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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064

가을엽서 (Ⅲ) : 金源吉 詩人에게 가을엽서 (Ⅲ) - 金源吉 詩人에게 가을입니다. 기대하지도 않고 욕심을 내지도 않았는데도, 가을입니다. 하기야 그 변화에 기대를 하는 건, 그야말로 ‘자유’지만 욕심을 내거나 할 일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압니다. 다만 다시 한해가 저물고 있다는 것에서 느끼기로는 오히려 좀 천천.. 2008. 9. 30.
「Monaco」, 삶이 그렇게 흐른다면… 삶이, 그렇게 흐른다면, 누가 힘들어하겠습니까. 지나가버린 세월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사람들이 그리워집니다. 들판에 홀로 남은 것 같습니다. 이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스스로 위로합니다. 1972년, 초겨울 눈 내리는 날, 48세에 세상을 떠난 우리 어머니, 너무 일찍 이승을 떠났으므로 저승에서 마저 늙었을 그 어머니…… 일곱 살 때부터 '죽도록' 농사일만 하다가 늙어서는 세상의 온갖 병을 다 앓다가 간 우리 아버지…… 그분들의 속을 썩인 일들도 이제는 거의 가슴 아프지 않습니다. 그분들도 다른 말씀 않고 “그래, 괜찮다, 괜찮다.” 하실 것 같습니다. 나에게 시집 오면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럴 듯한 거짓 약속조차 없이 결국 신산(辛酸)한 세월만으로.. 2008. 9. 2.
어느 독자 누가 이 블로그에 다녀가시는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댓글’이나 ‘방명록’에 메시지를 남겨주시는 분도 더러 있지만 흔한 일도 아닙니다. ‘관리’란을 보면 ‘어제’에 한해 어느 시간대에 몇 명이 다녀갔고, 등록자에 한해서 성별, 연령별, 지역별로 몇 사람이 다녀갔으며, 어떤 글을 몇 명이 읽었고,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카페’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시시각각 다녀가는 사람들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블로그가 뭔지 카페가 뭔지도 몰랐고, 지금도 그 특성을 잘 모릅니다. 오늘 처음으로 독자 한 분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저와 딱 6개월을 함께 근무했습니다. 그 짧은 기간에 그분에게서 배운 점도 많지만, 그분에게는 교육의 방향 같은 것만 얘기해 주어야지 하나하나 다 .. 2008. 8. 28.
가을엽서⑴ 아무래도 가을인가 봅니다. 이 저녁에는 또랑또랑하고 낭랑하게 들려오는 풀벌레소리가 내 이명(耳鳴)을 잊게 했습니다. 이명은 지난해 여름 그 한의사가 이제는 친구처럼 대하며 지내라고 한 가짜 친구입니다. 입추(立秋)가 지나도 등등하던 더위의 기세가 뒤따라온 말복(末伏) 때문이었는지 하루식전에 꺾여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럴려면 그렇게 등등하지나 말 일이죠. 새벽이나 이런 밤에는 벌써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그곳은 어떻습니까? 그곳도 여름이 가고 스산하고 까닭 없이 쓸쓸합니까? 며칠 전에는 점심식사를 하고 현관을 들어서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가을이네.' 별 생각 없이 그렇게밖에 하지 않았는데, 하마터면 눈시울이 젖을 뻔했습니다. 알래스카의 그 추위 속에서 계절이 바뀌어 봄이 오는 것을 본 호시노 미치오.. 2008. 8. 25.
웃으며 활을 쏘던 리처드 존슨-베이징 올림픽 관전 단상⑶ "리처드 존슨은 올해 52세랍니다. 그는 지난 8월 13일, 양궁 남자 개인 32강전에서 우리의 임동현(22, 한국체대) 선수와 겨루어 115:106으로 패배했습니다." 적어놓고 보니 딱 두 줄이군요. 이것이 신문에서 찾아 읽은 그 선수에 대한 정보의 전부입니다. 그날도 중국의 그 양궁 시합장에는 비가 내렸지요? 중계방송 해설자가 그 '아저씨'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다고 한 것 같습니다. 마음씨가 썩 좋아 보였고, 아무래도 그 '아저씨'의 아랫배가 좀 나온 것 같아서 기회가 된다면 내 아랫배와 한번 비교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시합은 시합이어서 처음에는 나도 좀 긴장했는데, 그는 도저히 우리의 임동현 선수의 맞수는 아니었습니다. 한 발 한 발 신중한 태도로 쏘기는 했지만 차츰 점수 차가 벌어졌기 때문에.. 2008. 8. 22.
궁사 박성현·윤옥희·주현정이 펼친 드라마 궁사 박성현·윤옥희·주현정이 펼친 드라마 - 베이징 올림픽 관전 단상 ⑴ - 베이징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은 아무래도 억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억울함이, 박성현․윤옥희․주현정 세 궁사를 향한 것인지, 중국측의 태도 때문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왠지 모를 억울함이 차오릅니다. 8월 10일의 단체전에서는 비가 오거나말거나 세 궁사가 홈팀 중국을 224:215로 누르는 감동의 드라마를 펼쳤습니다. 이날도 중국측은 연이어 10점을 쏘아대는 한국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우리의 응원도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신문의 사진 아래에 이런 설명이 붙었습니다. “한국 양궁은 악천후와 중국 관중의 소음작전을 뚫고 남녀 단체 모두 금메달을 쏘았다. 11일 베이징 올림픽 그린양궁장에서 한국 응원단 1000여 명이 열띤 .. 2008. 8. 18.
쇼스타코비치,「왈츠」Chostakovitch, Valse No.2 Ⅰ 돌아가야 할 시간, 무료하겠지만 이제 그만 만나야 하는데…… “춤 한번만…….” 하던 그(그녀)가 생각날 것 같지 않습니까? 혹은 이미 “사랑한다”고 말해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그녀)가 돌연 별로 충분하지 않은 인격의 어떤 남성(여성)과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시간의 주체할 수 없었던 당혹감, 질투심 같은 것이 떠오를 것 같지 않습니까? 혼자 자동차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담배도 피우고 한숨도 쉬고 어려운 일 귀찮은 일 잠시 즐거웠거나 기뻤던 일 두고두고 쑥스럽거나 부끄러웠던 일을 떠올리기도 하고 들리는 대로 뉴스나 토크쇼 음악도 듣습니다. 신문에서 제목이라도 봤던 일들을 언제나 자세히 별일 아닌 것들까지 합쳐서 꼭 “큰일 났다!”는 투로 전해주는 뉴스를 들으면.. 2008. 8. 4.
‘이메일 막는 회의’와 댓글을 보고 싶은 욕구 제 이메일 박스에는 ‘학리(鶴里)’ 선생께서 더러 오고 있습니다. 그분 메일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Moonlight'이라는 제목으로 아름다운 달 사진들과 함께「월광 소나타」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만 보려면 Esc 키를 누르면 된다’는 멘트 아래 적힌 사연은 “이곳에 .. 2008. 7. 24.
축전 (Ⅱ) 지난해 가을에 ‘전근 축하 전보와 편지’라는 제목으로 쓴 글은 요즘도 더러 읽히고 있는 걸로 보아 ‘축전’은 블로그 독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소재인 것 같아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지난 3월에 고려대학교 최광식 교수를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신라사를 전공한 사학자로, 중국의 동북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한 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로 활동했기 때문에 재단 설립·운영의 담당관이었던 나는 그와 자주 만나야 했습니다. 그는 매우 소탈하고 선이 굵은 학자입니다. 동북공정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워지고 여러 곳에서 강의나 회의 요청이 늘어나자 더욱 바빠져서 잠잘 시간이 부족하다며 승용차를 두고 주로 택시를 타고 다니며 잠깐씩이라도 눈을 붙인다고 했습니.. 2008. 7. 2.
비만(肥滿)에 관하여 ■ 비장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비만관리형 걷기 모습 비만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누구나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이 얘기를 우리 학교 홈페이지의「학교장 칼럼」에 써보려고 했는데, 워낙 조심스러워서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이 블로그에만 쓰기로 했고, 이렇게 결정하고 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지난번에는 보건소에서 고학년을 대상으로 체지방검사를 해주겠다고 해서 ‘얼씨구나’ 하고 당장 승낙하고 제가 나서서 비디오 인터뷰까지 해주는 등으로 온갖 친절을 베풀다가, 검사가 거의 끝날 때쯤 “비만인 아이 하나를 골라 인터뷰 좀 하자”고 해서 제 표정을 싹 바꾸었습니다. “안 됩니다. 그건 안 됩니다!” 냉정하게 자르고 나니 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누구를 촌놈쯤으로.. 2008. 6. 27.
고백(Ⅰ) : 문학가들의 거짓말(?)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지시고, 평원에는 바람을 풀어 줍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가득가득 하도록 명해 주시옵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녘의 낮을 주시어, 무르익는 것을 재촉하시고 무거워가는 포도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주소서, -- 이제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 것이며, 깨어 앉아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나뭇잎이 구를 때면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하게 방황할 것입니다. 릴케 「가을날」 가을만 되면 "릴케, 릴케,……" 해서(가을이 오면 신문에도 이 시가 실려 우중충한 지면을 가을빛으로 물들이기도 해서) 아예 릴케 시집을 샀습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걸핏하면 "이순신, 세.. 2008. 5. 30.
삶의 기록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어느 고인(故人)의 진료기록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진료비 상세내역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딱 한 페이지에 기록된 품목명만 해도 다음과 같았습니다. 크레아타닌(나375), *전해질종합검사, 소디움(나트륨)나379, 포타슘(카디움)나379, 크로라이드(염소)나3, 혈액총이산화탄소함량, C-반응성단백정량시험, *그람염색및비뇨기, 직접도말염색(나400가), 미생물배양동정약제감, 미생물배양동정약제감, 간침조직검사(나500가), 판독료(큰장기), BIOPSY대표수가CODE, OTHER, 면역조직4종(나55), OTHER, CA-19-9(나-423), 알파피토프로테인(나- ), 태아성항원(나422), 요검사응급(나3), 요현미경적검사(나4), *CBC+DIff(응급), 백혈구수(나10.. 2008.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