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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082

쇼스타코비치,「왈츠」Chostakovitch, Valse No.2 Ⅰ 돌아가야 할 시간, 무료하겠지만 이제 그만 만나야 하는데…… “춤 한번만…….” 하던 그(그녀)가 생각날 것 같지 않습니까? 혹은 이미 “사랑한다”고 말해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그녀)가 돌연 별로 충분하지 않은 인격의 어떤 남성(여성)과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시간의 주체할 수 없었던 당혹감, 질투심 같은 것이 떠오를 것 같지 않습니까? 혼자 자동차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담배도 피우고 한숨도 쉬고 어려운 일 귀찮은 일 잠시 즐거웠거나 기뻤던 일 두고두고 쑥스럽거나 부끄러웠던 일을 떠올리기도 하고 들리는 대로 뉴스나 토크쇼 음악도 듣습니다. 신문에서 제목이라도 봤던 일들을 언제나 자세히 별일 아닌 것들까지 합쳐서 꼭 “큰일 났다!”는 투로 전해주는 뉴스를 들으면.. 2008. 8. 4.
‘이메일 막는 회의’와 댓글을 보고 싶은 욕구 제 이메일 박스에는 ‘학리(鶴里)’ 선생께서 더러 오고 있습니다. 그분 메일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Moonlight'이라는 제목으로 아름다운 달 사진들과 함께「월광 소나타」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만 보려면 Esc 키를 누르면 된다’는 멘트 아래 적힌 사연은 “이곳에 .. 2008. 7. 24.
축전 (Ⅱ) 지난해 가을에 ‘전근 축하 전보와 편지’라는 제목으로 쓴 글은 요즘도 더러 읽히고 있는 걸로 보아 ‘축전’은 블로그 독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소재인 것 같아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지난 3월에 고려대학교 최광식 교수를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신라사를 전공한 사학자로, 중국의 동북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한 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로 활동했기 때문에 재단 설립·운영의 담당관이었던 나는 그와 자주 만나야 했습니다. 그는 매우 소탈하고 선이 굵은 학자입니다. 동북공정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워지고 여러 곳에서 강의나 회의 요청이 늘어나자 더욱 바빠져서 잠잘 시간이 부족하다며 승용차를 두고 주로 택시를 타고 다니며 잠깐씩이라도 눈을 붙인다고 했습니.. 2008. 7. 2.
비만(肥滿)에 관하여 ■ 비장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비만관리형 걷기 모습 비만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누구나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이 얘기를 우리 학교 홈페이지의「학교장 칼럼」에 써보려고 했는데, 워낙 조심스러워서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이 블로그에만 쓰기로 했고, 이렇게 결정하고 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지난번에는 보건소에서 고학년을 대상으로 체지방검사를 해주겠다고 해서 ‘얼씨구나’ 하고 당장 승낙하고 제가 나서서 비디오 인터뷰까지 해주는 등으로 온갖 친절을 베풀다가, 검사가 거의 끝날 때쯤 “비만인 아이 하나를 골라 인터뷰 좀 하자”고 해서 제 표정을 싹 바꾸었습니다. “안 됩니다. 그건 안 됩니다!” 냉정하게 자르고 나니 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누구를 촌놈쯤으로.. 2008. 6. 27.
고백(Ⅰ) : 문학가들의 거짓말(?)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지시고, 평원에는 바람을 풀어 줍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가득가득 하도록 명해 주시옵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녘의 낮을 주시어, 무르익는 것을 재촉하시고 무거워가는 포도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주소서, -- 이제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 것이며, 깨어 앉아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나뭇잎이 구를 때면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하게 방황할 것입니다. 릴케 「가을날」 가을만 되면 "릴케, 릴케,……" 해서(가을이 오면 신문에도 이 시가 실려 우중충한 지면을 가을빛으로 물들이기도 해서) 아예 릴케 시집을 샀습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걸핏하면 "이순신, 세.. 2008. 5. 30.
삶의 기록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어느 고인(故人)의 진료기록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진료비 상세내역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딱 한 페이지에 기록된 품목명만 해도 다음과 같았습니다. 크레아타닌(나375), *전해질종합검사, 소디움(나트륨)나379, 포타슘(카디움)나379, 크로라이드(염소)나3, 혈액총이산화탄소함량, C-반응성단백정량시험, *그람염색및비뇨기, 직접도말염색(나400가), 미생물배양동정약제감, 미생물배양동정약제감, 간침조직검사(나500가), 판독료(큰장기), BIOPSY대표수가CODE, OTHER, 면역조직4종(나55), OTHER, CA-19-9(나-423), 알파피토프로테인(나- ), 태아성항원(나422), 요검사응급(나3), 요현미경적검사(나4), *CBC+DIff(응급), 백혈구수(나10.. 2008. 5. 27.
지상에서의 변함없는 사랑 “영감, 이제 그만 돌아가요.”“응, 그럴까? ……. 그러지.”“아무리 깡통이지만 무겁잖아요, 날씨도 차가운데. 그만해도 빵 몇 개는 사겠어요.”“자꾸 눈에 띄니까 하나라도 더 줍고 싶네. ……. 곧 할멈 당뇨병 약도 더 사야하고…….”“오늘은 어디서 자든 교회엔 가지 말아요. 그 집사라는 분 말이에요. 아무래도 나쁜 사람 같지 않아요?”“뭐가?”“아니, 어떻게, 남의 일, 남의 자식 얘기라고 그렇게 막말을 할 수 있어요? 그래, 우리 애가 그렇게 보여요? 우리 돈 팔천만 원 가로채고 제 부모 버릴 사람으로 보인단 말이에요? 그 애가 알면 얼마나 맘 아프겠어요?”“할멈도 참,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요. 다 우리 처지 딱하게 여겨서 하는 말인데…….”“그래도 그렇지. 듣는 사람 입장도 생각해야지. 한인회.. 2008. 5. 11.
나가노(長野)의 추억 후쿠오카의 이 영사가 그렇게 들어앉아 있지만 말고 놀러 좀 오라고 사정을 하는데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제 밤 메일에는 이렇게 썼습니다. “요즈음 이곳 산과 들에는 먹거리가 ‘천지’입니다. 대나무밭에는 죽순이 즐비하고, 논둑 밭둑에는 마늘만한 달래가 한없이 깔려 있고, 머위도 아주 좋아 욕심내지 않고 먹을 만큼만 따옵니다. 지난주에는 더덕을 한 자루나 캐왔습니다. 참 좋은 계절입니다. 산나물을 먹을 줄 모르는 민족들과 살고 있으니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즐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1997년 11월에 열흘간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도쿄에 있는 일한문화교류기금이 초청하고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주선한 교사연수단의 일원이었습니다. 연수단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20명으로 구성되었고, 교육부에서 근무한다고 내가 단장.. 2008. 5. 1.
세 월(Ⅱ) 지나는 길의 개나리가 이야기합니다. "봐, 노랑이란 바로 이런 색이야." 누군가 모를 무덤가에는 진달래가 곱습니다. 멀리에서 복사꽃도 담홍색의 진수(眞髓)를 보여줍니다. 복사꽃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1960년대나 70년대의 그 정서로 살아가고 있는데, 어쩌다가 나만 이렇게 멀리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봄꽃들은 잎보다 먼저 피어나 곧 아지랑이 피어오를 봄을 ‘희망’만으로 이야기하지만, 나처럼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하려는 사람에게는 T.S. 엘리엇의 말마따나 그 희망이 잔인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어린애들이나 소년소녀들은 저 꽃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이란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얼굴이 무너지고 마음이나 정서도 그만큼 누추해져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2008. 4. 9.
세 월 (Ⅰ) : 나의 일생 살다 보니까, 산다는 것의 리듬이, 생각 없이 자고난 겨울날 새벽 창밖에 쌓인 눈의 경이로움 같은 것으로 느껴질 때도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겨울이 와도 그만이고 가도 그만이고, 그래서 플라타너스 -가로등을 배경으로 서 있는 봄날 초저녁의 그 싱그러운 자태- 를 보아도 별로 생각나는 것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어느 날 이번에는 여름이 와도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앞산의 온갖 푸나무가 초록을 넘고 넘어 숨차도록 푸른데도 동해 - 그 그리운 바닷가에 갈 일이란 전혀 없어져버리고, 그 다음에는 가을이 와서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는 거야 너무도 당연하여, 추억에 젖어 ‘사계(四季)’나 ‘무언가’(無言歌, 멘델스존) 그런 음악을 들어보는 일도 우습고 웬지 좀 부끄럽기도 하고 차라리 시시하게 .. 2008. 4. 4.
아름다운 해리 왕자 -군 복무에 대하여- Ⅰ 지난 3월 초의 여러 신문에는 영국 찰스 왕세자의 차남으로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해리 왕자(23세)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수수하고도 깔끔하고 멋있어서 만약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다면 젊은 여성들이 그야말로 “끼악-!”하고 말 것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저도 기회가 오면 제 두 딸 중 한 명이나 아들에게 통역을 부탁해서 그와 차라도 한잔 함께하고 싶었으니까요. 혹 모르는 일 아닙니까? 제 딸은 영화 『007』에서 제임스 본드로 출연한 로저 무어의 부탁을 받아 서울을 안내한 적도 있고, 엘리자베스 2세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도 있으니 제게 그런 기회가 영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본 사진 중에는 남부 아프가니스탄 최전선(最前線)인 헬만드 지역에서 군 복무 중인 그가 동료 군인들.. 2008. 3. 18.
『숭례문』단상(斷想) Ⅲ : 그 진정성 ○ “문화재청은 11일 오전 숭례문 현장에서 문화재위원회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내놓지 못한 채 ‘숭례문 복구 기본방침’을 발표했다. ▲남아 있는 부재(部材)를 최대한 다시 사용해 숭례문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이를 위해 문화재위원과 소방관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복원.. 2008.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