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학예회가 열렸답니다. 제 외손자는 무대를 내려오며 눈물을 쏟았답니다. 제 어미의 꽃다발도 받지 않았답니다.
모두들 컵 하나씩을 가지고 난타(亂打)를 했는데 옆의 아이가 건드려서 컵이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고, 그걸 주워든 제 외손자가 그 아이에게 무어라고 하고, 그러는 시간이 제 어미의 느낌으로는 10분은 되더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제 어미가 그 애에게 뭐라고 했느냐고 물었더니 "나 망신 좀 그만 시켜줘!" 그랬다고 하더랍니다. 마치고 교실로 돌아갔을 때 다른 아이들이 몰려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지 않느냐?'고 하자 제 어미에게 전화해서 "지금 꽃다발을 받고 싶어요." 하더랍니다.
저녁에 전화가 와서 물었더니 녀석은 대뜸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망신살이 뻗쳤죠." 웃기는 녀석이죠. 망신살이 뻗친 일은 다른 일이라는 걸 모르는 녀석이죠.
녀석은 어느 여자애가 놀렸다며 싸우다가 뒷자리로 쫓겨났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선생님! 사실은요, 저 아이가 '너네 아빠는 군대에도 갔다오지 않았지?' 해서 중위로 제대했다고 했더니 '중학교 2학년?' 해서 싸웠던 거에요." 해버렸고, 담임선생님께서 다시 앞자리로 옮겨주었답니다. 거기까진 참 잘된 일이지요.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무슨 일로 또 싸우다가 '반성문'까지 썼는데, 그걸 쓴 다음날, 남의 일에 간섭하다가 또 싸워서 호된 꾸중을 들었답니다. 녀석의 일기장을 봤더니 주말의 일기에 그게 적혀 있었습니다. 제 외조모가 그 얘길 했을 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둬. 사회에는 간섭하는 놈도 있어야 해." 그랬더니 그렇게 지내다가 중학생이 되면 큰 싸움을 하고 그러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중에 경찰이나 검찰을 할 놈이 되지 않겠느냐고 해주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담임선생님이 얼마나 고생이 많으실까 그게 걱정이 될 뿐입니다. 까짓거 반성문 쓰고 꾸중 듣는 게 뭐 대수롭습니까? 담임의 관심밖이 되면 그게 문제지요.
지난 일요일에 녀석이 다녀갔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내내 녀석의 눈은 텔레비전에 가 있었습니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식사가 끝났을 때 제 어미가 저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저 놈이 아빠 아들이라면 꾸중 들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제 딸은 저를 잘 알기도 하지만 잘 모르는 면도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웬만하면 그냥 둬.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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