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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2》

by 답설재 2019. 12. 29.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2》 Depuis l'au-delà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19

 

 

 

 

 

 

 

  1

 

가브리엘(영혼)은 자신을 살해한 범인을 찾으려고 할아버지 영혼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뿔싸! 할머니 영혼을 만납니다.

 

「미안하지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나는 네 할미가 환생했을 줄 알았지 아직까지 구천에 있는 줄은 몰랐어. 날 찾아냈으니 또 얼마나 괴롭히겠니.」

그들은 높이 날아올라 그녀와의 거리를 넓힌다. 하지만 뜻밖의 재회에 감격한 그녀는 빠른 속도로 그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임자! 임자!__」

_ 「날 저렇게 부를 때마다 소름이 쫙 끼쳐!」_

_ 「거의 따라잡혔어요!」_

_ 「좋은 생각이 났어! 저 거머리를 따돌릴 방법이 떠올랐으니 날 따라오렴!_」(26)

 

할아버지 영혼은 (할머니의 해코지로) 죽어서도 여자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포르노 여배우로 환생하고 싶어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녀(영매 뤼시)가 눈을 감은 상태에서 장난기 어린 어조로 묻는다.

「환생하고 싶으세요?」

「좋은 제안이 오면 떠돌이 영혼의 지위를 포기하겠소!__」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세요. 어떤 태아로 다시 태어나고 싶으시죠?」

「최근에 겪은 일도 있고 해서, 가브리엘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내 전생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내려 봤어요. 내가 여자들을 무서워한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생각해 보니 여자와 한 번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는 거야. 여자라는 존재에 대해 하나도 아는 게 없는 거야__……. 그걸 바로잡고 싶어요.」

(…)

「무슨 얘기를 하시려는 거예요?」 가브리엘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_ 「그 부분에서 진화하고 싶단다.」_

_ 「여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으시다는 뜻이에요?」_

_ 「나는 말이다……. 포르노 배우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_」(69)

 

좀 엉뚱한 얘기를 장황하게 옮겨놓은 것 같지만 죽어서 환생할 수 있다면 무슨 생각인들 못하겠는가 싶었습니다.

이 책에는 또 죽음에 대한 온갖 얘기가 다 나오지만 하필 배우자와의 일이 아니더라도 이승에서의 일들을 '정리'할 수도 있다는 이런 얘기가 솔깃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3

 

이 책의 독후감을 여기서 마무리할까 하다가 몇 가지만 덧붙입니다. 말하자면 인상 깊은 내용이라고나 할까요?

우선 송장 냄새가 그중 한 가지입니다.

 

냄새를 덮어야 하는 포르말린이 송장 냄새와 뒤섞여 만들어 내는 역겨운 냄새를 맡으며 그는 죽음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송장 냄새라고 생각했다.(150)

 

이 세상 온갖 곳에 떠돌이 영혼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나 영혼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다는 말도 이 책에 의하면 거짓이어서 가령 정의의 구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도 여기에 적어 놓아야 하겠고, 소설이 다음과 같이 끝나는 건 더욱 중요한 것이어서 꼭 기억해두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를 사로잡았던 생각과는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서 꿈틀거린다. 〈나는 왜 죽었지?〉가 아니라, 보다 근원적이고 신비로운 질문이 그에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왜 태어났지?〉(313)

 

나도 죽어서라도 할 일을 생각해둘 것입니다. 아니 이미 다 생각해놓았습니다.

 

 

  4

 

《죽음 1》에서처럼 가브리엘 웰즈의 조상 '에드몽 웰즈'라는 인물이 썼다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12권을 인용한 형식의 흥미로운 지식들을 이 책에서도 여럿 열거하고 있습니다.

 

* 조상들의 매장 풍속

* 마이크로 페니스의 법칙

* 알랑 카르데크

* 특이한 증후군들

* 죽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기계

* 아홀로틀(도롱뇽)

* 라스푸틴

* 어두운 영혼들

* 백 번째 원숭이 이론

* 긴쓰기

* 드루이드교

* 빅트로 위고와 심령술

* 밝은 영혼들

* 분별없는 인간

* 멜첼의 체스 기사

 

 

여담 : 비록 간접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작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