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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임자 없는 실내화·우산·자전거…

by 답설재 2010. 11. 17.

 

 

 

아무나 타고 싶을 때 탈 수 있는 자전거!

얼마나 좋습니까? 오늘 오후에라도 아직 코스모스 꽃밭이 남아 있을 구리한강시민공원에 나갔을 때, 그곳 강둑을 따라 한가롭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수십 수백 대의 자전거가 종류별로 비치되어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습니까!

 

아무나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물,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가령 논현역에서 신논현역까지 오른쪽 길로 걸어내려가다보면 그 중간의 딱 한 건물에서 "아무나 화장실을 이용해도 좋다"는 표지판이 붙은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나 읽고 싶을 때 읽을 수 있는 책……

 

세상에 돈은 많아졌는지 모르지만 인심으로야 많이 어려워져 있으므로 몇 가지만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생색을 내는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고, 희망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세상이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자전거를 누구나 공짜로 빌려 타게 했더니'라는 제목의 사설을 봤습니다(조선일보, 2010.11.16, A39).

 

울산 남구는 지난 7월 여천천 둔치 자전거도로에 자전거 60대를 세워 뒀다. 관리 직원도, 대여 장부도 없고, 자물쇠도 채우지 않아 누구나 언제든 공짜로 빌려 타게 했다. 남구는 무인 자전거 대여를 두 달 만에 포기했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집으로 갖고 가 타거나 아무 데나 팽개치는 일이 잇달아 자전거가 금세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울산 북구도 지난 8월 자전거 20대를 내놓았다가 한 달이 안 돼 모두 잃어 버렸다.

…(후략)…

 

 

연전에 저도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학교 현관 두 곳에 신발장을 마련하고 2500원인가 하는 허드레 고무 실내화 250켤레를 비치했습니다. 아이들은 꼬박꼬박 실내화를 신고 다니는 그 복도나 교실을, 학부모나 학교를 방문한 어른들은 무슨 무법자(無法者)처럼 '저벅저벅' '또각또각' 구두를 신고 다니는 꼴도 보기 싫지만, 그분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실내화를 지참해서 학교를 방문하기도 어려울 일이므로 그런 배려를 해본 것입니다.

 

그러나 웬걸. 단 보름만에 두어 켤레만 남고 감쪽같이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행정실장 말을 들어봤더니, 교감선생님은 교장이 알면 화를 낼 것이라면서 쉬쉬 하고 있었고(그 세상에서도 나는 겨우 그런 인간으로 비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므로 그 실내화들이 다 사라져버린 걸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 말 않고 다시 구입하라고 했습니다. 그 실내화를 신고 집으로 간 아이들이 새 실내화를 또 신고 귀가했을 때 부모님은 웬 실내화를 자꾸 신고 들어오냐고 물을 거고, 그러면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 학교를 떠나올 즈음에는 '양심 우산'도 마련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비가 내리면 당장 우산을 들고 교문으로 달려갈 수 있는 학부모도 많지만, 회사에서 퇴근시간까지 비내리는 창밖을 내다보고만 있어야 하는 엄마 아빠도 있습니다. 더구나 기상청에서 비 올 확률을 정확히 알아맞히지 못하는 이유도 많지 않습니까.

 

연전에 나에게 다녀간 뉴질랜드 와카랑가 스쿨 교장은 17년째 그 학교 교장을 한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교장은 그렇지는 못하기 때문에 좀 하다가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 '양심 실내화'와 '양심 우산'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이름과 주민번호 같은 걸 적어 놓고 가져가게 하고, 그걸 가져오면 이름 지워 주는 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고 교육도 아니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실내화가 다 없어졌다고, 우산이 다 망가졌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꼴을 보실 수 있습니까? 그러려면 뭐 하려고 시작하겠습니까? 웃기는 일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