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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쁜 짓 하지 마! - 그 고운 목소리

by 답설재 2010. 11. 18.

 

 

 

"나쁜 짓 하지 마!"

-그 고운 목소리-

 

 

 

  수능(대학수학능력고사)일입니다.

 

  어제 오후에는 산책을 하러 동네 이곳저곳에 일찍 하교한 학생들이 쏟아져 있었고, 여기저기 데이트하는 학생들도 보였습니다. 나란히 걸어가던 한 여학생이 돌아서더니 잠시 남학생을 껴안고 있다가 지나가는 저를 의식하고는 다소곳한 자세를 보였습니다. 앞으로 이런 모습을 보며 개탄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되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네 어귀에서는 남녀 학생 댓 명이 둘러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더니 저만큼 걸어가던 여학생 한 명이 돌아서서 남학생들에게 외쳤습니다.

  "나쁜 짓 하지 마!"

 

  참 대견스러웠습니다.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에서, 이런 말의 뜻에서,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학생들의 머리와 가슴으로 들어가 그들의 생활에 대한 프로그램들이 산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을 어른들이 다 만들어버리니 그게 탈입니다.

 

  아이들은 온갖 행태를 다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언제 어느 사회에나 있는 모습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이 앞으로는 더 흔하게 눈에 띌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충분히 짐작하고 좋은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나쁜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나쁜 아이들은 다 어른들이 나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생활을 다시 연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공부를 가르친다',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그들의 생활을 너무 소홀히 생각해온 건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소리 마라!"고 할 것입니다. 그동안에도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며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의 온갖 비리를 소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은지, 저는 교사생활을 맛보았기 때문에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렇다고 저 아이들이 악마는 아니지 않습니까? 어디 몹쓸 곳에서 수입해온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쩌면 모든 건, 우리가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는 공부를 시켜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배우도록, 생각하도록, 활동하도록 해주고, 우리는 그냥 지켜보며 도와주기만 하면 더 좋았을 것을, 그러면 이 아이들의 생활이 더 밝고 더 긍정적이고 더 발전적일 것을, 우리가 모든 걸 다 설명해주려고, 아이들이 조용히 하고 바로 앉아야 하도록 했고, 다른 짓은 전혀 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오늘 이런 모습의 학생들, 이런 모습의 학교가 생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아이들에게 다 돌려주고 다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공부도 돌려주고, 생활도 돌려주고 시작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은 PISA 성적이 낮아질 것입니다. TIMMS 성적도 낮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싶어하고, 서로 정답게 지내고 싶어하고, 서로 도와가며 경쟁하며 공부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면 더 좋을 것입니다.

 

  "나쁜 짓 하지 마!"

  그 한 마디를 듣고 오며 앞으로 더 많은 생각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말은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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