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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언년이의 죽음

by 답설재 2020. 6. 16.

그때 그 거시처럼 보이는 저 덩굴들

 

 

 

 

언년이가 죽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어보기도 그렇고 찾아가 볼 용기도 없지만 미심쩍은 점이 없지 않았다.

언년이를 괴롭혀오던 거시는 며칠 전 모조리 축출되었는데도 언년이가 죽었다? 그게 말이 되는가?

언년이네 아버지가 주변 사람들 말에 따라 작심하고 장날 그 핑크빛 회충약 1인분을 사다 먹였고, 언년이는 음식물 찌꺼기는 눈 닦고 봐도 보이지 않는, 순전히 하얀 거시만 소복하게 세 무더기나 쏟아냈다고 했다.

언년이가 쏟아냈다는 거시 세 무더기를 내가 직접 보았던가?

본 것 같다.

거시 무리가 서로 속으로 들어가려고 우글거리는 모습,

착하게 살아가는 척 위선을 떨다가 지옥 바닥에 떨어진 인간들이 벌거벗고 우글거리듯 혹은 수십 마리 뱀이 뒤엉켜 축구 공보다 더 크고 둥근 덩어리를 이룬 채 잠시도 쉬지 않고 서로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려고 우글거리며 서서히 굴러가던 그 떼뱀처럼

허연 거시들이 우글거리는 그 모습을 나는 다른 데서는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환영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윗동네 여자애가 엉덩이를 드러내고 뒤보는 모습을 보았겠나 생각하면 아무래도 ‘보았을 리 없음’(혹은 '사실무근')이 사실일 것이다.

그럼 그와 같이 우글거리는 거시들의 모습은 어떻게 해서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되었을까?

모를 일이다.

어쨌든 밖으로 나온 거시는 당연히 다 죽었을 것이고 그것들이 언년이 몸속으로 도로 들어갔을 리 만무하다면 언년이는 건강해졌어야 옳지 않은가.

그런데 언년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나는 칠십 년 전의 언년이의 모습을 지금도 떠올릴 수 있다.

그 애는 말이 없었다.

잘 움직이지도 않았다.

우리가 놀고 있는 걸 앉아서 지켜보기만 했고 그러다가 배가 아프면 낯을 찡그리다가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저렇게 해서 어떻게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겠나 싶었고, 그런 언년이를 우리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다.

언년이는 본래 그런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언년이가 죽다니…

 

언년이는 빈소도 없이 바로 떠났다고 했다. 나는 그 사실도 좀 섭섭했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빈소조차 없을까?

 

그러던 어느 날, 언년이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역설하는 어른을 보았다. 아니, 그렇게 얘기하는 어른들 곁을 지나가다가 엿들은 것이었다.

배에 거시가 가득 차 있을 때는 밥을 먹으면 그 거시들이 모두 빼앗아 먹었고, 밥을 제때 먹지 못하면 거시가 언년이를 괴롭혔고, 밥을 제때 먹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어서 언년이는 늘 배를 움켜쥐고 살았다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는 거시가 배를 가득 채우고 있을 때는 그 불룩한 배가 그나마 힘을 낼 수가 있었는데, 거시가 다 떠나자 배가 갑자기 너무 홀쭉해져서 언년이는 혼자 힘으로 일어서기는커녕 일어나 앉을 수조차 없어서 며칠 동안 누워 있다가 그 길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냈다. 거시는 절대로 한꺼번에 축출해서는 안 되는 것이므로 핑크색 회충약 1인분을 한꺼번에 다 먹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어느 날 새벽, 한창 잠을 자고 있던 나를 깨워 휘발유를 마시게 한 우리 아버지의 그 처방이 차라리 더 합리적이었다. 나는 그즈음 자주 배가 아팠고, 그렇게 아픈 배는 양귀비 잎을 찢어 넣어 비빈 밥으로는 다스릴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휘발유를 왜 마셔야 하는지 까닭도 모르는 채 마시긴 했지만 나의 아버지는 언년이네 아버지보다 현명하다는 걸 확실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었다.

 

나는 이 일을 잊은 적이 없다.

채소를 볼 때마다 생각했고,

기생충이라는 단어를 보면 더 분명하게 생각했고,

남에게 기생해서 산다고 해도 좋을 사람이 바로 그 남을 손가락질하는 희한한 일을 보면 세상의 일들을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지 감당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고--부모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단물을 다 빼먹고는 뭐가 섭섭하다고 등을 돌리는 자식 이야기도 그 기생충 느낌을 주었고,

생고기를 덥석덥석 집어삼키는 운동선수 출신을 보면 요즘은 우리의 뱃속도 어느 정도 약물에 중독된 상태여서 저렇게 먹어도 기생충 따위가 자리 잡을 수도 없으므로 괜찮을 것이라는 주제넘은 걱정을 하면서 그럴 때도 언년이를 떠올리곤 했다.

 

그렇기만 하면 괜찮았을 것이다.

거시와 생사를 함께한 언년이의 어처구니없는 일생과 내가 휘발유를 마신 사실은 나를 결코 자유롭게 해주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잊지 못해서인지 남들 앞에서 의젓하기가 어려워서 자주 주눅이 들곤 했다.

그 거시가 언년이 목구멍까지도 올라왔을 것 같았고, 자칫하면 나에게도 그 꼬락서니가 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것일까?

그래서 나는 어깨를 펴고 앉기가 어려웠고 자주 주눅이 들어 살아야 했을까?

내게 닥친 일들이 한없이 억울한데도 왜 그걸 설명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는지, 젊어서는 저승에 가서라도 하소연해야지 했는데 왜 이제 와서 뭘... 차라리 이승에서 일찌감치 포기해버렸는지, 왜 아예 다시는 이승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 다짐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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