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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죽음56

월명 「제망매가」 「제망매가」는 어느 한 부분이라도 잘못 이야기하면 혹 누이동생들에게 재수 없는 일이나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생사의 길'이 재수에 달린 것일까. 내 마음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마지막 고개를 넘은 느낌이었다. 얽히고설키어 살던 사람이 유명을 달리하니까 당장 하얗게 잊혔고 함께하던 시간들 중 몇 가지가 쓸쓸한 날에만 두어 장 사진처럼 떠오를 뿐이었다. H 씨는 가난한 초등교사였다가 공부를 더 하고 노력해서 저명한 교수가 되었고 매우 넓은 토지도 소유했으나 그만 암에 걸리고 말았다. 죽기 직전 몇 번이나 찾아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때마다 괜히 애를 썼다고 후회했다. 그러면서도 약값이 많이 든다고 가슴 아파했고, 돌아갈 때 작은 물건이라도 손에 쥐어주면 그걸 그렇게 고마워했.. 2020. 6. 5.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2》 Depuis l'au-delà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19 1 가브리엘(영혼)은 자신을 살해한 범인을 찾으려고 할아버지 영혼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뿔싸! 할머니 영혼을 만납니다. 「미안하지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나는 네 할미가 환생했을 줄 알았지 아직까지 구천에 있는 줄은 몰랐어. 날 찾아냈으니 또 얼마나 괴롭히겠니.」 그들은 높이 날아올라 그녀와의 거리를 넓힌다. 하지만 뜻밖의 재회에 감격한 그녀는 빠른 속도로 그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임자! 임자!__」 _ 「날 저렇게 부를 때마다 소름이 쫙 끼쳐!」_ _ 「거의 따라잡혔어요!」_ _ 「좋은 생각이 났어! 저 거머리를 따돌릴 방법이 떠올랐으니 날 따라오렴!_」(26) 할아버지 영혼은 (할머니의 .. 2019. 12. 29.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1》 Depuis l'au-delà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19 1 〈누가 날 죽였지?'〉(15) 암살당한 가브리엘 웰즈의 영혼이 의문을 제기하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후 세계가 이 소설 같다면, 이와 같은 일상(?)이 계속된다면 죽는 것도 괜찮겠다, 재미도 좀 있겠다 싶었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의하면 이승과는 '좀' 다른 성격의 일상이 이어집니다. 이승과 다른 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같은 점, 다른 점보다는 좋은 점, 나쁜 점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1. 더 이상 육제적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2. 더 이상 병에 걸리지 않는다. 3. 더 이상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4.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 5. 더 이상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 2019. 12. 20.
테이아 오브레트 《호랑이의 아내 The Tiger's Wife》 테이아 오브레트 《호랑이의 아내 The Tiger's Wife》 왕은철 옮김, 현대문학, 2011 1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그다음 날 아침부터 40일에 이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 여정이 시작되기 전날 밤, 영혼은 땀내가 밴 베개에 가만히 누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눈을 감겨주는 모습을 지켜본다. 또한 문과 창문과 바닥의 틈새로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람들이 방 안을 연기와 침묵으로 가득 채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혼이 강물처럼 집 밖으로 흘러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사람들은 동이 틀 무렵 영혼이 자기들을 떠나 과거에 머물렀던 곳, 즉 젊었을 때의 학교와 기숙사, 근대 막사와 주택, 허물어졌다가 다시 지어진 집들, 그리고 사랑과 회한, 힘들었던 일들과 행복.. 2019. 10. 21.
엄연한 '노후' 1 날씨가 좀 풀렸다고 말합니다. 하나마나입니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고, 이제 집에 들어가도 좋은 시간인지 모르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걸 감추고 있다는 걸 잘 압니다. 그렇긴 하지만 할아버지도 굳이 그걸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마나일 것입니다. 2 몰라서 그렇지 세상은 무저갱입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해도 금방금방 까무루해집니다. 그렇게 까무룩해져서 아래로, 그 아래로, 어디가 바닥인지도 모를 구렁텅이로 자꾸자꾸 내려갑니다. 많이 내려가면 정신을 차려봤자 다 올라오지도 못한 채 또 까무룩해집니다. 누가 먼저 떠나면 어떻게 하나, 그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남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는 그 문제는, 생각은 자주 하지만 결론이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얘.. 2018. 12. 23.
조원희 글·그림 《혼자 가야 해》 조원희 글·그림 《혼자 가야 해》 느림보 2011 동네 도서관(유아실)에서 빌렸습니다. 2006년쯤에 놀라운 시 「너 혼자」(박상순)를 봤고, 이 책이 나와서 신문에 소개되었을 때 그 시가 생각났습니다. 시 「너 혼자」 때문에 몇 년 간 기억하고 있었던 책을 빌리면서 비로소 유아용인 걸 알았습니다. 앉은자리에서 세 번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가 눈을 감습니다. 그럼 길을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아지의 영혼을 맞이하려고 깊은 숲 속 검은 개가 꽃을 가꿉니다. 작은 배도 만들고 피리를 손질하고 등불을 밝힙니다. 강아지는, 그러니까 강아지의 영혼은 친구와 놀던 공원을 이제 혼자 걸어갑니다. 기차도 혼자 탑니다. 검은 개가 손님을 맞이할 숲 속으로 어린 강아지, 떠돌이 강아지, 아픈 강아지, .. 2018. 7. 3.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김승욱 옮김, 알마, 2014 1 2010년, 4기 식도암이 림프샘, 허파까지 전이된 상태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입니다. 2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악명 높은 단계 이론, 즉 부정, 분노, 타협, 우울 단계를 거쳐 결국은 '수용' 단계에 이르러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이론"에서 '부정'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된 이 기록의 대부분은 고통에 관한 것이었지만 몸이 아프다는 것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좌절' 혹은 '아픔'의 비중이 더 컸습니다.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부터 놀라워서 이 인물은 평범하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멍청한 질문에 우주는 아주 귀찮다는 듯 간신히 대답해준다. "안 될 것도 없잖아.. 2018. 6. 23.
오츠 슈이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오츠 슈이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황소연 옮김, 21세기 북스, 2010(1판64쇄) "매사에 너무 많이 걱정하고 늘 마음을 졸였던 것 같아요. 지금 같아서는 세상사를 좀 더 여유 있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젠 늦었지요."(92) 어떤 상대를 만나도 이 만남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101) "걸어보니 신기하게도 참 재밌네요."(110) 시간이 몇 주밖에 남지 않았을 때는 음식이나 주사액이 수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식욕이 없는 환자에게 억지로 음식을 떠 넣는다고 해서 그 음식이 체력을 보강해 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146) 눈을 감는 순간, 내가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 내 곁을 지킨다면 그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이 어디 있겠는가.(.. 2018. 4. 15.
오츠 슈이치 《행복한 인생의 세 가지 조건》 오츠 슈이치 《행복한 인생의 세 가지 조건》 박선영 옮김, 21세기북스, 2011 '1000가지 죽음이 가르쳐준 행복한 인생의 세 가지 조건? 그 '조건'을 암기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건 그 세 가지 중 한 가지일까? 아니 이건가? 그렇게 하여 메모한 문장들입니다. 당신은 혹시 말기환자나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이 건강한 사람보다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26) 분수를 알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힘, 특히 바깥세상을 향해 지나치게 바라고 구하려들지 않는 힘이 필요하다.(41) 당신 곁에서 당신과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TV를 보며 때론 웃고 때론 울면서 서로 닮아가는 사람들 (…) 그들이 언제까지나 당신과 함께일 거라고 생각하는가.(62) 무리 속에 어울리지 않으.. 2018. 3. 29.
오츠 슈이치 《감동을 남기고 떠난 열두 사람》 오츠 슈이치 《감동을 남기고 떠난 열두 사람》 황소연 옮김, 21세기북스, 2010 호스피스 전문의가 쓴 책입니다. 이 의사의 다른 책 "삶의 마지막에 마주치는 10가지 질문"이 생각나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때론 고고하게, 때론 고결하게(40) "괜찮아요. 괜찮아요." "저는 행복해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48) 책을 읽거나 병동을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짙어지는 병세와 달리 평온한 일상이었다.(86) 매일같이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그의 상태를 보고 확언하건대 결코 괜찮을 수가 없었다.(88) "선생님, 이렇게 조금씩 약해지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나요?"(104) "이젠 걸어서 화장실에 갈 수도 없어요. 마지막에는 제 두 다리로 서지도 못하나요?"(104) "이렇게 자는 시.. 2018. 3. 15.
"죽음은 져야 할 짐이고…" 찰스 부카우스키(Charles Bukowski)에 관한 기사를 봤습니다.1 거친 삶과 가식 없는 문체로 유명한 그는 묘비에 '애쓰지 마라(Don't Try)'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나 참, 이런 엉터리가 있나 싶지만 때론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노동자 아버지가 "불 꺼!" 하고 소리를 질러서 침대 시트 속에 전등을 넣고 책을 읽다가 시트에 불이 붙은 적도 있을 정도였는데 대학을 중퇴하고 첫 단편을 발표했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아서 날품팔이 잡역부, 철도 노동자, 트럭 운전사, 경마꾼, 주유소 직원, 우편집배원 같은 일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얼마나 술을 마셔댔던지 어느 날 입과 항문으로 피를 분수처럼 쏟아냈답니다. 쉰 살 때 돌연 "우체국 의자에 앉아 죽고 싶지 않아!"라며 사표를 내고 타자기를 구해서 .. 2018. 1. 7.
"귀가 가장 늦게 닫혀요" 1 주말 신문에서 "대통령 3명 염한 '무념무상'의 손"이라는 대담 기사를 봤습니다.1두 면에 걸친 기사를 부담스러워하다가 "귀가 가장 늦게 닫혀요"라는 소제목을 발견했습니다. ―마지막 인사할 때 유족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염할 때 참여하시라고 권합니다. 마지막엔 얼굴 보고 만져 드리고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나아요. 울음은 전염됩니다. 고인 수의에 눈물 떨구는 거 아녜요. 그럼 무거워서 못 떠납니다. 귀가 제일 나중에 닫히니까." ―무슨 뜻인가요? "1996년에 말기 암 환자 두 분을 염한 적이 있습니다. 한 분은 부자였고 한 분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런데 부자는 인상을 쓰고 돌아가셨습니다. 다른 한 분은 표정이 맑았습니다. 알고 보니 돌아가신 뒤에 유족이 좋은 말만 하고 염불도 들려 드렸대요... 2017.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