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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전쟁·국방·애국·교육

by 답설재 2010. 11. 29.

 

 

 

전쟁·국방·애국·교육

 

 

 

 

  저는, 제가 모르는, 짐작도 못하는, 저 같은 '한물간' 인간은 가르쳐줘도 모르는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전쟁 말입니다.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애국 같은 건 이제 좀 가볍게 여겨도 되고, 국토방위 같은 건 대충 생각해도 우리나라에는 다 별도의 무슨 좋은 수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야기할 힘이 없습니다. 그냥 이 정도 수준 밖에는 할 이야기도 없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보다 못한 사람이 별로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다만 전쟁이 싫고 '무자비한 불벼락'이 싫습니다. 우리가 약하게 보이면 우리를 해칠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탄탄하다고 믿었던 저 시멘트 블록으로 된 땅을 뚫고라도 솟아오를 것입니다. 역사에는 그런 기록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은 싫고, 우리를 해칠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단 두 가지 생각만 분명합니다.

 

  다섯 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났으니 뭘 알겠습니까. 그렇지만 공습을 겪긴 겪었고, 그 전쟁으로 인한 그 이후의 생활이 싫었습니다. 일년 내내 점심은 생각지도 못하는 그 굶주림도 싫고, 키보다 더 큰 총을 가지고 지나가는 인민군을 쳐다보던 기억도 싫고, 긴 줄을 서서 분유 배급을 받아 먹은 추억도 싫고, 다른 나라에서 보내준 유리 구슬 하나를 받아보려고 손에 땀을 쥐고 앉아 눈이 뚫어져라 그 작은 박스를 쳐다보던 배급이나 추첨의 기억도 싫고, 집에서 가져간 괭이나 삽으로 학교 뒷편 실습지를 팔 때마다 솟아오르던 그 총알들에 대한 섬찟한 기억들도 다 싫습니다. 얼마만큼 싫으냐 하면 '정말로' 다시는 겪기 싫고, 제 가족이 그런 경험을 한다면 그건 더 싫습니다.

  "애국? 그런 것쯤 별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 '국토방위'나 '애국'은 그냥 단순하고 간단명료한 논리 같은데도 뭐가 그리 복잡한지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을, 부끄럽지만 아직도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 일이 별로 없어 단순하므로 단순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국토방위와 국가안보, 애국에 대한 교육은, 그 방법을 깊이 생각하여 더 잘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복잡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겠습니다. 우선, 신문을 보면 "6·25 전쟁이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조차 모른다"고 한탄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건 대답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외우는 것에 소질이 없거나 '넌덜머리'가 난다면 대답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큰일 날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 무서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건 모르면 큰일 날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앞으로는 제발 냉소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표현, 과장된 짓거리 같은 건 집어치우고 '진정성'이 있는 교육을 하면 좋겠습니다. 작은 예를 들겠습니다. "○○는 애국의 지름길" "◇◇는 안보의 첫걸음" "□□는 통일로 가는 길" …… 결코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저는 그런 무책임한 표현들이, 그렇게 하는 과장(誇張)이, 그런 '비(非)진정성'이 우리의 관심, 우리의 진정성을 갉아먹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행사만 했다 하면 그렇게 써붙이는 꼴이 정말로 밉습니다. 나중에 정말로 그렇게 써붙여야 할 때는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싶었습니다.

 

  국가보훈처가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가을에 한국·미국·일본·중국의 초·중·고 학생 600명씩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모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얼마나 자긍심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한 점수가 중국은 84.2점(100점 만점), 미국은 70.6점, 한국은 62.9점, 일본은 55.3점이었고,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라를 위해 싸우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중국은 74.8, 한국은 56.3, 미국은 49.7, 일본은 29.3이었답니다.1

  오늘 이 글을 쓰며 그 자료가 생각나서 인용했습니다.

 

 

  눈 내려 하얗게 덮인, 저 풍경이, 저 햇살이 아름답습니다. 저것들은 다 '우리의 것'입니다.

 

 

 

 

  1. 조선일보, 2010.11.23, A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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