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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축전 (Ⅱ)

by 답설재 2008. 7. 2.

  지난해 가을에 ‘전근 축하 전보와 편지’라는 제목으로 쓴 글은 요즘도 더러 읽히고 있는 걸로 보아 ‘축전’은 블로그 독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소재인 것 같아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지난 3월에 고려대학교 최광식 교수를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신라사를 전공한 사학자로, 중국의 동북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한 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로 활동했기 때문에 재단 설립·운영의 담당관이었던 나는 그와 자주 만나야 했습니다.

  그는 매우 소탈하고 선이 굵은 학자입니다. 동북공정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워지고 여러 곳에서 강의나 회의 요청이 늘어나자 더욱 바빠져서 잠잘 시간이 부족하다며 승용차를 두고 주로 택시를 타고 다니며 잠깐씩이라도 눈을 붙인다고 했습니다. 재단 설립 과정이나 운영 과정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이야기들 중에서 한두 가지만 꺼내 보겠습니다.

 

  2004년 봄 어느 날 저녁, H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중국 측 학자들과 비공개 회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중국학자들의 거동을 살피고 통역되는 말을 들으며 속삭였습니다.

  “저 사람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듣지 마십시오. 오늘 하는 말과 저들의 행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회의가 끝날 무렵 그가 내게 속삭였습니다.

  “정부 관리가 공연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해 가을에 나는 용인 성복초등학교 교장으로 갔습니다. 한적한 그곳으로 그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그렇게 분주하던 내가 초등학교 교장으로 나와서 ‘한가하고 여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에게 ‘동북공정’이나 ‘역사교육의 중요성’ 같은 강의를 부탁할 수도 있지만 교사들은 늘 바쁘니까 그런 강의를 좋아하기나 하겠습니까? 그냥 학교 앞 식당에 가서 동태찜을 시켜 둘이서 식사나 했습니다. 땀을 흘리며 밥 한 공기를 다 비운 그는 “참 맛있다”면서 밥 한 공기만 더 먹겠다고 했습니다. ‘저렇게 먹으니 건강하고 일도 잘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가 우리나라 최대의 종합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 된 것입니다. 나는 주요인사도 아니고 명분도 없으니 취임식에 갈 일도 없고 그냥 축전이나 보냈습니다. 기억에 그 축전은 이랬습니다.

 

  "교수님께서 최순우 선생의 반열에 오른 것을 축하합니다. ○○○ 드림."

 

   최순우(崔淳雨) 선생은 고인(故人)입니다. 프로필을 찾아보면 1916년 개성 출생으로 1943년에 개성부립박물관 입사, 1945년 서울박물관으로 전근, 이후 국립박물관 학예관, 미술과장, 학예연구실장 등을 역임했고 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했으며 이후에도 많은 활동을 하다가 1984년에 작고했습니다.

  정양모(국립중앙박물관장 역임) 선생은 “최순우 선생은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도인일 뿐만 아니라 당신의 생활까지도 세속에서 벗어나 탈속의 경지에서 의연하게 사시려고 평생을 노력한 분”, “형언하기 어려운 우리의 아름다움을 글로 나타낸 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떻게 나타냈는지 딱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런 분의 글을 보여드리면서 ‘중략(中略)’을 하는 것이 예가 아닐 것 같고 그런 분의 글 한 편을 제대로 다 보여드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긴 하나 저작권 문제도 있을 것 같아서 찬양하는 의미를 담아 일부분만 인용합니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준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중략)…

  이 무량수전 앞에서부터 당간지주가 서 있는 절 밖, 그 넓은 터전을 여러 층 단으로 닦으면서 그 마무리로 쌓아 놓은 긴 석축들이 각기 다른 각도에서 이뤄진 것은 아마도 먼 안산이 지니는 겹겹한 능선의 각도와 조화시키기 위해 풍수사상에서 계산된 계획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석축들의 짜임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신라나 고려 사람들이 지녔던 자연과 건조물의 조화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은 순리의 아름다움이라고 이름짓고 싶다. 크고 작은 자연석을 섞어서 높고 긴 석축을 쌓아올리는 일은 자칫 잔재주에 기울기 마련이지만, 이 부석사 석축들을 돌아보고 있으면 이끼 낀 크고 작은 돌들의 모습이 모두 그 석축 속에서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희한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이 글은 선생이 작고한 지 10년 후인 1994년 학고재에서 나온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란 책에서 옮겼습니다.

  얼마 전에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兪弘濬)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창작과비평사, 1993, 98쪽)에서, 어느 사람이 최순우 선생의 글은 좀 감상적이고 아카데믹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해서 "감상적이면 어떠냐?" "아카데믹하지 못하면 어떠냐?"고 했다고 썼습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제목만 봐도 좀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유홍준의 말마따나 좀 그러면 어떻습니까? 나는 그것이 오히려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대가의 뜻도 모른 채 그 멋스러움 때문에 그 책을 사서 서가에 꽂아두는 나와 같은 사람은 또 없을까요?

 

  "교수님께서 최순우 선생의 반열에 오른 것을 축하합니다." 최순우 선생을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분들은 나의 이 축전 문구를 보고 '민망하다'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이 개인에게 보낸 축전이므로 눈감아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