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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죽음56

찰스 부코스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찰스 부코스키의 말년 일기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Henry Charles Bukowski The Captain is Out to Lunch and Sailors Have Taken Over the Ship(1998) 찰스 부코스키, 로버트 크럼 그림, 설준규 옮김 모멘토 2015 1 경마가 없는 날, 정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게 묘하다. 헤밍웨이1에게 투우가 필요했던 까닭을 난 안다. 그에게 투우는 삶이라는 그림을 끼울 액자 같은 것으로, 자기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일깨워주었으리라. 때때로 그걸 우린 잊어버린다. 기름 값을 지불하고 엔진오일을 교환하는 등등에 정신이 팔려서,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다. 제 자신의 죽음이건 남의 죽음이건. 사람들에게 죽음은 충격이.. 2017. 2. 14.
'그래, 알았어. 고마워!' 1 루소는 사실상 이렇게 선언했다. "사랑이라는 강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열정 같은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의 격렬함을 보고 사랑이 오래 지속될 징후로 간주하고 너무 달콤한 느낌에 짓눌린 마음 덕분에 사랑이, 굳이 말하자면, 미래까지 넘치고 사랑이 지속되는 한 그런 마음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오히려 감정을 소진시키는 것은 바로 그 열렬함이다. 그것은 젊음과 더불어 마모되고 아름다움과 더불어 지워지며 빙하기에 들면 그 불꽃은 꺼져버린다. 이 세상이 존재한 이래로 백발이 성성한 두 연인이 서로를 바라보며 속삭이는 일은 결코 본 적이 없다."1 미즈바야시 아키라의 '사랑의 연대기' 《멜로디》에서 이 글을 보며 언짢고 안타까웠습니다. 언짢았던 것은 사랑의 열정에 대한 루소의.. 2017. 1. 23.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지현 옮김, 민음사 2015 장 그르니에는 알베르 카뮈에게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내가 맡은 젊은이들에게 가르칠 책임이 있다는 점보다는 오히려 그들 자신에 대해 가르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에게 애착을 갖게 되었다. 나의 책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믿었다."1 단순하게(혹은 오만하게) "젊은이들을 가르친다"고 하지 않고 "그들 자신에 대해 가르친다"고 한 그르니에, "나의 책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믿었다"고 한 그르니에가 존경스러웠습니다.2 일찍 그를 알았더라면, 나도 조금은 더 나은 교사였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가르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우리 교육을 좀 더 깊이 있게 반성하는 교사였을 것입니다.. 2017. 1. 17.
줄리안 반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안 반스 Julian Barnes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NOTHING TO BE FRIGHTENED OF》 최세희 옮김, 다산책방 2016 줄리언 반스의 에세이입니다. 그는 노년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1, 자살과 기억을 소재로 한 소설2, 아내와의 사별과 그 슬픔을 이야기한 에세이3 등을 썼답니다. 가족과 친구, 지인들, 작가나 음악가 등 유명인사들의 죽음에 관한 일화를 자유롭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끝없이 늘어놓았습니다. 죽음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이야기했습니다. 신에 대한 비아냥, 두려움과 공포, 노년과 죽음의 의미, 내려놓기, 죽음의 순간, 죽음 직전의 모습과 주검의 모습, 불행한 죽음, 죽음의 인식, 태도, 묘지, 옛날과 오늘날의 죽음, 회한, 마지막에 대한 계획, 죽어가며 들을 음.. 2017. 1. 8.
조언과 동정 조언과 동정 1 <데저트 아일랜드 디스크>에서 죽음에 관해 얘기한 후, 내 친구 R은 경찰에게 산탄총을 압수당했고 나는 여러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 편지들에는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믿음에 나 자신을 열어 보이고 교회에 가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등등을 통해 두려움.. 2016. 11. 17.
로맹 가리! 그의 죽음 Ⅰ 1914년 모스크바에서 유태계로 태어나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법학을 공부했고, 2차 대전 때 로렌 비행중대 대위로 참전해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참전 중에 쓴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1945년 비평가상을 받으며 당장 명성을 떨쳤다. 1956년 『하늘의 뿌리』로 콩쿠르 상을 받았고,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여 다시 한 번 콩쿠르 상을 수상, '문학적 천재'라는 이름을 얻었다. 1980년 12월 2일 파리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1 권총 자살? Ⅱ 로맹 가리……! 얼른 『내가 사랑했던 개, 유리시즈(원제 : 유리시즈의 눈물)』(로제 그르니에)에서 찾아보았다.2 1980년 9월 어느 날, 우리는 가리를 바로 그가 사는 집 건물 앞에서 만났다. 그.. 2016. 7. 5.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데이비드 케슬러 『상실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데이비드 케슬러 『상실 수업』 김소향 옮김, 인빅투스, 2014 Ⅰ 신의 부름이 어떤 이에게는 한가로운 목요일마냥 예견되었다는 듯 다가온다. 누군가에게는 예기치 않은 노크 소리를 내며 주말 프로젝트마냥 다가와 정신없게 만들기도 한다. 별안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랑한 이가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 당신의 세상은 돌연 바뀐다.(275~276) 죽음이 더 갑작스러울수록 상실을 애도하기까지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작별인사 할 틈과 가장 친하고 소중했던 사람이 사라지고 없는 삶을 적응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부정1의 기간은 상당히 길어진다. (277) 내가 사랑한 사람은 왜 죽었는가? 그 슬픔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내가 살아 남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6. 4. 17.
'이러다가 가겠지?' 1 묵현리 산다는 아주머니의 자동차가 신호에 걸려 서 있는 내 자동차 뒷부분을 들이박았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쓰리고, 병원에 드나들던 그때 같아서 종일 죽을 맛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차야 중고니까 굴러가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막혀버린 통로를 철망으로 뚫어준 내 심장이 충격을 받았구나.' 그러다가 다시 생각했습니다. '차는 중고라도 아직 잘 굴러가는데…… 나는 이제 잘 굴러가지 못하는구나.' 묵현리 그 아주머니는 걱정이 되어 문자도 한 번 보내고, 전화도 두 번을 했습니다. 사고를 냈을 때 쳐다보니까 못된 아주머니 같았는데 이러는 걸 보니까 내가 잘못 본 것 같았고, 괜히 오해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연락을 해서 차를 들이받아 괴롭히고 이제 전화로 추가하는구나 싶기도 했습.. 2015. 4. 18.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Known』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Known』 정현종 옮김, 물병자리 2002 당신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할 수 없는 까닭은 당신이 그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며, 따라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다. 죽음은 말이며, 공포를 낳은 것은 이 말이요, 이미지이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의 이미지 없이 죽음을 볼 수 있는가? 생각이 솟아나는 원천인 이미지가 존재하는 한, 생각은 언제나 공포를 낳는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의 공포를 합리화하고 그 불가피한 것에 대항하든가 아니면 당신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믿음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당신과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 사이에는 틈이 있다. 이 시공(時空)의 틈 속에 공포, 불안, 자기 연민인 갈등이 분명히.. 2015. 1. 27.
모두 떠났다 Ⅰ 그 식당은 저 산 오른쪽 기슭에 있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춘천이나 양평 쪽으로 가면서 먼빛으로 한적한 산비탈의 그 식당 건물을 바라본 사람들은 누가 찾아갈까 싶었겠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점심, 저녁 시간에 걸쳐 종일 사람들이 몰려들어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계산대 옆에 커피 자판기, 원두커피 포트가 준비되어 있고, 맞은편 주방 앞에서는 분명히 안주인의 친정어머니일 듯한 할머니가 단정한 모습으로 마늘을 장만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안주인의 다소곳한 품위를 그대로 물려준 어머니답게 더러 화장실을 갈 때가 아니면 여름에나 겨울에나 늘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할머니의 성품은 마늘조각에 그대로 나타나서 어느 조각이나 '무조건' 같은 크기였고 자른 모양도 한.. 2015. 1. 4.
권태문 김만곤 『효행소년 정재수』 '효행' 같은 건 얘기하는 사람을 만나기조차 어렵게 되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건 좋든 싫든, 옳든 그르든 그땐 그랬다는 얘기니까 오해 없기 바랍니다. 그때 우리는 전국적인 선풍을 일으킨 '효행소년'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이 책을 지어낸 것입니다. 경상북도 상주군교육청에서 낸 장학자료였는데, 정재수라는 아이의 전기문이었습니다. 그 왜 설에 큰집에 차례 지내러 가다가 아버지가 술에 취해 눈밭에서 얼어죽을 때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주고 함께 죽었다는 그 아이 생각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육부에서는 당장 자료를 보내라고 했고, 『효행소년 정재수』 축약판으로 보낸 자료가 반공소년 이승복 이야기와 함께 도덕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교과서를 한 .. 2014. 7. 29.
귀신은 아무래도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귀신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그런 말을 들을거라면 뜸을 들이는 것보다는 내친김에 이야기하고 말겠습니다. 귀신조차 없다면 영 재미가 없을 것 같고, '귀신제도(鬼神制度)'가 있어야 잘하면 귀신 중에 격이 제일 낮다는 저승사자 정도는 한번 해볼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싶어진 것입니다. 저승사자는 초짜 귀신이 한다는 게 정설(定說)입니다. 게다가 저승사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입장에서 보면 다 면식범(面識犯)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어디에 사는 아무개를 데려오라!" 하면 얼른 "그 사람이라면 제가 잘 압니다. 제가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하면 될 것입니다. '귀신은 없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은, 그동안 막.. 2014.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