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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소규모 학교·소규모 학급

by 답설재 2010. 11. 8.

지난달 28일 오후에 후배 교장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교장은 참 다정한 사람이지만 내가 심장을 두 번이나 고친 줄은 모릅니다. 사실은 이 블로그에 오는 분 말고는 잘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랑'을 하고 다닐 수도 없고 묻는 사람도 없습니다. "혹 심장 고쳤습니까?"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학교가 가까이 있고 아프다고 들어앉아 있기보다 한번 나가보자 싶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행복한 동행 학부모 연수'가 초대 이유였습니다.

그 학교가 작은 학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작은 학교인 줄은 몰랐습니다.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저 뒤에 계신 남성들은 누군가 싶어 학부모만 손 좀 들어보라고 했더니 앞쪽의 네 분인가 다섯 분의 여성만 손을 들었습니다.

 

 

 

 

 

 

학교가 작고 학급 규모가 작으면 교육을 하기에는 일단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강의식·일제식·주입식·획일적 지도를 탈피하여 그동안 꿈꾸어오던 개인별 지도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이 개인별 지도를 반대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반대할 명분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저 강의식·일제식·주입식 교육에 물들어 그 방법 이외의 방법에는 불안하고 어색함을 느낍니다. 말하자면 "얘들아! 조용히 하고 내 설명 좀 들어봐!"에 아주 익숙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전체를 대상으로 설명하는 방법이 나쁘다거나 필요없다거나 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건 모두들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러다 보니까 웃지 못할 풍경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교장은 교단에서 열나게 설명하는 교사를 보고는 "열심히 가르친다"고 하고, 교사용 책상에 앉아 아이들을 불러 다정하게 지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저 선생은 다리가 부러졌는지 늘 저렇게 앉아서 저러고 있다"거나 "자리에 앉아서 뭐 하는 짓이냐!"고 직접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합니다.

 

"얘들아! 내 설명을 들어봐!"라는 방법은 일단 계획하기도 좋고 전개하기도 좋습니다.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적습니다. 혼자서 독자적으로 이끌어가니까 그 과정이 그르쳐질 까닭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웬만하면 의도했던 과정을 거쳐 의도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반에 학생 수가 60명을 넘나들던 그 시절에는 이 방법 말고는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고, 실제로 이 방법은 효과도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 방법이 어느 경우에나 결코 최선일 수 없는데도 우리는 그 방법을 너무나 좋아하다 보니까 이제 여나믄 아이들을 앉혀 놓고도 "얘들아, 내 설명 좀 들어봐"라는 방법을 주로하는 교육을 하게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얘들아, 내 설명 좀 들어봐!"의 방법이 특별한 방법이고, 아이들 하나하나의 개성에 맞추어 아이들 하나하나를 보고 교육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 되어야 하는데도 거꾸로 개인별 지도가 특별한 방법이고 전체적인 지도가 일반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지 말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가령 어느 섬의 자그마한 학교 혹은 어느 산골짜기의 미니 학급에서 에닐곱 명의 아이들을 앉혀 놓고 "여러분, 조용히 하고 내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하고 서 있다면 참 웃기는 교육 아니겠습니까?

 

후배가 교장인 그 학교는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묻지는 못했습니다. 그걸 묻는 게 그 후배에게 실례를 범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아, 그걸 질문이라고 합니까? 우리 학교의 소인수 학급에서는 이미 벌써부터 개인별 지도를 당연시하고 있지요." 하면 제가 참 미안하고 무안해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