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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가을葉書(Ⅳ) : 코스모스와 어느 양호교사의 사랑

by 답설재 2008. 10. 3.

 





 코스모스와 어느 보건교사의 사랑





 




이맘때쯤엔 코스모스가 지천이었습니다. 고생스런 삶이어서 그런지 그 고향이 저는 싫습니다. 싫은데도 생각이 납니다. 요즘은 밤낮없이 떠오릅니다.


주말 이야기 끝에 코스모스라도 좀 봤느냐고 물었습니다.

"에이, 코스모스야 여름방학 전 칠월 중순에 이미 봤는걸요."

환경의 변화를 우리는 '아직은' 가볍게 이야기합니다.

"이제 꽃들도 미친 것 같아요." …….

꽃들이 미쳤다면 우리는 미치지 않았을까요? 꽃들이 미쳐나가도 우리는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느 소설가가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국어 선생으로 근무했답니다. 그의 단편소설 중에는 교과서에 실린 것도 있어서 인기가 높았겠지요. 미혼의 양호 선생(보건교사)이 그만 사랑에 빠졌더랍니다. 시시때때로 음식을 장만해주었고 양말이랑 손수건이랑, 나중에는 속옷까지 손수 세탁해 주었는데, 물론 그 소설가는 기혼이었습니다. 사랑하면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뭐든 해줘야 하고, 그게 삶의 목적이 되지 않습니까. 당장엔 말릴 수 없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세상이 그런 사람들을 그냥 둡니까? 그 양호 선생은 그 학교, 아니 그 소설가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그냥 살고 있을 수가 없어 멀고 먼 브라질로 이민을 갔더랍니다.

그곳에서 어떻게 지냈을까요? 헤어져 간 삭막한 땅에서.

몇 년 후 소설가는, 함께 걷던 가을 길이 생각나서 코스모스 씨앗을 보냈답니다. '코스모스가 피면 잠시 옛 생각을 할 수 있겠지.' 그런 뜻의 애틋한 위로였을까요?

그걸 오가는 길가에 뿌렸겠지요. 코스모스는 어김없이 피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었다 지면 또 무수히 피었습니다. 잘도 자라고, 잘도 피었습니다. 그렇게 사시사철 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 '아하! 열대에서는 코스모스도 사시사철 피겠구나.' 했습니다. 그러니까 코스모스가 피면, 이제는 쓸쓸한 추억이 되었지만, 잠시 아름답고 즐거웠던 옛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사시사철 내 생각만하라'는 뜻이 되었으니 아이들 말처럼 "미치고 환장할 일" 아니었겠습니까?


"에이, 코스모스야 이미 여름방학을 하기 전 칠월에도 봤는걸요."

우리는 이제 '가을추억'도 마음대로 추억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객쩍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추신 : '위키백과'를 보면 코스모스는 본래 6월부터 10월까지 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골에서는 가을에나 피었지 않습니까? 여기는 멕시코는 아니니까요. 환경의 변화가 어디까지 가려는지, 9월 하순까지 기온이 30도를 넘은 것은 100년 만에 처음이랍니다.


코스모스(Cosmos bipinnatus)는 멕시코가 원산지인 코스모스속의 한해살이풀이다. 하늘하늘 피는 꽃을 보려고 널리 심어 기른다. 키는 1.5~2미터에 이르고 줄기는 곧게 서며 털 없이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잎은 마주나고 2회 깃꼴겹잎이며 갈라진 조각은 선 또는 바소 모양이다. 가을에 피는 것으로 아는 꽃은 6월부터 10월까지 피며 줄기와 가지 끝에 한 개씩 달린다. 두화의 지름은 6센티미터 정도이며 설상화는 6~8개이고 색깔은 흰색, 분홍색, 빨간색 등 품종에 따라 다양하다. 열매는 수과로 털이 없다.


소설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현대문학』에서 읽고, 용인 수지에서 아름다운 여성 교감선생님께 함께 근무할 때의 어느 좋은 가을날 점심시간에 얘기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가 쓴 소설의 제목은 기억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잊었습니다. 잠시일지 모르지만 요즘 같으면 참 좋은 가을날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