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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죽음58

권태문 김만곤 『효행소년 정재수』 '효행' 같은 건 얘기하는 사람을 만나기조차 어렵게 되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건 좋든 싫든, 옳든 그르든 그땐 그랬다는 얘기니까 오해 없기 바랍니다. 그때 우리는 전국적인 선풍을 일으킨 '효행소년'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이 책을 지어낸 것입니다. 경상북도 상주군교육청에서 낸 장학자료였는데, 정재수라는 아이의 전기문이었습니다. 그 왜 설에 큰집에 차례 지내러 가다가 아버지가 술에 취해 눈밭에서 얼어죽을 때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주고 함께 죽었다는 그 아이 생각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육부에서는 당장 자료를 보내라고 했고, 『효행소년 정재수』 축약판으로 보낸 자료가 반공소년 이승복 이야기와 함께 도덕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교과서를 한 .. 2014. 7. 29.
귀신은 아무래도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귀신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그런 말을 들을거라면 뜸을 들이는 것보다는 내친김에 이야기하고 말겠습니다. 귀신조차 없다면 영 재미가 없을 것 같고, '귀신제도(鬼神制度)'가 있어야 잘하면 귀신 중에 격이 제일 낮다는 저승사자 정도는 한번 해볼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싶어진 것입니다. 저승사자는 초짜 귀신이 한다는 게 정설(定說)입니다. 게다가 저승사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입장에서 보면 다 면식범(面識犯)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어디에 사는 아무개를 데려오라!" 하면 얼른 "그 사람이라면 제가 잘 압니다. 제가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하면 될 것입니다. '귀신은 없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은, 그동안 막.. 2014. 6. 26.
이만용 「섣달 그믐날」 섣달 그믐날 해는 가도 나 죽은 뒤에 다시 또 돌아오고 풍경은 전과 똑같고 초당은 한적하겠지. 남은 자들 속에서는 멋진 사람 찾기 어려워 혼백인들 이 세상을 무엇 하러 그리워하랴. 술꾼의 자취 서린 무덤 그 위로 계절은 지나가고 시인의 명성 남은 옛집 강산만은 지켜주겠지. 낙화유수 인생이라 한평생 한이러니 세상만사 유유하다 상관 않고 버려두리라. 除夕(제석) 歲去應吾死後還(세거응오사후환) 風光依舊草堂閒(풍광의구초당한) 典型難覓餘人裏(전형난멱여인리) 魂魄寧思此世間(혼백영사차세간) 酒跡荒墳隨節序(주적황분수절서) 詩名故宅有江山(시명고택유강산) 落花流水平生恨(낙화유수평생한) 一切悠悠摠不關(일절유유총불관) 이만용(李晩用·1792~1863) 19세기 전반의 시인 동번(東樊) 이만용이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에 썼다... 2014. 1. 30.
나는 어떤 사람인가?(내가 죽은 후의 일) Ⅰ 가령, 내가 지금 죽으면 어떻게 될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요즘 그가 보이지 않네?' 할 사람이 두엇 있다가 말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았던 사실이 흐지부지하게 처리된 일처럼 되고 말 것이다.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몇몇 사람들은 더러 그럴 것이다. "그 사람 죽었다던데?" "언제?" "지난달이지 아마?" "그래?" "퇴임할 즈음에 심장병이 드러나서 술담배도 못하고 별로 활달하지 못했지." "…………" 그러면 끝일 것이다. 함께 근무했는데도 이미 함께 근무하지 않았던 사이만큼, 혹은 그보다 훨씬 더 멀어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오죽하겠는가. Ⅱ '큰일이다!' 싶은 일? 그런 일은 없다. 내가 없어서 '큰일'인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심지어 '작은일'도 없다. 우선 내가 지금 특별.. 2014. 1. 5.
토마스 만 『마의 산』 서글픔을 느끼게 한 책입니다. 939쪽이나 되었습니다. 저 책을 만만하게 펼치고 앉아 있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이 유명한 책을 찾게 된 것은 『카뮈를 추억하며』 때문이었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디노 부자티의 희곡 「흥미로운 증례」**를 번역해서 연출했다. 그는 더 강한 활력을 주기 위해 작품의 길이를 줄였다. 이 희곡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러한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 보여준다. 환자들이 병원 창문을 통해 건강한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환자들에게는 이들이 낯설게 보인다. 두 진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각 진영에는 다른 진영에 대한 완전한 이해 불가능성이 지배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는 『마의 산』의 요양소 거주자들이 경험하는 그 .. 2013. 8. 22.
토드 메이 『죽음이란 무엇인가』 토드 메이 『죽음이란 무엇인가』 서동춘 옮김, 파이카, 2013 Ⅰ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죽음들을 슬퍼하는 사람을 찾기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죽어도 괜찮은 사람'이 죽었다는 인식 때문인지, 유족들도 '우리는 할 일을 다했다'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생활수준도 좋고 의술도 좋아서 웬만하면 오래 사는 건 좋은 일이지만, 죽음의 의미가 그렇게 변한다면, "늙으면 순순히 가야 한다"는 의미 같아서 착잡해집니다. 그렇게 가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독하겠습니까? 어느 죽음인들 고독하지 않은 경우가 있겠습니까만,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하나도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슬퍼하기보다는 애써서 숙연하다는 걸 보여주거나 너나없이 좀 들뜬 분위기에서 그 사고 혹은 죽음의 경위를 .. 2013. 7. 22.
박형준「홍시」,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고상한 척해 봐도 별 수가 없는 게 인간입니다. 돈이 많아 봐야 별 수 없고, 친구가 많아 봐야 별 수 없고, 자녀가 많고 다 잘 되었다 해도 별 수 없는 게 인간, 죽음입니다. 그것이 생각나게 하는 시 한 편을 봤습니다. ♣ 아내는, 내가 병원에 드나들게 됐는데도 별 기색이 없었습니다. 저러다가 말겠지, 그렇게 생각했거나 뭐 별 일이야 있을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며칠간 병실에 들어앉아서 별별 검사를 다 하고 있는 걸 좀 못마땅해하기도 했는데, 큰 병원으로 옮겨 가슴을 열고 중환자실에 들어가자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일반병실에 있다가 수술을 하거나 하여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되면 당연히 그 일반병실은 비워야 합니다. 아내는 그걸 모르고 '이제 드디어 죽는구나!' 했답니다. 그러니 그 병실을 .. 2012. 7. 11.
영혼의 여정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그다음 날 아침부터 40일에 이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 여정이 시작되기 전날 밤, 영혼은 땀내가 밴 베게에 가만히 누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눈을 감겨주는 모습을 지켜본다. 또한 문과 창문과 바닥의 틈새로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람들이 방 안을 연기와 침묵으로 가득 채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혼이 강물처럼 집 밖으로 흘러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사람들은 동이 틀 무렵 영혼이 자기들을 떠나 과거에 머물렀던 곳, 즉 젊었을 때의 학교와 기숙사, 군대 막사와 주택, 허물어졌다가 다시 지어진 집들, 그리고 사랑과 회한, 힘들었던 일들과 행복했던 일들, 희망과 희열로 가득했던 일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2012. 6. 25.
누가 먼저 죽어야 하나 누가 먼저 죽어야 하나 -걸으며 생각하며 Ⅳ- Ⅰ 아내와 말다툼을 하면 속전속결(速戰速決), 그 상황을 얼른 끝내고 만다. '속전(速戰)'보다는 '속결(速決)'에 더 힘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전에도 걸핏하면 말다툼을 하긴 했지만 그때는 으레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저 생각이 .. 2012. 3. 12.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Ⅲ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Ⅲ 정영란 옮김, 민음사 2011 신부님에 대해 세 번째 얘기를 씁니다. 자꾸 쓸 수도 없고, 그래서 이 얘기를 쓰고 그만 쓴다고 생각하니까 섭섭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신부님께서 너무나 멋진 분이기 때문이며, 돌아가셨다는데도 현존하는 인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아무렇게나' 살아왔기 때문일까요? 사실은 그만큼 하고 싶은 일은 많았습니다. 우리의 국방이 어려울 때는 '내가 만약 군인이 되었다면 같은 대안(代案)을 내었을 텐데……' 싶었고, 정치가 엉망인 걸 보면 '아, 정말 치사하게…… 그래, 바로 정치가가 되어야 했어.' 싶었고, 사회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 걸 보면 판검사가 되지 못한 게 한스러웠고, 돈이 최고인 걸 실감하는 날.. 2012. 2. 22.
오츠 슈이치 『삶의 마지막에 마주치는 10가지 질문』 C일보(2011.11.5)의 책 소개에서 「마지막 길 가려는 이에게 "가지 말라"고 할까, "편히 가라"고 할까」라는 제목을 봤습니다. 책 내용에서 특히 눈길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은 것인 줄은 당장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목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사회의 변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죽음의 초보자로 만들었다.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죽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착각한다."(108)는 내용을 딴 「당신은 TV에서 본 것처럼 죽지 않는다」는 소제목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가족도 피가 마른다」 「고독사는 나쁘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같은 소제목도 그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그 신문은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확실하게 하겠다는 듯, 웬만큼은 궁금증을 풀 수 있도록 책의 .. 2011. 12. 5.
사람은 어떻게 죽어 가는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워싱턴 고통완화의료연구센터의 조앤 린 박사는 그 과정을 3가지로 분류했다.① 비교적 장시간 신체 기능을 유지하고 마지막 2개월 정도에 급격히 기능이 떨어진다. 대표적 질변은 암② 급격히 증세가 악화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기능이 떨어지고 마지막에는 비교적 급격한 경과를 보인다. 대표적 질병은 심장질환이나 폐질환의 말기③ 기능이 저하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된다. 대표적 질병은 치매나 노쇠  여명이 2주일 미만이 되면 갑자기 일상적인 행위가 불가능해지고 마지막에는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죽음을 맞이한다.②의 심·폐질환이나 ③의 치매의 경우도 행동에 장애가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심·폐질환의 경우 비교적 급속도로 최후를 맞이할 확률이 높고 치매는 .. 2011.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