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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는 도대체 몇 살인가?

by 답설재 2010. 11. 19.

나는 얼마 전까지는 만 62세였고 생일이 지났으니까 지금은 만 63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민등록상의 나이이고 사실은 만 63세였다가 지금은 만 64세입니다. 출생 신고가 한 해 늦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이로는 65세이니 올해의 내 나이는 무려 네 가지입니다.  

좀 성가신 일이고 밝혀봐야 별 수도 없고 흥미도 없는 얘기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어디 가서 누가 나이를 물으면 그 네 가지 중에서 적당히 가려 대답하고 있지만 만 64세(생일 전에는 63세)인 정확한 나이는 주로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고 공식적으로 써먹을 데는 없습니다.

 

애초에 면사무소에 등록된 1947년은 선친이 어떻게 신고한 것인지 한 해가 늦어진 것입니다. 그건 내가 병술(丙戌)생 개띠라는 걸로 알 수 있습니다. 생일도 음력인데 그 날짜가 양력으로 등록되어 있으니 사실은 생일조차 엉터리입니다. 언젠가 아주 심심할 때 인터넷에서 양력과 음력의 조견표에서 제 정확한 나이를 확인해 보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 문제로 선친을 원망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가 참 궁핍할 때여서 아이를 낳아 놓았어도 곧 죽을 수도 있으니 지켜보자고 했거나, 남들 다 낳는 아이 하나 낳았다고 면사무소에 쫓아갈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동네에 나온 면사무소 직원에게 출생신고를 부탁했거나 지나가는 마을 이장에게 부탁했을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가 거의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사무소 직원에게 부탁하는 방법은 내게는 너무 고급스런 대우입니다. 그러니 그 신고를 하며 사실은 작년에 낳았다면서 1년 소급할 수도 없고 그냥 그해에 태어난 걸로 등록되었을 것입니다.

 

이 문제로 선친을 원망할 필요가 없는 것이, 우리 나이로 65세, 만으로는 생일 이전에는 62세로 세 살이 차이가 나고, 생일 이후로는 만 63세로 두 살이 차이가 나서 63세라는 것이 뭐 그리 불편할 일도 아니고, 그동안 교원으로 근무하면서 나이를 밝혀야 할 때 퀴즈 풀기식으로 몇 초 내에 빨리 답하라거나 하는 경우도 없었기 때문에 언제나 정신을 차려서 기록해 넣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록해 넣으면서 사실은 내 만 나이가 문서상의 나이보다 한 살 더 많다는 생각을 딱 한 번씩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생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요즘은 그런 걸 조사하는 사람들이 참 친절해졌고, 최근의 인구 센서스 때 인터넷 응답을 해봤더니 그 서류에도 친절하게 양력과 음력을 구분해주고 있어서 별로 불편한 줄 모르고 지냈습니다.

 

'아직은 이 나이 가지고는 어디 명함을 낼 형편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더욱 자중하기 시작한 건 1994년 어느 날입니다. 정확한 나이로는 47(48)세 때였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강우철 교수(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장), 교육부의 선배 편수관 등 몇 분과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강우철 교수는 내가 직접 강의를 받아본 적은 없지만 그 이상으로 자주 대하며 배우는 바가 많았고, 인격적으로도 고매한 분이어서 앞에서 똑바로 앉기조차 어려운 상대였고 그때 아마 64세쯤이었을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 끝에 내가 한 마디 했더니 강 교수께서 웃으며 "김 선생은 아직 그런 걱정을 얘기할 나이도 아닌 것 같은데……" 했고, 나보다 세 살이 많은 교육부 선배 편수관도 빙그레 웃었기 때문에 순간 나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 나는 아직 젊구나.'

나는 그 말을 들은 것이 충격이어서 이후로는 어디서도 나이와 연계되는 일에는 절대로 나서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실수였을까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며 세어보니 나는 50세가 넘어 있었고, 또 어느 날은 60세가 넘어 있었고, 퇴임할 나이가 되어 있었고, 지금 만으로는 64세, 우리 나이로는 65세가 되어 있습니다. 정신도 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나이가 이렇게 되어 있더라는 뜻입니다.

더구나 올해는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가는 모습을 자세히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일전에 교육부에서 함께 근무하던 어느 분이, 콩팥도 떼어내고 또 무엇도 떼어냈더니 여름옷을 세탁해 넣으며 내년에도 이 옷을 입게 될까, 생각되더라고 해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도 눈물겨웠습니다. 더구나 단풍이 진다는 이야기 끝이었습니다.

 

요전에 병원에 갔다가 내 나이가 63세로 기록된 걸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올해도 생일이 지났구나.'

'이런 기록에는 내 나이가 62세인 게 좋을까, 65세인 게 나을까?(나이가 많다고 해야 유리할까, 적다고 해야 유리할까?)'

 

 

♣ 이 글의 제목은 <나이 계산>이었으나, 인터넷에서 나이 계산 방법을 찾는 분들이 들어오는 것 같아서 저렇게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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