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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그녀가 결혼한 이유

by 답설재 2010. 11. 16.

 

 

 

그녀가 결혼한 이유

 

 

 

  요즘은 KBS TV의 「가요무대」를 봅니다.

  어떻게 된 건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처럼 보고 싶어도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프로그램은, 쳐다만봐다 가슴이 뻐근해지게 됐으니 지난번에 끝난 드라마 「이웃집 웬수」나 「가요무대」 같은 편안한 프로그램이 좋습니다.

 

  어젯밤 「가요무대」는 '만추'라는 제목으로 가을 노래를 들려 주었고, 지난 8일 밤에는 설문조사로 광복 전후부터 198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인기가 높았던 곡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광복 후 1940~1950년대에는 '꿈에 본 내 고향' '나 하나의 사랑' '단장의 미아리 고개' '만리포 사랑' '봄날은 간다' '비 내리는 고모령' 같은 곡이었고, 전체 1위곡으로는 '그때 그사람'이었는데 그 노래들을 부른 가수들은 거의 보이지 않아서 좀 섭섭하긴 했으나 옛 생각에 그립고 후회스럽고 눈물겹기도 했습니다.

 

  교육대학 시절에 친하게 지낸 한 여 선생님 생각도 났습니다.

  저는 그 시절의 자신을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겨(아마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집에서 쫓겨나 친구 덕에 교육대학에 가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나 학비를 마련하던 시절이어서 그랬겠지요), 공부를 착실히 하지도 않았고 여학생들을 사귀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친하게 지냈다고 해봐야 서로 손 한 번 잡아본 적이 없고 대화만 좀 나누었으니 낭만적으로 보내도 좋았을 그 시절을 또한 스스로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럭저럭 졸업을 하고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시민회관 로비에서였습니다. 그곳에서 시내 교원들을 대상으로 한 무슨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 여선생님이 먼저 저를 발견했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당장 속깊은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게 되었으므로 저는 다짜고짜 이럴게 물었습니다.

  "K 선생님과 결혼하셨단 이야기 들었습니다. 함께 학교를 다녔어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 그때도 사귀며 지내셨습니까?"

  참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요, 기가 막힌다고 해야 할까요. 학창 시절이나 그 후에나 결코 가벼운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는, 아니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저보다는 몇 배 진지한 삶을 살아가는 그 선생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니죠. 학교 다닐 땐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지냈죠. 첫 발령을 받은, 그 지역 선생님들 아유회에서 새로 만났어요. 한 잔씩 하고 시원하게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르는 걸 쳐다보는 그 순간 마음이 기울었어요……"

 

  이야기는 더 이어졌지만 지금은 하나도 더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도 그 말 외에는 더 기억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사람의 일이란 그런 거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노래란 그런 거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꼭 덧붙여야 할 것은, 제가 만약 그 결혼을 부러워했다면, 그동안 노래 연습을 착실히 해서 지금쯤 제법 멋스럽게 부를 수 있게 되고 노래방을 즐겨 드나드는 사람이 되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