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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죽음62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데이비드 케슬러 『상실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데이비드 케슬러 『상실 수업』 김소향 옮김, 인빅투스, 2014 Ⅰ 신의 부름이 어떤 이에게는 한가로운 목요일마냥 예견되었다는 듯 다가온다. 누군가에게는 예기치 않은 노크 소리를 내며 주말 프로젝트마냥 다가와 정신없게 만들기도 한다. 별안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랑한 이가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 당신의 세상은 돌연 바뀐다.(275~276) 죽음이 더 갑작스러울수록 상실을 애도하기까지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작별인사 할 틈과 가장 친하고 소중했던 사람이 사라지고 없는 삶을 적응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부정1의 기간은 상당히 길어진다. (277) 내가 사랑한 사람은 왜 죽었는가? 그 슬픔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내가 살아 남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6. 4. 17.
'이러다가 가겠지?' 1 묵현리 산다는 아주머니의 자동차가 신호에 걸려 서 있는 내 자동차 뒷부분을 들이박았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쓰리고, 병원에 드나들던 그때 같아서 종일 죽을 맛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차야 중고니까 굴러가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막혀버린 통로를 철망으로 뚫어준 내 심장이 충격을 받았구나.' 그러다가 다시 생각했습니다. '차는 중고라도 아직 잘 굴러가는데…… 나는 이제 잘 굴러가지 못하는구나.' 묵현리 그 아주머니는 걱정이 되어 문자도 한 번 보내고, 전화도 두 번을 했습니다. 사고를 냈을 때 쳐다보니까 못된 아주머니 같았는데 이러는 걸 보니까 내가 잘못 본 것 같았고, 괜히 오해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연락을 해서 차를 들이받아 괴롭히고 이제 전화로 추가하는구나 싶기도 했습.. 2015. 4. 18.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Known』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Known』 정현종 옮김, 물병자리 2002 당신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할 수 없는 까닭은 당신이 그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며, 따라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다. 죽음은 말이며, 공포를 낳은 것은 이 말이요, 이미지이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의 이미지 없이 죽음을 볼 수 있는가? 생각이 솟아나는 원천인 이미지가 존재하는 한, 생각은 언제나 공포를 낳는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의 공포를 합리화하고 그 불가피한 것에 대항하든가 아니면 당신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믿음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당신과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 사이에는 틈이 있다. 이 시공(時空)의 틈 속에 공포, 불안, 자기 연민인 갈등이 분명히.. 2015. 1. 27.
모두 떠났다 Ⅰ 그 식당은 저 산 오른쪽 기슭에 있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춘천이나 양평 쪽으로 가면서 먼빛으로 한적한 산비탈의 그 식당 건물을 바라본 사람들은 누가 찾아갈까 싶었겠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점심, 저녁 시간에 걸쳐 종일 사람들이 몰려들어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계산대 옆에 커피 자판기, 원두커피 포트가 준비되어 있고, 맞은편 주방 앞에서는 분명히 안주인의 친정어머니일 듯한 할머니가 단정한 모습으로 마늘을 장만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안주인의 다소곳한 품위를 그대로 물려준 어머니답게 더러 화장실을 갈 때가 아니면 여름에나 겨울에나 늘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할머니의 성품은 마늘조각에 그대로 나타나서 어느 조각이나 '무조건' 같은 크기였고 자른 모양도 한.. 2015. 1. 4.
권태문 김만곤 『효행소년 정재수』 '효행' 같은 건 얘기하는 사람을 만나기조차 어렵게 되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건 좋든 싫든, 옳든 그르든 그땐 그랬다는 얘기니까 오해 없기 바랍니다. 그때 우리는 전국적인 선풍을 일으킨 '효행소년'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이 책을 지어낸 것입니다. 경상북도 상주군교육청에서 낸 장학자료였는데, 정재수라는 아이의 전기문이었습니다. 그 왜 설에 큰집에 차례 지내러 가다가 아버지가 술에 취해 눈밭에서 얼어죽을 때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주고 함께 죽었다는 그 아이 생각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육부에서는 당장 자료를 보내라고 했고, 『효행소년 정재수』 축약판으로 보낸 자료가 반공소년 이승복 이야기와 함께 도덕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교과서를 한 .. 2014. 7. 29.
귀신은 아무래도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귀신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어차피 그런 말을 들을거라면 뜸을 들이는 것보다는 내친김에 이야기하고 말겠습니다. 귀신조차 없다면 영 재미가 없을 것 같고, '귀신제도(鬼神制度)'가 있어야 잘하면 귀신 중에 격이 제일 낮다는 저승사자 정도는 한번 해볼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싶어진 것입니다. 저승사자는 초짜 귀신이 한다는 게 정설(定說)입니다. 게다가 저승사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입장에서 보면 다 면식범(面識犯)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어디에 사는 아무개를 데려오라!" 하면 얼른 "그 사람이라면 제가 잘 압니다. 제가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하면 될 것입니다. '귀신은 없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은, 그동안 막연.. 2014. 6. 26.
이만용 「섣달 그믐날」 섣달 그믐날 해는 가도 나 죽은 뒤에 다시 또 돌아오고 풍경은 전과 똑같고 초당은 한적하겠지. 남은 자들 속에서는 멋진 사람 찾기 어려워 혼백인들 이 세상을 무엇 하러 그리워하랴. 술꾼의 자취 서린 무덤 그 위로 계절은 지나가고 시인의 명성 남은 옛집 강산만은 지켜주겠지. 낙화유수 인생이라 한평생 한이러니 세상만사 유유하다 상관 않고 버려두리라. 除夕(제석) 歲去應吾死後還(세거응오사후환) 風光依舊草堂閒(풍광의구초당한) 典型難覓餘人裏(전형난멱여인리) 魂魄寧思此世間(혼백영사차세간) 酒跡荒墳隨節序(주적황분수절서) 詩名故宅有江山(시명고택유강산) 落花流水平生恨(낙화유수평생한) 一切悠悠摠不關(일절유유총불관) 이만용(李晩用·1792~1863) 19세기 전반의 시인 동번(東樊) 이만용이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에 썼다... 2014. 1. 30.
나는 어떤 사람인가?(내가 죽은 후의 일) Ⅰ 가령, 내가 지금 죽으면 어떻게 될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요즘 그가 보이지 않네?' 할 사람이 두엇 있다가 말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았던 사실이 흐지부지하게 처리된 일처럼 되고 말 것이다.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몇몇 사람들은 더러 그럴 것이다. "그 사람 죽었다던데?" "언제?" "지난달이지 아마?" "그래?" "퇴임할 즈음에 심장병이 드러나서 술담배도 못하고 별로 활달하지 못했지." "…………" 그러면 끝일 것이다. 함께 근무했는데도 이미 함께 근무하지 않았던 사이만큼, 혹은 그보다 훨씬 더 멀어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오죽하겠는가. Ⅱ '큰일이다!' 싶은 일? 그런 일은 없다. 내가 없어서 '큰일'인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심지어 '작은일'도 없다. 우선 내가 지금 특별.. 2014. 1. 5.
토마스 만 『마의 산』 서글픔을 느끼게 한 책입니다. 939쪽이나 되었습니다. 저 책을 만만하게 펼치고 앉아 있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이 유명한 책을 찾게 된 것은 『카뮈를 추억하며』 때문이었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디노 부자티의 희곡 「흥미로운 증례」**를 번역해서 연출했다. 그는 더 강한 활력을 주기 위해 작품의 길이를 줄였다. 이 희곡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러한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 보여준다. 환자들이 병원 창문을 통해 건강한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환자들에게는 이들이 낯설게 보인다. 두 진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각 진영에는 다른 진영에 대한 완전한 이해 불가능성이 지배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는 『마의 산』의 요양소 거주자들이 경험하는 그 .. 2013. 8. 22.
토드 메이 『죽음이란 무엇인가』 토드 메이 『죽음이란 무엇인가』 서동춘 옮김, 파이카, 2013 Ⅰ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죽음들을 슬퍼하는 사람을 찾기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죽어도 괜찮은 사람'이 죽었다는 인식 때문인지, 유족들도 '우리는 할 일을 다했다'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생활수준도 좋고 의술도 좋아서 웬만하면 오래 사는 건 좋은 일이지만, 죽음의 의미가 그렇게 변한다면, "늙으면 순순히 가야 한다"는 의미 같아서 착잡해집니다. 그렇게 가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독하겠습니까? 어느 죽음인들 고독하지 않은 경우가 있겠습니까만,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하나도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슬퍼하기보다는 애써서 숙연하다는 걸 보여주거나 너나없이 좀 들뜬 분위기에서 그 사고 혹은 죽음의 경위를 .. 2013. 7. 22.
박형준「홍시」,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고상한 척해 봐도 별 수가 없는 게 인간입니다. 돈이 많아 봐야 별 수 없고, 친구가 많아 봐야 별 수 없고, 자녀가 많고 다 잘 되었다 해도 별 수 없는 게 인간, 죽음입니다. 그것이 생각나게 하는 시 한 편을 봤습니다. ♣ 아내는, 내가 병원에 드나들게 됐는데도 별 기색이 없었습니다. 저러다가 말겠지, 그렇게 생각했거나 뭐 별 일이야 있을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며칠간 병실에 들어앉아서 별별 검사를 다 하고 있는 걸 좀 못마땅해하기도 했는데, 큰 병원으로 옮겨 가슴을 열고 중환자실에 들어가자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일반병실에 있다가 수술을 하거나 하여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되면 당연히 그 일반병실은 비워야 합니다. 아내는 그걸 모르고 '이제 드디어 죽는구나!' 했답니다. 그러니 그 병실을 .. 2012. 7. 11.
영혼의 여정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그다음 날 아침부터 40일에 이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 여정이 시작되기 전날 밤, 영혼은 땀내가 밴 베게에 가만히 누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눈을 감겨주는 모습을 지켜본다. 또한 문과 창문과 바닥의 틈새로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람들이 방 안을 연기와 침묵으로 가득 채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혼이 강물처럼 집 밖으로 흘러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사람들은 동이 틀 무렵 영혼이 자기들을 떠나 과거에 머물렀던 곳, 즉 젊었을 때의 학교와 기숙사, 군대 막사와 주택, 허물어졌다가 다시 지어진 집들, 그리고 사랑과 회한, 힘들었던 일들과 행복했던 일들, 희망과 희열로 가득했던 일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2012.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