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상1159 그리운 지난해 겨울 건너편 아파트에서 저녁 늦게까지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떤 이야긴지도 모른 채 포근함을 느낍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이곳 여름 장마는 지난 8월 29일 토요일 저녁에 끝났을 것입니다. 새벽까지 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서였던지 가벼운 감기에 걸렸었습니다. 아무래도 여름밤 같지 않게 스산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지난 겨울날들의 꿈을 꾸었습니다. 지난겨울은 아무런 생각 없이 지냈습니다. 저녁이 되면 일주일에 서너 번 헬스장에 갔고, 가수 M도 만났습니다. 눈이 아주 큰, 젊은 가수 M. 나처럼 허름한 운동복을 입고 있어서 바라보기도 편했습니다. 그도 우리 아파트에 사는데 사람들은 개그만 A, 탤런트 I 부부 이야기만 합니다. 헬스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나는 올해 내내 가지 못했습니다. 암.. 2020. 9. 6. '대화'라는 것 이 좋은 길을 젊은 부부가 걸어옵니다.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을 연령입니다. 그들이 내 곁을 지나가며 이야기합니다. 두 마디만 들렸습니다. "1 키로면 겨우 1000미터 아이가, 이 사람아!" "그래, 오르막길 1 키로면 멀다고!" 어느 한쪽이 양해할 것 같지는 않았고, 그들은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판단해서 미안합니다. 어쩌면 그 별 것 아닌 것이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대화란 동등(同等)한 입장에서는 부질없을 때가 있다는 걸 인정할 필요가 있고, 어느 한쪽만이라도 그걸 인정한다면 그쪽이 입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대로라도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2020. 9. 4. 내가 죽었다는 통보(부고) '내가 죽었다는 통보', 이걸 생각해봤습니다. 이 순간의 실제 상황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언제 실제 상황이 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듣기 싫다" 하고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말라"고 할 사람이 없지 않겠지요. 그런 분은 흔히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지만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George Bernard Shaw)는 묘비명을 쓰게 한 작가가 있었지 않습니까? 사실은 이 정도는 준비도 아니지요. 그냥 생각을 해보는 거지요. 일전에 지인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소천(召天)"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소천? 알고 보니 개신교에서 쓰는 말이었습니다. 하기야 하늘은 날.. 2020. 8. 31. 내 친구 준○이 산책을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내 친구 준○이를 보았습니다. 나는 맨바닥에 앉아서 노는 애들을 보면 지금도 부럽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놀았기 때문에 지금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옷이 더러워질까 봐, 그로 인해 일어날 성가신 일들을 피하고 싶어서, 병균이 침입할까 봐, 사람들이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할까 봐, 이젠 그렇게 할 나이가 아니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렇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좋구나!' 하게 되고 순간 그 아이 옷을 세탁할 아이 어머니 생각도 합니다. 일전에는 내가 살던 아파트 12층에 사는 여자애가 저렇게 놀고 있는 걸 봤습니다. 걔네는 아이가 걔 혼자입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걔네 엄마 아빠는 걔를 끔찍하게 여깁니다. 십여 년 전 갓난애 시절부터 쭉 지켜봐서.. 2020. 8. 27. 「카라얀의 지휘」 젊은 시절의 그의 지휘를 비디오로 본 적이 있는데, 실로 시원시원하고 늠름한 몸짓이었다. 70년대 후반까지는 신체의 움직임도, 지휘봉을 휘두르는 방식도 활달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부터, 다리를 끄는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신체의 움직임이 점점 적어지고 지휘봉을 휘두르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갔다. 만년에는 휠체어에서 겨우 일어서서 지휘봉으로 그저 몇 번 공간을 날카롭게 찌르는가 싶더니, 공중을 나는 듯이 조용히 휘두르고는 지휘봉을 쥔 손을 들어 올린 채 멈추고, 왼손을 가슴에 대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이것은 지휘를 한다기보다, 거기에 울리고 있는 오케스트라를 듣고 있는 모습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멋지게 지휘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이니 놀랍다. 이우환(에세이)「카라얀의 .. 2020. 8. 19. "나를 위에서! 상대를 위에서!" # 나는 코로나 전에도 나는 웬만하면 마스크를 쓰고 다녔습니다. '뭐 저런 사람이 있을까?'('곧 죽을병에라도 걸렸나?') 싶어 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했습니다. '죽다 살아나서 면역력이 떨어져 봐라. 감기 걸린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바람만 불어도 너도 걸린다.' # 코로나가 왔고 마스크를 써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무슨 사정이 있어서 쓰지 않은 사람이 보이긴 해도 대부분 쓰고 다녔습니다. 쓰지 않은 사람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마스크 쓴 얼굴을 보는 것이 일반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 그러던 것이 최근 - 코로나라는 괴물이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 너도 나도 마스크를 벗어던졌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번에도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 바닥인.. 2020. 8. 16. 엄청나게 큰 엉덩이 '무슨 엉덩이들이 저렇게나 클까?' 그림을 보는 순간, 삽화(일러스트레이션)였던지 만화(카툰)였던지, 1970년대의 어느 날 신문에서 본 그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여성의 엉덩이를 터무니없이 크게 그려놓고, 그 옆에는 무슨 연구원 혹은 박사의 머리가 기형적으로 빅 사이즈인 남성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이상할 것도 없지만) 유독 여성 쪽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림은 여성들이 비만 상태가 되는 걸 나타낸 건 아니었고 다른 곳은 정상적이고 하필 엉덩이가 빅 사이즈였습니다. 의아한 일이긴 하지만 50년쯤(100년이었나?) 후, 우리 인간은 이렇게 변할 것이라는 미래예측 특집 속 그림이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 것 같았는데 사실은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성만 밝히고 성에만 집착하는 여성들이 늘어.. 2020. 8. 13. 우리 집을 사신 아주머니께 아주머니! 어떻게 지내시나요? 이제 반년이 지났으니까 우리 집(아, 아주머니 집)에 잘 적응하셨겠지요? 제 실내 정원(이런! 아주머니의 실내 정원)도 잘 있습니까? 그 작은 정원의 여남은 가지 푸나무들은 한 가지도 빼거나 보태어지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것들은 제가 그 집을 분양받고 처음 입주할 때 전문가를 초빙해서 만들었거든요. 꼭 심어주기를 기대한 건 남천(南天) 한 가지밖엔 없었고요. 그 전문가가 우리 집(아, 그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이렇게 소파도 없이 책으로 채운 거실은 처음 봤다며 이 분위기의 실내 정원을 만들어주겠다고 한 거거든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물만 주면 되도록 해달라'는 특별 부탁을 했고요. 아주머니께서 집을 보시려고 처음 방문하셔서 그 실내 정.. 2020. 8. 9. 이쯤에서 그만 입추(立秋)? S그룹 사보에서 '더위를 없애는 여덟 가지 방법-다산 정약용의〈소서팔사(消暑八事)〉'를 읽었다. 1. 송단호시(松壇弧矢)·소나무 언덕에서 활쏘기 2. 괴음추천(槐陰鞦遷)·느티나무에서 그네 타기 3. 허각투호(虛閣投壺)·빈 집에서 투호 놀이 4. 청점혁기(淸簟奕棋)·돗자리에서 바둑 두기 5. 서지상하(西池賞荷)·서쪽 연못의 연꽃 구경 6. 동림청선(東林聽蟬)·동쪽 숲에서 매미 소리 듣기 7. 우일사운(雨日射韻)·비 오는 날 시 짓기 8. 월야탁족(月夜濯足)·달밤에 발 담그기 이 형편에서 내가 적용해 볼 만한 걸 찾다가 올여름의 성격을 생각했다. 기상청은 더위가 길고 극심할 것으로 예고했다. 그 예고를 두어 차례 들었고 그때마다 열대야가 한 달 이상 지속된 재작년 여름을 떠올리며 두려워했다. 코로나 19로 .. 2020. 8. 5. 등산 혹은 산책, 삶의 지혜 뒷산 중턱까지 2킬로미터는 잘 걷는 사람은 사십 분쯤? 내 아내도 한 시간 삼십 분쯤이면 다녀옵니다. 나는 그렇게 걷는 걸 싫어합니다. 땀을 흘리며 올라가는 것도 그렇지만 아주 드러내 놓고 팔을 휘두르며 푸푸거리고 올라가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삼십 분에 주파(?)하겠지요? 그렇게 애써서 올라가면 그다음엔 뭘 합니까? 나는 그 길을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을 하며 혼자 오르내립니다. 올라갈 때는 저절로 과거와 미래의 일들이 떠오르게 되고 내려올 때는 주로 현재의 일들이 생각나고 더러 가까운 미래의 일도 생각합니다. 어슬렁거리는 꼴이니 힘들지도 않고 외로워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내려오며 이 행복한 시간이 언제까지 주어질 수 있으려나 했고, 카페에 들러 건강빵을 하나 사.. 2020. 7. 26. 비전 갖기, 갖게 하기 1 어느 기자가 잘 아는 노숙자를 만나 숙소에 들어가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회유하는 장면입니다. 노숙자는 음악을 하다가 정신병에 걸렸습니다(스티브 로페즈 『솔로이스트』랜덤하우스 2009, 98). "매일매일 짐을 꾸렸다가 풀지 않아도 되니까 연습할 시간이 더 많아지잖아요." 그에게는 준비된 답이 있었다. 항상 그랬다. "있다고 인정하기는 정말 싫지만 내 비전은 모차르트가 해낸 일을 하고 죽는 거예요. 내 비전은 하느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머나먼 장래의 일을 걱정하지 않는 거죠. 그냥 무사히 거리를 건너고 그걸로 감사하고 그런 식으로 살아가죠.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람들을 예의 바르게 대하고, 선량한 사람으로 지내면 나머지 문제는 음악이 다 해결해줄 거예요." 신문학을 전공하고, 수천 개.. 2020. 7. 21. 나의 노후·사후 십이층 할머니는 내 또래였습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마다 눈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를 휠체어에 태운 그녀의 아들과 인사를 나눴는데 그제야 '우리'(그녀와 나)가 한동안 만나지 못한 걸 알아챘습니다. “가까운 요양원에 모셨는데 오늘 생신이셔서 외출 나왔습니다!” 아들은 가까이 모셨고 외출까지 시켜주는 걸 자랑스러워하며 그렇게 설명했고 그런데도 모든 걸 체념한 듯한 그녀는 눈에 힘이 빠진 채로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하니까 우리는 그만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괜히 그녀를 자주 떠올려보곤 합니다. 정말 괜히! 이층 할머니는 자그마한 키에 늘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만날 때마다 무슨 얘기든 해주었습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꽤나 곱다고 생.. 2020. 7. 11. 이전 1 ··· 36 37 38 39 40 41 42 ··· 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