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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

by 답설재 2020. 2. 25.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

최창모 옮김, 민음사 1998

 

 

 

 

 

 

 

1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서른 살이고 결혼했다. 나의 남편은 미카엘 고넨 박사로 지질학자이며 성품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우리들은 십 년 전 테라 상타 대학에서 만났다. 나는 히브리 대학 1학년이었고 그 당시는 아직 히브리 대학의 강의를 테라 상타 대학에서 받을 때였다.

우리는 이렇게 만났다.(7)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나는 미카엘의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손은 강하고 엄청나게 자제력이 있었다. 나는 짧은 손가락과 납작한 손톱을 보았다.(7)

 

 

2

 

그렇게 만나 헤어지기 싫어졌고 결혼했습니다.

살림도 장만했고 서로를 도왔고 아이도 태어나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나의 결혼 생활은 순조롭지 않았고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결혼 전야부터 악몽이 계속되었습니다.

음울한 그 꿈들은 현실을 반영합니다.

 

차 한 잔 더 갖다줘요, 한나, 그리고 저 큰 등은 꺼주겠소.(165)

괜찮다면 한나, 파이프 좀 가져다 줘요. 아니, 그것 말고, 영국제로. 제일 작은 것. 그래요, 그거야, 고맙군.(166)

당신이 저 애에 대해서 그렇게 열광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거든. 사람은 열광적이 될 필요가 있다구, 한나. 가끔씩은 균형감각을 전부 잃어버려야 할 때도 있지.(167)

이제 잠자리를 봐주겠어, 한나?(168)

 

물론 좋을 때도 있지만, 미카엘은 고지식하고 몰지각하고 몰염치하고 무감각하고 매너도 없고 이기적이었고, 그에 대한 집안의 기대만 컸습니다.

 

 

3

 

거기에다가 아직 유치원생인 아이의 성격조차도 미카엘과 너무나 유사했습니다.

 

야이르는 근육과 폐로 울면서도 소리를 내어 울지는 않았다.(147)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돌처럼, 서릿발처럼 돌아설 수 있나,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한나가 그렇게 느낄수록 미카엘은 그들의 관계와 학업과 일에, 신분 상승과 생활 향상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게 되고 지칠 대로 지쳐갑니다.

음울한 일상.

부부간의 이질감과 건조함.

주부의 따분한 일들.

슬픔과 눈물.

유배되었다는 느낌.

그 심리를 반영하는 격렬한 육체적 접촉.

절대적 기만과 끔찍한 덫.

여러 가지 질병.

아슬아슬함.

…….

 

 

4

 

작가 아모스 오즈의 '표현'은 엄청나다는 느낌입니다.

첫머리에서 한나는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자신에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죽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한나의 '나의 미카엘'은 이렇게 변합니다.

 

그동안 아르데나1는 미카엘의 박사논문을 타이프해 주겠다고 지원하고 나섰다. 미카엘은 그 답례로 그녀가 연기할 수 있는 데까지 연기해 놓은 최종시험 준비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매일 저녁 미카엘은 깔끔하고 단정하게 차려입고 대학 캠퍼스 언저리에 있는 아르데나의 방으로 갔다.

인정한다. 그 모든 것이 우스꽝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계속 그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나는 동요되지 않았다. 저녁때가 되면 미카엘은 안절부절못하고 산란한 것 같았다. 그는 계속 자기 타이를, 은제 핀으로 고정시킨 그 소박한 타이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그의 미소는 피하는 듯하며 죄지은 듯했다. 파이프는 불이 붙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나를 도와주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들어주고, 털어주고, 쓸고, 무언가를 해주고, 나는 더 이상 어떤 조짐을 찾아내어 자신을 고문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 (288)

 

 

 

  1. 지질학과 동료 학생. 정열적인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