니게 되고 틈만 나면 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게 되자 하릴없이 혼자 다녔고 거의 웃지도 않고 쓸쓸해서 그때부터는 내가 자주 말을 걸곤 했는데 어느새 이사를 가버리고 없었습니다.

  나는 괜히 그녀가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내 산책길은 우리 아파트 뒷산 중턱까지이고 그 길은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세 명의 여성을 보았습니다. 새파란 두 분은 멀찍이 서서 한가롭게 걸었고, 한 명은 내 또래였는데 그 내 또래가 헉헉거리며 연신 아이를 기쁘고 즐겁게 하는 말을 걸며 유모차를 밀고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내 또래는 내가 지나가자 아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나도 저렇게 자랑스러워했었지…’ 생각했고 지금 생각하니까 그렇게 자랑스러워한 것이 잘한 일인가 의문이었고 지금 같으면 자랑스러워할 것인지 더 생각해보고 판단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덧붙일 것은, 유모차의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하고 가고 싶은 듯한 눈치였습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는 그런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가령 젊은 여성은 어슬렁어슬렁 점잖고 여유롭게 따라다니거나 할 일이 없어서 우두커니 바라보고 서 있는 동안 내 또래 여성은 정성스럽게 유모차를 밀거나 아이를 기쁘고 즐겁게 해 주느라고 아주 혼이 빠졌구나 싶은 모습….

  커다란 유모차에 애완견 혹은 반려견일 앙증맞게 생긴 세 '아이'를 태워서(그 아이들은 그 안락한 유모차 안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뒤뚱거리며 걷는 내 모습이 볼썽사나웠겠지요?) 아파트 이곳저곳을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새댁도 보았습니다. 나는 어지럼증이 좀 있어서 아내는 자주 "그러지 말고 지팡이를 하나 구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좀 더 지나서 명실 공히 노인이라고 할 수 있게 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렇지? 유모차를 밀며 다니거나 휠체어를 타지는 않아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생각대로 될지는 살아봐야 알 것입니다.

 

  나는 내 오른쪽 볼, 왼쪽 눈 아래에 생긴 검버섯들이 내가 봐도 보기 싫긴 하지만 그것도 다 나의 세월을 보여주는, 결코 부끄럽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되었지만 그때 함께 근무한 어느 여성이 머리 염색(물론 검게; 내 생각은 언제나 ‘왜 하필 검게?’)은 하지 않더라도 그 검버섯만은 제거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녀에게 콧방귀를 뀌어주고 그걸 그대로 두었더니 점점 더 자라서 지금은 아주 제 세상인양 더 넓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이 검버섯을 정말 제거해버려야 하나, 심각하게,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어 널브러져 있을 때 내 자식들 중 누구든, 내 손자 손녀 중 누구든, 잠시 내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다른 시체보다 더 추하다거나 무섭다고 여기지나 않을까 걱정스럽게 된 것입니다.

 

  엄마는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르면서 외할머니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어떤 때는 "잘 지냈어요, 엄마?"라고 했고, 어떤 때는 "보고 싶었어요, 엄마. 날씨가 아주 추워요!"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계단 끝에서 외할머니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손목에 있는 커다란 사마귀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이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입, 긴 턱, 얼굴에 난 털이 무서웠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엄마의 양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외할머니는 긴 잠옷과 긴 양모 조끼를 입은 채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커다란 침대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미소를 지으며 마치 자신을 즐겁게 해 달라는 듯 쳐다보았다.

 

  오르한 파묵의 에세이 「창밖을 내다보다」(『다른 색들』 민음사, 2018, 616)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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