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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고성배 《한국요괴도감》

by 답설재 2020. 3. 5.

고성배 《한국요괴도감》

위즈덤하우스 2019

 

 

 

 

 

 

1

 

내게 몇 권만 가지고 떠나라면 꼭 선택해야 할 책입니다.

책을 만든 방법부터 특이한 '한국 요괴 도감'!

선철(線綴), 반양장본(本)?

"속장을 실로 매고 겉장을 접착시켜 씌운 다음 속장과 겉장을 동시에 마무른 책".

그 설명이 맞긴 한데 '등표지'(책장에 꽂아 놓았을 때 세로로 책 제목이 보이는 부분)가 없습니다. 아래위 입술이 없으면 턱뼈에 이빨이 앙상하게 붙어 있을 흉측한 해골의 모습처럼.

그 대신(등표지가 없는 대신), 아랫부분에 저렇게 다홍치마처럼 책싸개가 있어 등표지 구실을 하는 거기에 책 이름이 있어서 책싸개를 벗겨버리고 보관하긴 난처할 것입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제책(製冊)에 무슨 하자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수작업으로 정성 들여 만든 옛날 책 같아서 아주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애착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저 붉은색 책싸개입니다.

 

 

2

 

무슨 부적 같지 않습니까? ('내가 잘못 봤나?')

이 책이 도착했을 때 나는 덤으로 부적도 한 장 따라왔으니 이제 무슨 일이든 한 가지 부정스러운 일이 해결되겠구나 싶은 터무니없는 안도감 같은 걸 느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물에 빠져 죽을 운명이었던가? 아니면 불에 타 죽을 운명이어서(분명 두 가지 중 한 가지 운명이었는데 어느 쪽이었는지 나는 처음부터 그건 잘 몰랐을 것입니다.) 음력 정월 초순의 어느 날 부모님은 합동으로 부적을 내놓으며 "이걸 속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녀라!" 하셨던 기억이 이 책의 책싸개를 보는 순간 머리를 스쳤습니다.

'아! 나는 그때 불에 타 죽지 않아서(아니면 물에 빠져 죽지 않아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 있었던 것이구나!')

 

그렇지만 나는 이내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부적은커녕 단순한 책싸개(온갖 요괴 그림이 그려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 이름을 올린 요괴들의 자랑스러운 모습들로 디자인한 책싸개였던 것입니다.

실낱 같은 희망이 있긴 합니다. '저것이, 저 책싸개가 부적 구실을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미련입니다.

 

   

3

 

저승사자!(내가 그동안, 오랫동안 변함없이, 매력을 느끼곤 했던 요괴)

 

 

죽은 사람의 영을 명부로 데려가는 일종의 저승 공무원이다.

주로 검은 옷, 검은 갓을 쓴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 변화한 복식으로,

원래 저승사자는 갑옷을 입은 군병의 모습에 가깝다.

저승사자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입술은 검어 망자에게 공포심을 준다.

저승사자가 이름을 세 번 부르면 사체에서 혼이 나오고 그 혼을 저승으로 데려간다.

예부터 사람이 죽으면 사잣밥을 차리곤 했다. 밥 세 그릇, 술 석 잔,

백지 한 권, 명태 세 마리, 짚신 세 켤레, 동전 몇 닢을 채반 위에 얹어 초를 켜고

문밖에 두는 것이다. 이는 저승사자에게 잘 보이면 죽은 이가 편하게

명부로 갈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276)

 

 

《어우야담》《삼국유사》《정산종사법어(원불교 교리서)》와 민간 설화에 따르면 저승사자는 시대를 불문하고 전국 각지에 출몰해온 귀물(鬼物)로, 망자를 명부로 데려가는 일에서 일처리가 미숙할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277)

'명부의 일을, 그 중요한 일을 하면서 미숙할 수가 있나?'

내가 저승사자가 된다면 결코 그따위로 처리하진 않을 것입니다!

두고 보면 알 것입니다!

 

다음은 도깨비입니다.

도깨비! 어릴 때부터 실로 깊은 관심을 가져왔기에 목차에서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눈시울이 시큰해진 요괴.

 

 

가장 한국적인 귀물로 '망량', '나티' 등으로 불린다.

실은 귀물보다 정령에 가깝다. 주로 잘생기고 털이 많은 것으로 묘사된다.

근처에 가면 누린내가 나고 장난기가 많으며 인간을 만나면

주로 '김서방'이라고 지칭하는데, 이는 한국 성씨 중 김씨가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오래된 싸리 자루나 그릇에 깃들 때도 있고,

자연적으로 생길 때도 있다. 뿔은 '있다', '없다' 논란이 많으나

확언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조각상이나 그림에서 뿔 달린 도깨비와 비슷한

귀물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너무나 다양하게 구전돼 오고 있어

딱 단정 지어서 특정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귀물임은 틀림없다.(240)

 

 

도깨비도 저승사자처럼 시대를 불문하고 전국 각지에 출몰해온 귀물(鬼物)로, 장난기가 많으며 약간 어리석은 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해동잡록》에서는 자연의 나무, 풀. 돌 등이 정령화된 것으로 표현하였고,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비형은 귀신의 아들로 도깨비를 수족처럼 부려 하루 만에 다리를 만들기도 했으며, 《어우야담》에는 머리는 흐트러지고 머리카락 사이로 두 눈이 동그랗게 보이며 역한 누린내가 난다고 했고, 《면암집》에서는 해괴한 행동을 하는 이를 두고 "도깨비에게 홀려 실성한 사람 같았다"고 했고, 《목민심서》《백호전서》에 따르면 도깨비는 숲이나 어두컴컴한 곳에 서식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241)

 

 

4

 

이 책에는 이렇게 대략 180여 가지의 요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약 희망을 받는다면, 이 책의 요괴들을 샅샅이 살펴보고 깊이 생각을 해봐야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나로서는 우선적으로는 저승사자나 도깨비가 되고 싶다고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밝히면, 도깨비들이 누린내가 나고 장난기가 많고 실성한 사람 같고 한 건 다 좋고, 뿔도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는데(저승에서조차 고운 여성들을 골라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접었으므로), 주로 잘생겼다니 그게 아무래도 켕기는 부분이어서(그렇다고 사기를 칠 수도 없는 조건이므로) 내가 도깨비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면 제2희망으로는 저승사자를 신청할 것 같습니다.

 

저승사자는 초보 귀신이 맡는다고 써 놓은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저승사자가 되면 누구를 데리러 올까, 곰곰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어느 아름다운 시인이 소개해서 당장 구입했는데, 책을 받아서 저승사자를 찾아 읽어보고 또 그 시인을 생각했습니다. 함께 먼길을 가게 되면 그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마음이 얼마나 고운 사람인지, 주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내는지…… 온갖 것들을 다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그 시인을 데리러 올 수는 없습니다. 안타깝긴 하지만, 이미 확고하게 생각해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로 데리고 가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죽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데리고 갈 사람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건 그 누구의 명령이라 해도 거절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