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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죽음62

혼자 가는 길 여기는 산으로 둘러싸인 곳입니다. 동쪽으로는 마당 건너편 계곡이 숲으로 이어집니다. 새들의 희한한 대화를 들을 수 있고 모기 같은 벌레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저녁을 먹고 현관을 나서는데 때아닌 매미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둠이 짙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워낙 조용하니까 내 이명(耳鳴)이 또 장난을 하나?' 멈춰 서서 작정하고 들어 보았습니다. 날개로 땅을 쓰는 소리도 함께 들립니다. 아! 소리는 바로 발밑에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얼른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켰습니다. 이런! 날개를 퍼덕이며 매미가 울고 있습니다. 구월 초사흘, 한로(寒露)에 매미라니! 하루하루 기온이 떨어져 그에게는 치명적일 것입니다. '저 숲으로부터 매미소리가 들려온 것이 칠월이라면 팔월 한 달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다가 여기를 찾.. 2021. 10. 13.
나이드는 것 병드는 것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늙고 병드는 것에 대한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 저도 나이가 많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더' 혹은 가능만 하다면 오래오래, 그러다가 이 세상이 생긴 이래 유일한 사례로 영영 죽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본능일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한때의 저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젊은이가 이 세상에는 한두 명? 글쎄요., 몇 명일지는 모르지만 전혀 없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오만방자한 생각을 할 때는 죽음이란 주변의 문제이지 결코 저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성적으로는 요양원까지는 가지 않고 조용히, 가족들이 아직은 아니라고 할 때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확실히 노쇠와 사망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어서 남의 일로만 .. 2021. 7. 15.
바다에서의 죽음 그는 거의 새벽 2시까지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자동차의 문을 잠그고, 창문은 올려놓고, 불빛을 끄고, 라디에이터의 격자무늬가 절벽의 모서리 너머 텅 빈 공간으로 투사되게 해놓고서. 어둠에 익숙해져 있는 그의 눈은 바다 표면이 호흡하는 것에, 즉 광대하지만 들떠 있는 거인이 잠을 자면서 악몽 때문에 주기적으로 깨어나는 것처럼, 계속해서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 호흡에 매료되었다. 가끔 화가 난 광풍처럼 소리가 달아나 버렸다. 가끔 그것은 열에 들떠 헐떡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해안선을 갉아먹고는 그들의 전리품을 가지고 멀리 후퇴하는, 밤 파도 소리가 다시 들렸다. 여기저기 거품이 이는 잔 물결은 어두운 표면 위에서 반짝거렸다. 어떤 때에는 푸르스름한 우윳빛의 광선이 하늘 높이 별들 사이로,.. 2021. 2. 28.
"귀가 가장 늦게 닫혀요" (2) 1분이 지났을까, 웅이에게 간 원장님이 "웅이 죽었나봐요!" 외쳐서 쫓아가 보니 웅이 입이 떡 벌어져있고 혀가 쑥 나와 있었다. 입 안에서 빠져나오는 독한 냄새가 훅 끼쳤다. "죽은 거죠? 그런 거지요?" "아, 예, 그런 것 같아요." 원장님은 바닥에 털썩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웅이를 끌어안았다. "웅아! 웅아!" 부르짖으면서 웅이를 흔들기에 그러지 마시라고, 그러면 웅이가 힘들다고 말렸다. 원장님은 웅이 얼굴에 얼굴을 부비며 "사랑해! 웅아, 사랑해!"라고 부르짖으며 막 울었다. "미안해, 웅아. 나를 불렀는데, 그때 얼른 달려왔어야 했는데, 혼자 가게 했네!" "아니에요. 여기 가까이에서 엄마 소리 엄마 냄새 다 맡으면서 자기가 살던 데서 간 거잖아요. 고통 없이 편하게 간 거예요. 지금 원장님 .. 2021. 1. 26.
버나드 오티스 《품위 있게 나이 드는 법》 버나드 오티스 《품위 있게 나이 드는 법》 박선령 옮김, 검둥소 2020 품위 있게 나이 들기. 누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까. 다 운명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한 대로 하면 품위 있어질 것 같기는 하다. 우리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죽음과 그것이 우리 삶에서 하는 중요한 역할에 대해 알려줄 필요가 있다. 죽음은 실재하는 것이므로 얼마든지 말해도 괜찮은 단어이고, 죽음이 우리 삶의 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면 그 여정이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삶을 여행하는 동안 매일같이 행복한 경험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36)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이 자신이나 가족의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슬픈 일이다. 그리고 자기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 2021. 1. 9.
결별(訣別) 2009년 11월 2일, 나는 한 아이와 작별했습니다. 그 아이의 영혼을 저 산비탈에 두었고, 내 상처 난 영혼을 갈라 함께 두었습니다. 이 포스팅을 새로 탑재하면서 댓글 두 편도 함께 실었습니다. .............................................................................................. …(전략)… 우리는 흔히 학생들에게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애에게 교육은 무엇이고 장래는 다 무엇이었을까. 장래는 고사하고 하루하루 얼마나 고달픈 삶으로써 고사리 같은 짧은 인생을 채우고 마감하게 되었는가. 그걸 살아간다고, 어린 나이에 뿌린 눈물은 얼마였을까. 그러므로 교육의 구실은 우선 그날그날.. 2020. 9. 26.
월명 「제망매가」 「제망매가」는 어느 한 부분이라도 잘못 이야기하면 혹 누이동생들에게 재수 없는 일이나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생사의 길'이 재수에 달린 것일까. 내 마음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마지막 고개를 넘은 느낌이었다. 얽히고설키어 살던 사람이 유명을 달리하니까 당장 하얗게 잊혔고 함께하던 시간들 중 몇 가지가 쓸쓸한 날에만 두어 장 사진처럼 떠오를 뿐이었다. H 씨는 가난한 초등교사였다가 공부를 더 하고 노력해서 저명한 교수가 되었고 매우 넓은 토지도 소유했으나 그만 암에 걸리고 말았다. 죽기 직전 몇 번이나 찾아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때마다 괜히 애를 썼다고 후회했다. 그러면서도 약값이 많이 든다고 가슴 아파했고, 돌아갈 때 작은 물건이라도 손에 쥐어주면 그걸 그렇게 고마워했.. 2020. 6. 5.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2》 Depuis l'au-delà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19 1 가브리엘(영혼)은 자신을 살해한 범인을 찾으려고 할아버지 영혼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뿔싸! 할머니 영혼을 만납니다. 「미안하지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나는 네 할미가 환생했을 줄 알았지 아직까지 구천에 있는 줄은 몰랐어. 날 찾아냈으니 또 얼마나 괴롭히겠니.」 그들은 높이 날아올라 그녀와의 거리를 넓힌다. 하지만 뜻밖의 재회에 감격한 그녀는 빠른 속도로 그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임자! 임자!__」 _ 「날 저렇게 부를 때마다 소름이 쫙 끼쳐!」_ _ 「거의 따라잡혔어요!」_ _ 「좋은 생각이 났어! 저 거머리를 따돌릴 방법이 떠올랐으니 날 따라오렴!_」(26) 할아버지 영혼은 (할머니의 .. 2019. 12. 29.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1》 Depuis l'au-delà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19 1 〈누가 날 죽였지?'〉(15) 암살당한 가브리엘 웰즈의 영혼이 의문을 제기하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후 세계가 이 소설 같다면, 이와 같은 일상(?)이 계속된다면 죽는 것도 괜찮겠다, 재미도 좀 있겠다 싶었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의하면 이승과는 '좀' 다른 성격의 일상이 이어집니다. 이승과 다른 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같은 점, 다른 점보다는 좋은 점, 나쁜 점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1. 더 이상 육제적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2. 더 이상 병에 걸리지 않는다. 3. 더 이상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4.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 5. 더 이상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 2019. 12. 20.
테이아 오브레트 《호랑이의 아내 The Tiger's Wife》 테이아 오브레트 《호랑이의 아내 The Tiger's Wife》 왕은철 옮김, 현대문학, 2011 1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그다음 날 아침부터 40일에 이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 여정이 시작되기 전날 밤, 영혼은 땀내가 밴 베개에 가만히 누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눈을 감겨주는 모습을 지켜본다. 또한 문과 창문과 바닥의 틈새로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람들이 방 안을 연기와 침묵으로 가득 채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혼이 강물처럼 집 밖으로 흘러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사람들은 동이 틀 무렵 영혼이 자기들을 떠나 과거에 머물렀던 곳, 즉 젊었을 때의 학교와 기숙사, 근대 막사와 주택, 허물어졌다가 다시 지어진 집들, 그리고 사랑과 회한, 힘들었던 일들과 행복.. 2019. 10. 21.
엄연한 '노후' 1 날씨가 좀 풀렸다고 말합니다. 하나마나입니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고, 이제 집에 들어가도 좋은 시간인지 모르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걸 감추고 있다는 걸 잘 압니다. 그렇긴 하지만 할아버지도 굳이 그걸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마나일 것입니다. 2 몰라서 그렇지 세상은 무저갱입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해도 금방금방 까무루해집니다. 그렇게 까무룩해져서 아래로, 그 아래로, 어디가 바닥인지도 모를 구렁텅이로 자꾸자꾸 내려갑니다. 많이 내려가면 정신을 차려봤자 다 올라오지도 못한 채 또 까무룩해집니다. 누가 먼저 떠나면 어떻게 하나, 그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남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는 그 문제는, 생각은 자주 하지만 결론이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얘.. 2018. 12. 23.
조원희 글·그림 《혼자 가야 해》 조원희 글·그림 《혼자 가야 해》 느림보 2011 동네 도서관(유아실)에서 빌렸습니다. 2006년쯤에 놀라운 시 「너 혼자」(박상순)를 봤고, 이 책이 나와서 신문에 소개되었을 때 그 시가 생각났습니다. 시 「너 혼자」 때문에 몇 년 간 기억하고 있었던 책을 빌리면서 비로소 유아용인 걸 알았습니다. 앉은자리에서 세 번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가 눈을 감습니다. 그럼 길을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아지의 영혼을 맞이하려고 깊은 숲 속 검은 개가 꽃을 가꿉니다. 작은 배도 만들고 피리를 손질하고 등불을 밝힙니다. 강아지는, 그러니까 강아지의 영혼은 친구와 놀던 공원을 이제 혼자 걸어갑니다. 기차도 혼자 탑니다. 검은 개가 손님을 맞이할 숲 속으로 어린 강아지, 떠돌이 강아지, 아픈 강아지, .. 2018.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