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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어느 독자

by 답설재 2008. 8. 28.

누가 이 블로그에 다녀가시는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댓글’이나 ‘방명록’에 메시지를 남겨주시는 분도 더러 있지만 흔한 일도 아닙니다. ‘관리’란을 보면 ‘어제’에 한해 어느 시간대에 몇 명이 다녀갔고, 등록자에 한해서 성별, 연령별, 지역별로 몇 사람이 다녀갔으며, 어떤 글을 몇 명이 읽었고,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카페’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시시각각 다녀가는 사람들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블로그가 뭔지 카페가 뭔지도 몰랐고, 지금도 그 특성을 잘 모릅니다.

 

오늘 처음으로 독자 한 분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저와 딱 6개월을 함께 근무했습니다. 그 짧은 기간에 그분에게서 배운 점도 많지만, 그분에게는 교육의 방향 같은 것만 얘기해 주어야지 하나하나 다 얘기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하면 오히려 난처해진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두세 번 얘기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에 비해서 이런 경우에는 방향 정도만 제시하는, 혹은 자문(諮問)의 역할만 해도 충분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장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내 교육관, 내 방법이 적용(일반화) 단계에 들어갈 수 있겠나.’ 한숨이 나오는 사람도 많으니까 그는 그런 사람들과는 영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왜 거기에 있습니까?” 하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최근 그는 하는 일도 많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독서와 사색’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또 그 ‘껍질’을 깨겠지요. 그러므로 그냥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냥 두어도 될 것입니다. 마침 가을이니 잘 된 일 아니겠습니까?

나는 지금 그의 댓글 한 편을 옮기려고 합니다. 그에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물어보는 것이 좀 유치하기도 하고, 그는 당연히 거절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양해하겠지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그의 댓글을 천연스럽게 댓글 취급하는 것이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나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습니다, 이렇게 나를 칭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고 싶었습니다. 그를 칭찬하는 말들을 널어놓으면 그의 칭찬에 그대로 답하는 꼴이 되어 자칫하면 웃음거리가 될 수 있으니까 여기까지 해두겠습니다.

 

바뀐 연수교재로 바빠졌습니다. 새로운 내용에 관해 논문을 찾고 관련서적을 통해 정리하였습니다. 1시간 분량의 새로운 내용에 또 열흘을 매달렸습니다. 결국 제 공부를 한 것이었죠. 50분 분량의 이야기도 5분 정도로 정선해 들려주어야 할 역량을 갖출 법도 한데 늘 말이 많아집니다. 더러는 공감한 것 같고, 더러는 지루해했습니다. 경쟁, 자율, 다양화를 부르짖는 교육 속에 이미 문화 권력으로 자리 잡은 영어교육에 대해 강사로 복무하는 것이 불편해졌습니다. 이제 그만 내 놓을 생각입니다(윤지관,「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 당대, 2007).

이번 연수 중 허락 없이 교장선생님의 블러그를 소개하였습니다. 내용 중에「교수저널쓰기」와 관련하여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블러그라고 3반에게 소개하고「교과서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의 내용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점심 먹고 다시 4반에게 소개할 때「쇼스타코비치,「왈츠」가 올라와서 놀랐습니다. 앞에 내용이 꽤 오랫동안 올라와 있어 그 주요한 내용을 짚어가며 1,2반에 언급했는데 말입니다. 사실 4개 반에 똑같은 내용 4차시를 하다보면 해야 할 말에 대한 정확한 계산이 필요해집니다. 간간히 보여주시는 음악에 대한 조예에 쉽게 감응하지 못하는 문외한은 얼른 교과서.. 인식.. 필요성으로 찾아갔습니다.^^ 연수강사를 마무리하고 수업관련 보고서를 정리하니 방학은 벌써 중반에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살자. 아침에는 책을 읽고 오후에는 산을 찾았습니다. 2시간 정도의 아차산 등산(산책^^)은 참으로 유익하였습니다. 저녁에는 다시 책을 읽었습니다. 단순하지만 정제된 생활이라는 느낌에 개학으로 인해 흐름이 잠시 멈춰지는 것이 아쉽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결승전조차도 보지 않는다고 아내는 국민성을 의심하고(국민성의 기원에 대한 내용이 어떤 책에 있었더라^^), 애국심 실종 등으로 비난하며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당겨보려 했지만 저는 새로 사귄 한 여인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사랑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 주변 인물들까지도 집적대고 있습니다. 예전에 교장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다치바나 다카시」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사고 싶은 책을 한 분야에 수십만 원씩 스스럼없이 사는 그의 능력이었습니다. 물론 전문가와의 대담을 준비하면서 동일한 수준의 지식을 갖추기 위한 그의 치열한 노력과 자료 하나 인용하는데 있어서의 엄격함이 3만권도 넘는 책을 소장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강사료로 그의 흉내를 한번 내보았습니다. 이제 고백하겠습니다. 다카시의 흉내를 내도록한 여인의 정체를 말입니다. 예전부터 신문이나 인터넷에서「연구공간 수유+너머」라는 다소 긴 이름을 가진 지식인 공동체 소속 연구원들의 글을 접해 왔습니다. 인연의 끈을 예감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바 남은 방학 기간을 통째로 쏟아 부어도 후회치 않을 고전의 세계로 급속히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구축해 가고 있는 세계를 공감하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며, 지금은 연암(고미숙,「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그린비, 2004)을 만나고 있습니다. 쌓아 놓은 책도 몇 권 있으니 아직은 부자입니다.

 

추신: 아십니까?「다치바나 다카시」의 글에서 교장선생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을요. 어떤 내용인가를 물으신다면 답변해 드릴 수 있지만... 생각이 납니다. 작년 2학기 중간성취도 평가시 전학년 20과목, 문항수로 따지면 530문항을 밤새 검토하여 피바다(붉은 볼펜으로 검토한 내용)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참 그날은 출장까지 다녀오신 날이었죠. 돌려주신 시험지를 4시간이 넘게 다시 검토하면서(그냥 다시 읽어보기) 들었던 오만가지 생각.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즐거웠습니다. 교장선생님. 그 유쾌한 시공간이 그립습니다. 너무 늦게 리플(사실은 편지)을 달아 사랑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저는 틀림없이 한 남자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