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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비만(肥滿)에 관하여

by 답설재 2008. 6. 27.

■ 비장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비만관리형 걷기 모습

 

비만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누구나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이 얘기를 우리 학교 홈페이지의「학교장 칼럼」에 써보려고 했는데, 워낙 조심스러워서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이 블로그에만 쓰기로 했고, 이렇게 결정하고 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지난번에는 보건소에서 고학년을 대상으로 체지방검사를 해주겠다고 해서 ‘얼씨구나’ 하고 당장 승낙하고 제가 나서서 비디오 인터뷰까지 해주는 등으로 온갖 친절을 베풀다가, 검사가 거의 끝날 때쯤 “비만인 아이 하나를 골라 인터뷰 좀 하자”고 해서 제 표정을 싹 바꾸었습니다. “안 됩니다. 그건 안 됩니다!” 냉정하게 자르고 나니 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누구를 촌놈쯤으로 아나?’ 싶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동네를 돌아보십시오. 바쁜 세상에 할 일없이(?) 오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이한 풍경일 수도 있지요. 그들도 평소에는 대체로 “빨리 빨리”가 좋은 이 나라에서 분초(分秒)를 다투며 살아갈 것입니다. 여성들, 특히 아주머니들은 두 팔을 빨래방망이처럼 들어 올리며 씩씩하게 걷는 모습이 자못 비장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걸을 때의 효과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이 모두를 평소에도 그렇게 걷는다면, 그래도 여성에게 매력을 느낄 남성이 몇 명이나 될까요. 그 길을 이른 아침부터 땀을 흘리며 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어나자마다 ‘분초’를 다투어야 하는 ‘저녁형 인간’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반대로, ‘아침형 인간’에게는 저녁에 그 길을 걷거나 달리는 것이 불가능한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 중에도 비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자애들은 저희들끼리 다이어트를 이야기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남자애들 중에 비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여자애가 비만인 것은 심각하게 여기고, 남자애에 대해서는 ‘남잔데 뭐.’ 하고 가볍게 여기거나 ‘다음에 더 크면…….’ 하고 여유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요?

 

 

■ 복부비만의 원인이 밝혀지다

 

연합뉴스(2008.4.18)에 의하면 복부비만을 일으키는 새로운 원인이 밝혀졌답니다.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대학 로슨보건연구소 양 야이핑 박사는 복부지방조직에서 뉴로펩티드-Y(NPY)라는 호르몬이 만들어지고 이 호르몬이 다시 지방세포를 만들어 지방세포의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복부비만이 형성된다는 것을 알아냈는데, 혈액검사를 통해 NPY 수치를 알게 되면 복부비만의 위험이 있는 사람을 미리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인터넷에서 이 기사를 찾아 읽어보았지만 저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서 설명을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양 야이핑인가 하는 그 과학자를 못 믿을 이유도 없습니다. 더구나 그 연구결과가 미국실험생물학회연합회(Federation of American Societies of Experimental Biology)라는, 척 보면 믿음이 가는 기관의 저널에 발표되었다고 하니 더욱 믿음직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원인이 밝혀졌다면 치료법 개발은 시간문제겠지요.

 

 

■ 비만에 관한 상식들

 

요즘은 웬만한 사람은 비만에 대해 일가견(一家見)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들일 것입니다.

 

○ 비만은 체내에 지방이 과다하게 축적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비만이 자꾸 늘고 있다. 어린이 비만도 늘고 있다.

○ 외모 때문에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이 많고, 더러 건강을 해치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써서 몸을 망치기도 한다.

○ 부분적인 비만 중에서 더 무서운 것은 복부비만이다. 남성에게는 복부비만이 많고, 여성에게는 엉덩이, 허벅지, 아랫배 비만이 많다. 그러나 여성도 나이가 들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복부비만이 생기기도 한다.

○ 복부비만은 당뇨병, 심장병, 뇌졸중, 고혈압, 고지혈증 등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 다른 데는 뚱뚱하지 않은데 배가 불룩 나오면 남 보기에도 부끄럽다.

○ 유도선수나 역도선수라면 키에 비해 몸무게가 많이 나가도 비만이 아니다.

 

더 있습니까? 물론 더 있겠지요. 그래서 모두들 일가견을 가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정말로 멋진 책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위에서 ‘복부비만의 원인이 밝혀지다’라는 제목으로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대학 로슨보건연구소 양 야이핑 박사의 연구결과를 인용했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이 보기에 그 정도는 이미 밝혀져 있던 것 아닌가-과학적으로는(엄밀하게는) 다르겠지만-싶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책 소개를 하려고 하니까 속이 상합니다. 제 책은 안 팔리는 형편에 남의 책이나 소개하는 일이 즐겁겠습니까. 대단치 않은 책이지만 그래도 살 만한 사람에게는 제 돈을 들여 사주었으니 팔릴 리가 없고 출판사만 골탕 먹인 꼴이니 그 출판사에서는 저의 또 다른 원고를 받아가서 조판을 끝내 놓고는 유야무야입니다. ‘이번에도 책을 내봐야 또 그런 꼴이 분명하다’ 싶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에만 남의 책을 소개하고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소개합니다.

 

나탈리 앤지어,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2003년에 번역된 이 책은 일단 재미있습니다. 생명의 본성(本性)에 관한 책이니 과학책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나 아주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대충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렇다고 무슨 ‘교훈’ 같은 걸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그런 기대를 하면 책값이 아까울지도 모릅니다. 요즘 잘 팔리는 수많은 책들처럼 ‘처세술(處世術 :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더 똑똑한 사람이고 돈을 많이 벌거나 출세하거나 남에게 잘 보일 수 있다. 등)’ 같은 걸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그냥 생명의 진실을 알려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다 읽어도 무슨 감동 같은 걸 받을 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냥 재미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바퀴벌레에 대한 예를 들겠습니다.

 

“실험 결과, 환기를 잘 시키는 것이 바퀴벌레를 쫓아버리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퀴벌레는 공기의 흐름을 통해 짝의 화학적 신호를 감지하는데, 만약 공기의 흐름이 바람에 가까울 정도로 빨라지면 바퀴벌레의 몸뚱이를 감싼 코팅이 순식간에 말라서 죽게 된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바퀴벌레 퇴치 방법은 부엌 창문을 열어두거나 찬장이나 싱크대 밑에 작은 팬을 설치해두는 것이다.”(176쪽)

 

“지금 컴배트가 막강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해도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승산이 있는지는 명심해야 한다. 바퀴벌레는 천문학적인 번식력을 갖고 있으며 수명이 짧다(독일 바퀴벌레의 경우 수명 2년간 약 4천만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고 175쪽에서 설명함 ). 그리고 바퀴벌레들은 이미 수천 년 동안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그들은 참을성이 많다. 그래서 도시인들이 새로운 살충제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효과가 있기를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믿는 신이 길고 흰 수염을 가진 지혜로운 노인의 얼굴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머리를 살짝 수그리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177쪽)

 

이제 이 글의 결론삼아 이 책에서 소개하는 비만에 대해 인용할 차례입니다. ‘포유동물의 운명’이라는 글인데, 너무 많이 인용하면 남의 책 홀랑 베끼는 일이 되니까 이번에도 두 부분만 보여드립니다.

 

“지방은 어려운 시기에 에너지원으로 쓰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식품에 들어 있는 지방은 아주 쉽게 체지방으로 변화된다. 섭취된 지방을 저장 가능한 지방으로 변화시키는 대사 과정에서 소화계는 섭취된 지방 분자에 들어 있는 에너지의 2%(겨우!)만 쓰고 나머지는 지방세포에 저장한다.”(263쪽)

 

“지방세포는 원래 크기의 열 배(그렇다면 풍선이군!) 이상 늘어날 수 있다. 지방세포는 크고 둥근 지방 방울을 싸는 얇은 막과 같은데, 돼지고기로 채워진 소시지의 막보다 잘 늘어난다. 섭취한 식품에 지방이 너무 많이 들어 있어서 체내에 존재하는 지방세포들이 다 흡수할 수 없으면, 신체는 새로운 지방세포를 생산해서 남은 지방을 흡수한다(인체가 신비로운 것도 이때는 탈이군!). 또 지방세포는 한번 생성되면 죽는 법이 없다. 체중이 줄 때는 지방세포가 죽는 것이 아니라 수축되는 것뿐이다. 한번 만들어진 지방세포는 절대로 죽지 않고 지방질이 풍부한 식품을 늘 기다리고 있다.”(264쪽)

 

어떻습니까, 지방세포의 기능이. 이보다 더 고마울 수 없습니까? 당연히 그렇지요. 그러나 다이어트를 하려는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운명적인 결점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삼겹살에 욕심을 내시겠습니까? 아이더러 “더 먹어라!” “실컷 먹어라!” 하시겠습니까? 실컷 먹을수록 그 세포 수는 무한대로 자꾸 늘어나고 한번 만들어진 세포는 우리가 죽는 날까지는 ‘영원히’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사족 :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도 삼겹살 좀 먹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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