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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알 수 없는 분노

by 답설재 2020. 7. 4.

구로동 찻집에서 본 그림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푸아예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함께 그때의 대화를 떠올리면,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삶의 공허함과 무의미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과 달리, 이 세상의 아둔함, 더 정중하게는 비논리를 슬플 만큼 경솔한 행동이라고 이해했고, 여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으며, 뿐만 아니라 웃으며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했다.(231~232)

 

* 소설 『순수 박물관』(오르한 파묵)에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이라는 표현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그때의 대화를 떠올리면, (...)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삶의 공허함과 무의미함을 느끼게 된다."

삶의 공허함, 무의미함?

나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만큼 긍정적이었나? 천만에요! 사는 데 정신이 팔려서 이 생각 저 생각할 겨를이 없었거든요.

게다가 '많은 세월의 저편에는' 삶에 주눅 든, 빛나는 세상에서 비켜선 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 비논리라니요! 내가 못난이어서 그렇지 세상은 빛나는 곳, '매우' 합리적인 곳이었습니다.

매우? 그렇게 표현하면 무책임하고 추상적이라면 '거의'라고 해두겠습니다.

우선 법률이 있는데다가 그 뒤에는 도덕도 있고 철학도 있고, 게다가 교육과 종교도 있었습니다.

어쩌다가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은 단죄되었습니다.

어떻게 서슬 푸른 법률과 어마어마한 도덕을 외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법률과 도덕을 지원하는 철학과 교육, 종교는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벌면 되고, 그렇게 돈을 벌면서 혹은 그렇게 번 돈으로 남을 괴롭히는 건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고, 권력도 마찬가지여서, 말하자면 국회의원이든 판사든 의사든, 교사든 교장이든, 어쨌든 모두들 짐승이 아닌 사람이라면 제각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혹은 해야 할 일을 선택해서 혹은 맡겨진 대로 본분을 다하면 그만인 곳이 세상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 세상은, 내가 아직 일천해서 깨닫지 못했고, 어리석어서 누구에게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에 그렇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빛나는 기준(基準)이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 그렇게 좋았던 나의 세상은 '어?' '이게 아닐 텐데...' '이게 아닐 텐데...' 하는 사이에 하나하나 망가져 왔습니다.

내가 세상을, 세상의 이치를 옹호할 겨를도 없이 힘센 사람들이 판을 치는 어지러운 세상이 되어갔습니다.

법률과 도덕, 종교와 교육이 있는데도 이것저것 술술 새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인간들이 있었습니다.

도덕과 인륜 같은 건, 종교와 교육은, 인성교육진흥법 같은 건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아해졌고, 심지어 어떤 분야에서는 그걸 담당하는 인간이 선두에 서서 세상을 망치려 드는 경우도 있고, 어떤 나라 대통령(혹은 수상)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여서  사람들이 그런 인간을 지도자로 뽑았다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 마침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바보였나?'

'세상은 본래 이런 곳이었는데 내가 속은 것인가?'

'그렇게 속상해 할 일은 아닌가? 그나마 지도자들이나 제정신인 사람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해서 조금씩 개선되어 오길 망정이지 그냥 두었더라면 완전 쓰레기장이었나?'

..............

'주제에 속 끓이지 말고 그냥 두면 되는 것일까?'

 

* 그런데도 불쑥불쑥 화가 날 때가 없지 않습니다.

편안해 보여야 할 늙은이의 얼굴이 자꾸 험상궂은 얼굴로 변해갑니다.

아프리카 어느 파라오의 아름답고 온화한 조상 사진도 붙여놓고, 죽기 얼마 전 이젠 '뉴스 아워'를 시청하지 않겠다고 한, 지구 온난화와 중동 문제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은 내 몫이 아닌 미래이기 때문이라고 한 올리버 색스의 사진을 붙여 놓은지 꽤 오래되었는데 아무런 효과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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