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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54

내 무덤 생각 집에서 나가 10여 분이면 저 무덤에 이를 수 있습니다. 누구의 묘인가 싶어 다가가 봤지만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이 너무 많이 갔습니까? 누가 보기에 그렇습니까? 망자는 상석(床石)마저 마모된 세월로써 충분했을까요? 집에서 나가면 10여 분, 그렇게 가기 쉬운 곳. 누구에게나 그런 곳. 잠깐이면 딴 세상인 곳. 누구나 저런 곳으로 가는 건 아니죠. 그렇게 가봐야 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2020. 3. 20.
달밤 그대는 다르 자루크의 밤들을, 달빛이 바다의 수면에 거품 같은 빛을 뿌려놓던 그 투명한 밤들을 기억하는가. 그 많은 폐허들 위에, 그 많은 추억들 위에, 그 많은 살아 있는 존재들과 그 많은 희망들 위에 시간이 멈추어 있었다. 눈 속에, 마음속에 모든 형태를 만들어내 보였던 그 풍경에서 무엇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보름 지난 지 엿새째, 오늘 새벽 2시쯤이었습니다. 다시 잠들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밤이 되풀이됩니다. 책장을 넘기기도 어렵습니다. 돋보기도 맞지 않게 되었지만 하필이면 끔찍한 아우슈비츠 이야기에 코로나 열풍이 불고 있는 이 상황이 오버랩되어 그것도 싫습니다. 장 그르니에가 "지중해의 영감"에서 심금을 울려주던 우리의 달밤 그리운 그 달밤 2020. 3. 15.
엄청 높은 집 구경 엄청 높은 집 구경 저 멀리 엄청 높은 집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나도 아직 가 본 적은 없지만 엄청 유명한 집인데…… 아무래도 안 보이는군요. 미안합니다. 사진이 허접해서 그렇습니다. 그 부분을 확대한 걸 보십시오. 이제 보이죠? 가보지도 않은 주제에 아는 척한 것도 미안합니다. .. 2020. 3. 14.
서러운 나날의 일기 창밖의 저녁나절이 고요합니다. 그 좋은 사람들, 많기만 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햇빛만 좋을 뿐이어서 서럽습니다. "가까이 가지 않을게?" "응~" 우리는 그렇게 하고 헤어져 왔습니다. 2020. 3. 7.
나를 서럽게 하는 '코로나 19' 밖에 나가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앙증맞은 여자애와 아름다운 '엄마'가 서 있었는데 내가 나타나자 엄마가 아이를 저쪽으로 감추었습니다. 그들이 올라가고 난 다음에 따로 탈까 하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나' 싶어서 뒤따라 타버렸습니다. 유치원생 아니면 초등학교 1학년쯤으로 보이는 그 여자애가 잠시를 참지 못하고 몸을 흔들어대다가 내가 있는 쪽으로 기우뚱하자 몇 번 주의를 주던 엄마가 그만 사정없이 '홱!' 잡아챘습니다. 내가 서 있는 쪽의 반대쪽으로 낚아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었습니다. 전철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노숙자 냄새 때문에 일어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노숙자가 생각났습니다. 그 엄마가 밉지는 않았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코로나 바이러스 사진(그림)은 어째.. 2020. 2. 27.
무슨 지도였지? 지난해 여름, 어디서 본 지도입니다. 휴대전화로 캡처해놓긴 했는데 무슨 지도인지 기억에 없습니다. 일전에 안동립 선생이 독도 관련 학회에서 발표했다는 논문을 보여주어서 참고문헌을 봤더니 예전에 지도학을 강의해 준 교수님 논문도 보였습니다. '아, 그분이 독도에 관한 논문도 썼었구나!' 교수님은 여러 가지 도법(圖法) 강의를 하며 방학 때 꼭 한번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그게 과제인가 싶어서 그 여름에, 어언 40년 지금도 갖고 있는 색연필로 1,000 ×1,000의 모눈종이를 색칠해서 그 지도를 완성했는데 다음 학기 개강 때 그 지도를 들고 간 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교사들은 방학 중에도 바쁘다는데, 정말로 이걸 그렸어요?" "과제인 줄 알았습니다." 교수님은 그 지도를 선물로(혹 '기념물'이라고 .. 2020. 2. 23.
雨水 日記 雨水 日記 이틀간 눈이 내리더니 조용하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 봄은 강력하다. 또 그렇지 않은 척할 것이다. 나는 저항하지 않는다.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요구할 것도 없다. 필요도 없다. 눈은 또 내릴 것이다. 나의 꿈은 길었다. 끝나지 않은 꿈들은 슬픔으로 변질되어 간다. 雨水…… .. 2020. 2. 21.
황인숙 시인이 본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 황인숙 시인이 본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 Pope Francis: A Man of His Word DAUM 영화에서 캡쳐 * 기독교, 특히 개신교 신자들은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심하게 차별해서 대하는데(그들이 부자와 빈자 차별하는 만큼이나), 성 프란치스코는 동물을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새들과 얘기도 나눴다지. *.. 2020. 2. 16.
집으로 돌아온 트럭 1 녀석이 2017년에 가지고 놀던 트럭입니다. 모양은 저렇게 단순한데 온갖 소리를 다 냅니다. 여기를 눌러도 저기를 눌러도 소리를 내고, 그게 또 각각 달라서 어디를 누르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나는 아직도 분간하지 못합니다. 어쨌든 건드리기만 하면 매혹적인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2 녀석은 그즈음 트럭에 꽂혀 사달라고는 했지만 저걸 처음부터 그리 신기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가게에는 적당한 게 눈에 띄지 않아서 저걸 사다 준 것인데 어디로 보나 좀 유치하다고 할까, 어쨌든 처음부터 시큰둥하고는 2018년, 2019년, 어쩌다 한 번씩 툭 건드려 보면서 '내가 이것도 갖고 놀았지' 하는 표정일 뿐이어서 이번에 여러 가지를 '과감히' 정리하면서 '미련 없이' 내다 버렸던 것이고, 그래서 저렇게 플라스틱.. 2020. 2. 13.
노인의 성격 유형별 특징 노후 대책에 관한 기사를 봤습니다. "제2 유년기로 돌아가는 노년기,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가 으뜸"(중앙일보, 2020.2.8. '황세희의 러브메이징') 글쓴이는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센터장. 노후 대책이니까 노인이 되기 전이어야 하는데 이미 노인이니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하면서도 밑줄을 그었습니다. * 안타깝게도 바쁜 중년기를 지나다 보면 대부분은 '어쩌다 노인'이 된다.* * 재테크에 집착하면서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과 운동법을 찾는데 열과 성을 기울인다. * 하지만 모든 일에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동한다. * 의례적으로 한국인에게 권장되는 건강 식습관은 매끼 밥·국·반찬 세 가지 정도의 전통 한식을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게 섭취하는 것이다. 또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1주일분.. 2020. 2. 9.
토끼몰이 엊그제 저녁의 눈이 아직 저렇게 앉아 있습니다. 창 너머 저 풍경이 사라져 간 겨울 달력의 풍경화 같습니다. 여섯 장 혹은 열두 장 달력들은 동양화로 꾸며지거나 한두 달 유명한 배우 사진을 볼 수 있도록 꾸며졌고 더러 비키니 차림의 예쁜 사진도 있었습니다. 이러고저러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옛날 일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의 토끼몰이도 생각납니다. 육십 년은 훨씬 넘었고 칠십 년이 되어갑니다. 아, 참……. 토끼들은 아이들의 함성 때문에 정신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붙잡혔습니다. 용감한 아이는 그럴 때 표가 났습니다. 와락 덤벼들어 붙잡으면 어디 있었는지 알 수 없었던 선생님이 나타나 그 아이를 칭찬하고 토끼를 받아갔습니다. 나는 교실에선 어쩔 수 없이 표가 나는 아이였지만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 2020. 2. 6.
'설날' 혹은 '새해' 1 섣달그믐에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여행단을 따라가다가 일행을 놓쳤는데 희한한 여성 집단에게 붙잡혀 인질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들의 식사비 일체를 내가 지불해야 한다고 해서 기가 막혀하는데 그 집단의 대표인 듯한 여성이 식사를 시작하려다가 기꺼이 식사비를 내겠다고 했는지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결코 그런 적 없다고 했더니 그 수십 명이 모두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2 특히 섣달 그믐밤에는 좋은 꿈을 꾸고 싶었습니다. 평생 그런 기대를 하며 지냈습니다. 누가 내게 그렇게 말한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새해 새벽에 좋은 꿈을 꾸면 일 년 내내 행복할 것이라는,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 같은 것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앞두거나 섣달그믐쯤이면 좋은 꿈을 꾸라는 덕담을 하는 .. 2020.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