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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시계 고치기

by 답설재 2020. 6. 25.

 

 

 

    1

 

대개 여기저기서 선물 받은 것들입니다. 나도 저것들도 결국 허접해졌습니다. 나처럼 처음부터 허접한 것도 있었습니다. 허접한 나는 일쑤 허접한 그것들을 만집니다. 건전지를 갈아 끼우거나 0점 조정하듯 시간을 맞추고 게으름을 피운 침이 있으면 강제로(시침이 게으름을 피웠다면 분침을 붙잡아 고정시킨 채로) 좀 돌려주는 정도입니다. 건전지만 갈아 끼우면 되는 시계인데도 추가 달려 있으면 수평도 잡아줍니다. 기껏 그 정도지만 누가 보면 '이상하네. 허접한 사람이 저걸 고치네' 할 것입니다.

 

곤혹스러운 일은 시계 고치는 꿈을 꾸는 것입니다. 꿈속에서는 결코, 단 한 번도 시계를 고쳐놓은 적이 없습니다. 꿈이 시작되면 ‘아, 또 이 일이 벌어졌구나!’ 생각합니다. 가만 두었는데도 부속품들이 와르르 쏟아져 산산이 흩어지기도 하고, 시침 분침 초침이 제작기 떨어져 나뒹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포기해야 할 일이 뻔한 줄 알면서도 그것들을 맞추어보려고 갖은 애를 쓰며 헛된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 시간이 정말 싫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해야 하는 내 처지가 곤혹스럽고 딱한 것입니다.

 

 

    2

 

시계 고치기는 중학교 때 시작되었습니다. 읍내 중학교에 들어간 나에게 이웃 사람이 시계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외출할 때 더러 차고 나가는 손목시계를 우리 아버지에게 보여주며 아주 잘 맞는다고, 웬만하면 맞는다고 했습니다. 그 고물을 팔아먹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 산골 벽지(僻地)에서도 몰래 남의 물건에 손을 대거나 빌려간 물건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가 돌려달라고 하면 예측한 대로 그런 걸 빌린 일이 없다고 우기는 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허연 수염이 두어 자는 되는 점잖은 노인으로 늘그막에 시각장애인에게 새장가를 들었는데 그 부인은 그 노인에게 열두 번째로 시집을 왔다고 했습니다. 시집만 가면 신랑이 죽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엇길로 새겠습니다. 나는 그 중고 시계를 물려받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값을 톡톡히 지불했겠지만 시계는 예상대로 고물이었습니다. 그냥 던져두면 하루에 두 번 맞는 시계여서 다른 시계가 눈에 띄면 그 시계를 보고 내 시계를 맞추는 것이 나의 주요 일과였고, 마침내 시계의 뚜껑 그러니까 둥근 유리가 빠져버리고 시침 분침 초침이 나뒹구는 꼴이 연출되기에 이르러서는 유리판이나 세 가지 침이 분실되는 일이 발생할까 봐 조바심이 나서 다른 일에는 몰두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뚜껑이 빠지거나 침들이 나뒹굴면 나는 기어야 그걸 제자리에 맞추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러면 하룻밤쯤은 아주 순식간에 흘러갔고, 날이 갈수록 더 자주 그렇게 했습니다.

 

나에게 고물을 물려준 그는 나중에 보니까 멋진 새 시계를 차고 있었습니다.

휴우~ 사기꾼!

 

 

    3

 

나의 중학 시절은 그런 몇 가지 구질구질한 일로 채워지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는 일이 곤궁하거나 하면 꼭 시계 고치는 꿈을 꾸었습니다. 태엽시계는 사라져 버리고 건전지만 넣으면 단 1초도 틀리지 않는 전자시계가 나왔지 않습니까? 굳이 명품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을 뭐라고 할 이유는 없지만 만 원짜리 시계도 잘만 맞는데 굳이 비싼 시계를 가져야 할까 싶어 하는 걸 나무랄 이유도 없는 시대에 밤새 시곗바늘을 제자리에 끼우는 꿈이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하! 다른 꿈도 있습니다. 수없이 찾아갔던 어느 친지의 집, 암기를 혐오하는 나는 그 길을 암기해 놓지 않고 매번 다른 길을 선택해서 가물가물한 길을 따라 광야를 헤매거나 동네에 이르러서는 부엌 아궁이를 통과해서 나가는 등등 온갖 고생을 다 겪고서야 도착하는 것이었고 그래 봤자 그 친지는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그 가족들로부터 노숙자들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수준의 식사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도 나는 다음에 또 그 집을 찾아가는 꿈을 꾸는 것이었습니다.

천 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천신만고 기어 내려오다가 마침내 핍진감에 호소하여 억지로 꿈에서 깨어나야 하는 지긋지긋한 밤들도 있었고, 다시 그 길을 올라가야 하는 지긋지긋한 밤들도 있었습니다.

 

 

    4

 

알베르 카뮈가 나의 이런 꿈 얘기를 들었다면 "시지프 신화"를 읽으라고 했겠지요?

 

시지프가 부조리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당신은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의 열정뿐 아니라 고통으로 인해 그는 부조리의 주인공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그의 경멸, 죽음에 대한 증오, 삶에 대한 열정이 그에게 무(無)를 성취하는 데에 온 존재를 써야 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형벌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 지상에서의 열정을 위해 치러야만 하는 값이다.

 

이 문장을 보여준 카뮈는 당혹스러워하는 나에게 이어서 그 에세이 마지막 부분의 다음 문장을 보여주겠지요?

 

나는 그 산기슭에서 시지프를 떠난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짐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을 부정하고 바위를 밀어 올리는 보다 고귀한 성실성을 가르쳐준다. 그 역시 모든 것은 좋다고 결론짓는다. 이제부터 주인 없는 이 세계가 그에겐 결코 메마르게도 헛되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 바위의 원자 하나하나, 밤으로 가득한 그 산의 광석 조각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써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꼭대기를 향한 그 투쟁 자체가 한 인간의 가슴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꿈조차 허접한 꿈을 꾸는 허접한 나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야 마땅하겠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인간이란 아무리 허접해도 그리 간단하지는 않으니까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다시 그런 꿈을 꾸어야 한다면 즐거워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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