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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가을葉書(Ⅴ) : 안병영 전 부총리를 그리워하며

by 답설재 2008. 10. 16.

  운동장 건너편의 활엽수들이 가을을 보여줍니다. 하루하루가 다릅니다. 아침 다르고 오후가 다릅니다. 오늘 아침에는 ‘이제 온 나무가 다 붉어졌구나.’ 했는데, 점심을 먹고는 그 붉음이 더 맑아진 걸 확연히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무의 저 윗부분이, 붉게 물드는 나무는 좀 칙칙한 붉은색, 노랗게 물드는 나무는 노란색 가루를 뿌린 듯했는데, 그 붉음과 노랑이 차츰 아래로 내려왔고, 드디어 오늘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칙칙하던 그 색이 차츰 깨끗해지는 걸 보면 결국에는 선홍색, 선황색이 될 것입니다.

 

  설악산 같은 곳은 어떻겠습니까. 속초의 안병영 전 부총리가 생각납니다. 그분이 알면 좀 곤란하지만, 지난여름에 볼일이 있어 택시를 맞추어 속초에 갔었습니다. 설악산 기슭을 넘어 오가며 가을에는 저 울창한 숲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싶었습니다. 그 숲에 지금쯤 야단이 났겠지요. 그분에게는 전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피워대는데, “이젠 담배를 끊으면 좋겠다”, 그 부탁을 또 들어야 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연전에는 왜 엉뚱한 생각을 하느냐며 속초에서, 그 바닷가 마을에서 들려오는 꾸중을 30분간이나 들었습니다. 혼자서 좀 씩씩대다가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이 나이에 꾸중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다행이지.’ 광화문 정부청사에 근무할 때는 결재를 받으러 들어갈 때마다 똑같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덜 피웠는지 냄새가 덜 나네요?” 덜 나긴 뭐가 덜 났겠습니까.

 

 

 

 

 

                      교장선생님.

  따듯한 가을편지, 감사드립니다.

  이곳 가을 정취는 서울의 풍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청정하고 그윽한 멋이 있습니다. 9월말 경 자연에 더 가깝게 다가갈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설렙니다.

  일본 여행은 매우 좋았고, 재일 한국인 교육과 연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이충호 선생님을 그곳에서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무척 반가웠습니다.

  교장선생님. 정년이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 듯합니다. 부디 건강 잘 지키시고, 아이들 많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무척 어려우시겠지만, 이제 금연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행복하시기를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안병영 드림.

 

 

 

 

  그분은 참 열정적입니다. 교육부에서 십여 년간 열한 분의 장관을 보며 어느 분에게나 ‘이분은 이렇구나’ 했지만, 그렇게 열정적인 분은 그분뿐이었습니다. 새벽 5시면 일어나 인터넷으로 간밤에 벌어진 세상일들을 다 훑어보고, 오늘 할 일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제 일어났겠지' 싶으면 알아두어야 할 사항에 대해 전화를 했습니다. 가령, “고등학교 전문교과는 몇 과목이죠?”(445과목)

  그분은 또 결재를 해준 모든 서류를 비서실에서 복사해두게 했습니다. 신문에 기고한 모든 원고의 파일도 받았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 모든 부서의 일에 대해 그렇게 했습니다.

 

  내가 교육부를 나온 후 조금 더 있다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에 내가 근무하는 학교를 찾아와서 아이들에게 한 시간 문답식 강의를 해주고, 교사들에게도 두 시간 대담을 해주었습니다(그들이 뭘 기억하고 있을까요?). 2007년 초봄, 정년이 되어 훌쩍 속초로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왜 거기 가서 사느냐고 자꾸 물었을까요? 이렇게 썼습니다(‘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2008.4.10. ‘편지’에 게재된 글).

 

 

 

 

탈(脫) 서울기(記)

 

  정년퇴직을 하기 훨씬 전부터 마음으로 정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년을 하면’, 이러 저러하게 살겠다는 상상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럴 때면 언제나 ‘서울을 떠나자’라는 생각이 마치 강박관념처럼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정년을 하면, 세상 번잡을 피해 보다 단순하게 살고 싶고, 내키는 일만 하고 싶고,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데 그 모든 것이 서울을 떠나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탈(脫)서울’을 지상과제처럼 생각했다. 다행히 아내도 동의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갈까. 그래도 서울에서 멀리 달아나야지. 실은 아무도 잡는 사람이 없는데 멀리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서귀포가 어떨까. 남해도 좋던데, 이런 저런 궁리 끝에 강원도 속초로 정했다. 전혀 연고가 없지만 눈여겨보아 둔 곳이다. 그래서 작년 2월 대학을 정년하자마자 이곳으로 내려 왔고, 벌써 여기 온지 1년을 훌쩍 넘겼다.

 

  이곳에서 스스로 가장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직 온전치는 않으나 내가 점차 내 생활에 주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돌이켜 보면, 서울에서 나는 언제나 사회적 약속의 연쇄 속에서 허덕이며 살았고, 항상 스케줄에 쫓기고, 데드라인에 목매였다. 체면 때문에, 남과 척지지 않으려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인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 나는 여기서 비교적 내가 하고 싶은 일, 마음에 내키는 일을 내 의지대로 즐겨서 하고 산다. 알량한 체면이나, 하찮은 명예는 상관할 필요가 없고, 뿌리치기 어려운 연고의 늪에서도 꽤 해방된 느낌이다. 내 시간은 내가 직접 요리한다. 게다가 여기서 내 유일한 취미인 산행이 언제라도 가능하니 그런 것이 좋다. 서울에 산다면 이 모든 것이 가능했을까.

 

  지인(知人)들이 내게 흔히 던지는 질문은 외롭지 않느냐는 것이다. 밤낮 그 산, 그 바다를 보면 지루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는 거의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잘 지낸다. 현대인들은 명동 한가운데서도 외롭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런 실존적인 얘기가 아니다. 우선 이곳의 일상이 그런대로 바쁘다. 그간 하고 싶은데 못했던 일이 그리 많을 줄 몰랐다. 주변에 가고 싶은 산행 코스만 해도 끝이 없고, 알량한 전공 공부에 쫓겨 못 읽고 밀어 두었던 역사책, 철학책, 소설과 시들도 그리 많을 줄 몰랐다. 어쭙잖은 사색하기, 음악듣기, 자신과 대화하기도 바쁘다. 올해부터는 조금씩 텃밭을 가꾸려 한다. 더 바빠질 것이다. 그래서 이곳 생활이 외로움을 반추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또 가끔 밀려오는 약간의 외로움은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기 때문에 얼마간 감미롭기도 하다. 그런데 바빠도 전혀 쫓기는 기분이 없다. 그리고 산과 바다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특히 산은 계절 따라, 아니 시시각각으로, 또 보는 곳과 각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뀐다. 천의 모습을 연출하는 자연의 신비 속에 빨려 들어가면 쉽게 자신을 잃고 거기에 동화된다.

 

  어쩔 수 없이 서울을 가끔 간다. 그런데 서울을 가도 가능하면 일만 보고 그냥 돌아오려고 애쓴다. 마치 자칫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것 같아서 괜히 불안하다. 서울의 분답(紛沓) 속에서 다시 나 자신을 잃으면, 그 때는 다시 이 작은 나만의 행복한 시간으로 영영 되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분이 "정년이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 듯합니다."라고 했듯이 저는 내년만 지내면 정년입니다. 그러면 뭘 해야 합니까? 그분처럼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깊은 생각 말고 골프치고 해외여행 다니면 되나요? 서양에서는 초등학생 때 골프 배운다는데, 이보다 더 건강하면 그 건강, 뭐에 씁니까? 필요할 때도 가지 않은 해외여행은 또 왜 갑니까?

 

  가을인데……, 가을이어서 그런지, 별 생각이 다 듭니다.

 

 

  추신 : 그분은 교육부에서 내보내주면서 "십수 년 날밤을 새웠으니 이제 신념대로 아이들 교육에 파묻혀 선비답게(사실은, '선비처럼'이겠지요) 살아가면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걸 부끄러워해야 할까요, 송구스럽다고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