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미하엘 엔데 《마법 학교》

by 답설재 2020. 1. 16.

미하엘 엔데 《마법 학교》

카트린 트로이버 그림|유헤자 옮김 푸른숲 2004

 

 

 

 

 

 

1

 

연초(年初)라고 해봐야 1월 1일 하루만 휴일이니까 연초라는 말이 풍기는 것만큼은 조용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현직에서 물러난 나 같은 경우에는 연초라고 해서 특별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굳이 조용하기로 따진다면 일 년 내내 연초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또 웃으시겠지만 왠지 좀 조용한 연초에 동화를 읽었습니다. 소원(所願)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소원 나라는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나라입니다.

미하엘 엔데는 소원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직접 찾아가 깊이 연구할 기회가 있었답니다.

일단 그곳 소원 학교(말하자면 소원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수업을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소원이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짐작하셨겠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었습니다.

 

 

2

 

소원 나라가 우리가 사는 보통 세상과 다른 점에 관한 내용에서부터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그 학교 교사 질버 씨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17)

 

"물론 소원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비교적 잘 알고 있지만, 바깥의 보통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아.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드물지. 그 사람들은 그걸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그냥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것을 싫어하거나 하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여기지. (…)"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소원이 무엇인지 절대로 알아내지 못해.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지."

 

말리라는 아이가 묻습니다.(20)

 

"그렇다면 자신의 진정한 소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고, 지금이라도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말인가요?"

 

질버 씨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3

 

나쁜 마법사에 대해 설명한 부분도 눈여겨봤습니다. 절대적인 유의 사항이기 때문입니다.(25)

 

 

"(…) 그리고 나쁜 마법사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소원을 알지 못해 자신과 일체가 되지 못하는 사람에게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단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열심히 정성을 다해 배우는 게 중요해. 마법은 진지한 거란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 주기 위해 하는 짓이라도 말이야. 너희들 모두 내 말을 잘 이해했길 바란다."

 

마침내 다음이 그 수업의 핵심입니다.(26~27)

 

"자, 그럼 이제는 소원을 비는 힘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규칙 몇 가지를 가르쳐 주겠다."

 

질버 씨는 의자에서 일어나 칠판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1. 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소원만 진정으로 빌어라.

2. 네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만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라.

3. 진실로 원하는 것만이 네 자신의 마음이 될 수 있다.

 

질버 씨는 쉬운 마법부터 실습을 시킵니다. 질버 씨의 다음과 같은 설명도 암기해두고 싶었습니다.(35)

 

"모두 마음속으로 그 물건들이 너희들의 팔다리처럼 완전히 너희들의 것이라고 생각해 봐. 너희들은 팔과 다리가 어떻게 해서 움직이는지 모르고 있을 거야. 그냥 그것들 안에 너희들이 들어가 있으니까 그렇게 되는 거지. 마찬가지로 지금 너희들 앞에 놓여 있는 물건 속으로 너희들이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렴. 그래서 그것들이 손가락이나 코라도 되는 것처럼 그 물건들 안에서 느끼는 거야. 자, 어서 해 보렴. 아주 쉽단다!"

 

질버 씨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공책을 큰 나비처럼 허공에 돌아다니게 해서 보여주었습니다.

 

 

4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 한 점은 꺼내 온 물건을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 일이었습니다.

평소에 침착하고 온화한 질버 씨도 그 실험에서는 상당히 엄격했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이에게는 심한 야단을 쳤습니다.(45)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와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에게 정말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가져가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와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에게 정말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가져가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어."

…… 나는 이 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5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이 책에서 핵심 사항을 익히고 굳이 '마법'을 부리지는 않더라도 무슨 소원 같은 걸 좀 이루어볼까 했던 일이 무모하다는 걸 이 장면에서 깨달았습니다.

 

그 다음 얘기는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 읽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내 머리 속에는 다만 이 말 한 마디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와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에게 정말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가져가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