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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CLAUDIO ABBADO가 들려주는 모차르트

by 답설재 2010. 11. 10.

병석에 있으니까 별 게 다 그립습니다. 심지어 ……

심지어 ……

그 그리움이라는 걸 털어놓는 건 얼마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감상적이기도 한 일이기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고,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심지어 두 번째로 병원에 가기 전, 그러니까 지난 봄부터 추석 무렵까지 집에서 사무실을 오가던 그 시간들, 올림픽도로 주변의 그 정경들도 다 그리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사실은 얼마나 한가로웠고, 그 한가로움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는지요.

 

그러면서 들은 음악 중의 한 가지가 CLAUDIO ABBADO의 모차르트입니다.

단호하게, 박진감 넘치게, 군대의 행렬처럼 나아가다가 서정적이고 낭만적으로 바뀌어 가고, 그래서 가령 고등학교 입학식이나 대학생 입학 축하 파티를 하며 이 음반을 들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식은 축하 분위기가 아닐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고 '위로'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격려'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음반을 선물로 주어도 좋을 것입니다.

 

CBS에서 김동규 선생이 그랬습니다. CLAUDIO ABBADO는 무슨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했답니다. 보십시오. 저렇게 맑은, 저처럼 멋있는 웃음 뒤에 그 '암투병'이 숨어 있었다니…… 그래서 더 그렇게 보이는 걸까요?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CLAUDIO ABBADO, 이 지휘자가 심지어 밉기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괴로울 때나 외로울 때나 아플 때나 그 아픔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날아가버려 좀 기분이 좋을 때나, 그 선율이 얄미울 정도로 한결같아서 무심하기까지 했으니까요. 나의 고뇌, 번뇌, 우울, 고독, 후회, 한탄…… 그런 것들을 다 보여준다 해도 저렇게 웃고 있는 저 CLAUDIO ABBADO는 그냥 저렇게 지휘봉을 휘두를 것 같았습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오. 얼마나 그렇게 느껴지는지.

 

그러나 암투병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나서는 그 느낌이 영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출발선에 선 어느 젊음에게 주는 선물로는 제격일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부질없는 생각일 것입니다.

'그림은 정지된 시간 속에 수많은, 혹은 속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음악은 흐르는 선율로써 정지된 어느 순간이 그리워지게 한다.'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글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저 알베르 까뮈입니다.

 

<모차르트에게, 예술가를 이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다면서 읽어주고 싶은 알베르 까뮈의 글>

 

진정한 예술 작품은 그 작가의 인간적인 성숙도에 달려 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덜> 말하는 작품이다. 예술가의 총체적 체험과 그 체험을 반영하는 작품 간에는, 가령 <빌 헬름 마이스터>와 괴테의 성숙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 작품이 어떤 설명 문학의 레이스지(紙) 속에다 그 경험 전체를 전하려 할 때, 그 관계는 좋지 않다. 작품이, 체험에서 도려낸 한 조각, 내부의 광채가 아무런 제한 없이 집약되어 있는 다이아몬드의 한쪽 면에 불과할 때에는, 그 관계는 좋은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과중한 부담이 있고 영원한 것에 대한 과장이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암시된 경험 전체에서 그 풍요로움이 어렴풋이 느껴지기 때문에, 기름진 작품이다. 부조리한 예술가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창작하는 법>을 초월해 있는 이 <사는 법>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풍토 하에서는 위대한 예술가란 무엇보다도 위대한 생활체(生活體)인데, 이 경우, 산다는 것은 사고(思考)하는 것 못지 않게 체험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때에 작품은 어떤 지성의 드라마를 구현한다. 부조리한 작품은, 사고가 그 자신의 위세를 포기하는 것을, 그리하여 외양들을 빚어 내고 부조리한 것들을 이미지들로써 뒤덮는 지성에 그치기로 체념하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세계가 명확한 것이라면 예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1

 

<암 투병을 한 적이 있다는, 그럼에도 저렇게 밝은 미소로 지휘하는 CLAUDIO ABBADO에게 읽어주고 싶은 알베르 까뮈의 글>

 

교훈들이 결여되어 있는 예술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음악이다. 음악은 수학과 너무도 가까운 친척지간이어서 수학의 무상성(無償性)을 빌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고정된 정확한 법칙들에 따라 정신이 자신과 노는 그 게임이 일어나는 곳은 우리에게 속하는 낭랑한 음역(音域) 안에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떨림들은 그것을 넘어서 어떤 비인간적인 우주 속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순수한 감정은 없다.2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1-4 Symphony No.31 in D Major, K.297 "Paris"

5 Masonic Funeral Music, K.477

6-9 Symphony No.25 in G Minor, K.183

10-12 Symphony in D Major "The Posthorn"

 

BONUS TRACK

13 March No.1 in D Major, K.335

Berliner Philharmoniker

Claudio Abbado

 

"Claudio Abbado and the Berlin Philharmonic defy the fashion forperiod performance in exhilarating accounts of Mozart using modern instruments… Warmly recommended to those who want to hear Mozart playing which marries sweetness and purity to crisp rhythms and dramatic bite." - Penguin Guide to Compact Discs ★★★

 

"예술 작품은, 흔히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어떤 철학의 결과이며, 그 예증이며, 그 극치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그 철학의 함축된 뜻을 통해서만 완전해진다."(알베르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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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베르 까뮈, 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육문사, 1993), 132~133쪽에서.
2. 위의 책, 133~134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