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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가을엽서 (Ⅲ) : 金源吉 詩人에게

by 답설재 2008. 9. 30.

 

 

 

 

가을엽서 (Ⅲ) - 金源吉 詩人에게

 

 

 

 

 

  가을입니다. 기대하지도 않고 욕심을 내지도 않았는데도, 가을입니다. 하기야 그 변화에 기대를 하는 건, 그야말로 ‘자유’지만 욕심을 내거나 할 일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압니다. 다만 다시 한해가 저물고 있다는 것에서 느끼기로는 오히려 좀 천천히 가서 지겨워지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기는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구월 하순에 들어서도 기온이 30도를 넘었는데 긴 옷을 찾자마자 그것조차 썰렁하고 으슬으슬합니다. 기다려보나마나 곧 겨울이 온다는 예고입니다.

 

  안동 ○씨나 안동 □씨는 물론 안동사람은, 평생을 대하며 지내도 그 앞에서 가령 다리 한번 뻗기가 조심스러워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3』(창작과비평사, 1997)에서 '안동(安東)'을 찾아 읽다가 생각도 못한 애틋한 사람을 우연히 만나듯 김 선생님 이야기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 40년을 만나지 못하고 살았구나.’

 

 

  “박실 너머에는 지례 예술촌이 있어서 요즘은 그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현위치는 박곡동이며, 원위치는 200m 아래쪽 강변마을 이름이 지례였다. 지례의 입향조는 의성 김씨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 1623~96)이다. 그는 청계 김진의 현손(玄孫)으로 문과에 올라 대사성을 지냈으나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낙향하여 ‘나는 이제 말 않겠다’며 문 닫고 들어앉고는 그 방 이름을 ‘묵언재(黙言齋)’라고 짓는 기개를 보였다. …(중략)…. 그런 유서깊은 마을이 물에 잠긴다는 것도 세월의 아이러니인데, 지례의 전통과 고향을 지키겠다며 이 마을 출신 시인인 김원길이 지촌 종택, 지산서당을 비롯하여 건물 20여 동을 옮겨놓고 창작을 위해 조용한 곳을 찾는 예술인들의 아뜰리에로 제공하는 뜻을 세웠다. 그것이 지례 예술촌이다.”

 

 

  ‘와, 이 책에 김원길 씨가 나오네?’ 했던, 10년 전에 읽은 그 내용이 이젠 초라해보였습니다. ‘지례예술촌장 김원길’이나 ‘시인 김원길’이나, 단단할 것 같고 낭만적이기도 할 것 같은 김 선생님에게는 잘 어울려서 지금쯤 그야말로 "대단한 사람"이어야 당연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름에 어울리는 보람이 있었는지, 혹은 있을 것 같은지 물어보며 지내야 했던 세월이 40년이었으니 도대체 내가 한심한 것일까, 세월이 겉잡을 수 없는 것일까 싶어서 김 선생님의 시집 『들꽃다발』(길안사, 1993)에서 40년 전 안동역 앞 그 이층집 ‘다방’에서 본 것 같은 그 시를 찾아보았습니다.

 

 

 

            취운정(翠雲亭) 마담에게

 

 

굳이

어느 새벽꿈 속에서나마

나 만난 듯하다는

그대,

 

내 열 번 전생의

어느 가을볕 잔잔한 한나절을

각간(角干) 유신(庾信)의 집 마당귀에

엎드려 여물 씹는 소였을 적에

 

등허리에

살짝

앉았다 떠난

까치였기나 하오

 

참 그날

쪽같이 푸르던

하늘빛이라니.

 

 

 

  하기야, 좋은 시 더 쓰셨는지, 그 ‘예술촌’에 글 쓰는 사람 더러 찾아오는지, 한두 해 만에 만나는 것도 아니고 ‘모처럼(혹은 죽기 전에 한번)’ 만나 물어볼 게 그거라면 그 40년이 사람을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겠습니까. 그렇게 하여, 다시 그 이별이 끝이라면, 제가 얼마나 누추한 사람이겠습니까.

 

  김 선생님을 만난다면, 그러므로 이거나 물어보겠습니다.

  『‘시인과 농부’ 서곡』. 왜 그러셨잖습니까. 김 선생님께서 신세동인가 거기 사실 때, 저는 세상 모르고 놀던(사실은 마음 아픈 일 너무 많고 가슴도 아파서 놀기밖에는 하고 싶은 일 전혀 없었던) 학생이었고, 김 선생님은 길안여고(吉安女高) 국어 선생 3년째였고. 안동은 ‘현미’의 노래처럼 걸핏하면 밤안개가 짙었습니다. 함께 있던 사람들, 헤어져 돌아가고, 저를 데리고 댁으로 가셔서 서로 다시 꺼내어 할 만한 이야기도 없는 채 그냥 서재에서 자고 가라며 새 이부자리를 내어주셨잖습니까? 그리고는 『‘시인과 농부’ 서곡』을 찾아 두 번 들리고 나면 저절로 꺼질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잠들면 된다고 했잖습니까? 현악기와 관악기의 우아한 선율에 이어지는 첼로, 그리고 발랄하고 장쾌한 행진곡, 언젠가 왈츠로 바뀌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행진곡, 그리고는 소박하고 서정적인 전원 풍경이 떠오르는 그 선율, 어디로 가라는 뜻일까요, 그 행진곡은? 이 '행진'은 언제쯤 끝나는 걸까요?

 

  아, 휘파람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그 가을 어느 문인(文人)의 사과밭 원두막에서 달빛 속으로 불어 보내던 휘파람, 그 밤 휘파람대회에선 김 선생님이 우승이었죠? 언젠가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 나도 한번 멋지게 휘파람을 들려주고 싶다 생각했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참, 그냥 이렇게 지내고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