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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웃으며 활을 쏘던 리처드 존슨-베이징 올림픽 관전 단상⑶

by 답설재 2008. 8. 22.

 

 

 

 

"리처드 존슨은 올해 52세랍니다. 그는 지난 8월 13일, 양궁 남자 개인 32강전에서 우리의 임동현(22, 한국체대) 선수와 겨루어 115:106으로 패배했습니다."

 

적어놓고 보니 딱 두 줄이군요. 이것이 신문에서 찾아 읽은 그 선수에 대한 정보의 전부입니다.

그날도 중국의 그 양궁 시합장에는 비가 내렸지요? 중계방송 해설자가 그 '아저씨'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다고 한 것 같습니다. 마음씨가 썩 좋아 보였고, 아무래도 그 '아저씨'의 아랫배가 좀 나온 것 같아서 기회가 된다면 내 아랫배와 한번 비교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시합은 시합이어서 처음에는 나도 좀 긴장했는데, 그는 도저히 우리의 임동현 선수의 맞수는 아니었습니다. 한 발 한 발 신중한 태도로 쏘기는 했지만 차츰 점수 차가 벌어졌기 때문에, 중반전부터는 '저 아저씨는 어떤 일을 하다가 활을 쏘러 왔을까?' 그런 생각도 하며 지켜보았습니다. 더러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진지한 얼굴로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듣기도 했지만, 그는 시종일관 여유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활을 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미소를, 그것도 그렇게 여러 번 그 '아저씨다운 미소'를 보여줄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그렇게 열두 발의 활을 쏘는 동안, 우리의 임동현 선수는 침착했고, 무표정했고, 굳게 다문 입술을 열지 않았습니다. 메달을 딸 각오라면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그게 당연하다는 걸 나도 인정합니다.

 

그런데도 리처드 존슨, 지금도 그가 자꾸 생각납니다. 어쩌면 벌써 그가 좀 그리워졌는지도 모릅니다. 리처드 존슨. '아랫배 아저씨', 두 아이의 아버지, ……. 잘 모르겠습니다, 혹 '집배원'이나 '경찰관'이나 '소방관'이나 '트럭 운전사' 같은 '회사원'이나 뭐 그런 직업을 가진 선수는 아닌지.

 

리처드 존슨. 나는 우리나라에도 그런 선수가 많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령 '죽어라, 죽어라', 야구만 하다가 프로(professional) 야구선수가 되지 못하면, 그만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지는 그런 인생이라면, 참 억울하고 비참할 일 아닙니까? 한 해에 수십, 수백억 원을 받는 극히 일부의 선수들을 선망하여 온 인생을 걸었던 사람, 걸고 있을 사람, 걸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아, 도전해볼만한 세상이다!' 그런 생각이 들기보다는 아무래도 비정상인 것 같고, 그렇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을 구경하는 우리는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 아닌가, 어쩌면 한참 엉뚱하다고 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한다면, 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운동선수가 별도의 직업을 가지게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선수로 등록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리처드 존슨. 만약 올림픽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가 '리처드 존슨'이라면, 얼마나 더 재미있고 여유롭고 정답고, 평화로울까, 그래서 올림픽 정신에 더 가까운 그런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좀 한심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