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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메릴린 로빈슨 《하우스키핑》

by 답설재 2020. 1. 21.

메릴린 로빈슨 《하우스키핑》 HouseKeeping

유향란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어머니는 루스와 루실 자매를 외할머니에게 데려다 놓고 차를 몰아 호수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호수는 철도에서 일하던 외할아버지가 기차와 함께 수장되었다는 곳입니다. 아버지는?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외할머니가 죽은 후에는 잠시 외고모할머니 두 분의 보호를 받았고 마침내 막내이모 실비가 와서 자매를 보살핍니다. 실비 이모에게서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다정다감하거나 가정적이지 않았고 살림에 성의도 없고 기이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특이한 생활을 하는 여성이었습니다. 루실은 루스와 실비 이모를 두고 가정과 선생님 댁으로 떠나버립니다.

 

마을 사람들이 루스를 실비에게 맡겨두기가 어렵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자 두 사람은 집을 떠납니다. 어둡고 추운 밤, 루스와 실비 이모가 사람들이 예측도 하지 못하는 길, 호수 위 철로를 걸어 마을을 떠나는 장면은 영화 같습니다.

 

그들은 영영 떠돌이가 됩니다. '일단 그 길로 들어서게 되면 다른 길은 생각하기 어려운 법'(289)이라고 했습니다.

 

루스와 실비 이모의 이 행로는 하우스키핑(HouseKeeping)이 아닌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302, 작품해설) 하우스키핑의 처절하고 격렬한 몸부림으로 보였습니다.

 

그 이튿날, 엄마는 몹시 슬퍼 보였지만 우리가 그 이유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그다음 날에는 엄마가 떠나 버렸건만 우리는 여전히 그 이유를 몰랐다. 그것은 마치 엄마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어떤 물살에 대항해 끈질기게 자신을 똑바로 세우고 있는 것과 같았다. 엄마는 물속에 있는 사물처럼 끊임없이 흔들렸으니, 그것은 우아하면서 느릿느릿한 춤이요, 슬프면서도 사람을 도취시키는 그런 춤이었다.(287~288)

 

하느님의 모습을 한 카인이 들판의 죄 없는 땅에 음성과 슬픔을 주었다. 그러자 하느님이 그 음성을 들으시고 슬픔을 애도하셨다. 그러므로 카인은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의 모습을 한 창조자였다. 하느님은 당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시던 곳의 물을 어지럽혔고, 카인은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그의 자식들이 되고, 그의 자식의 자식들이 되고, 또 그 손자의 자식들이 되었는데, 모두들 하나같이 떠돌이였다. 또 그들이 가는 곳 어디에서나 모든 이들이, 두 번째 창조가 있었고 땅에 피가 흘렀고 땅이 슬퍼하며 노래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하느님으로 하여금 이 사악한 슬픔을 홍수로 깨끗이 씻어 내시도록 했고, 물을 연못과 웅덩이와 도랑으로 물러나게 한 다음 하늘을 비추도록 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아직도 피와 머리카락의 맛이 살짝 느껴지고 있으니……. 손바닥을 오그리고 호수 가장자리의 물을 떠먹을 때마다 사람들은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을 공중으로 들어 올린 채 호수 속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한다. 비록 자신의 팔로 자식을 떠받칠 수 있다고는 하나 곧 대홍수가 닥쳐 자식들을 다 데려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들은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짐작컨대 아기들과 아주 늙은 노인들을 비교적 무해한 존재로 여긴 것은 오로지 그들이 무력하다는 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흐르자 모든 것이 깨끗이 씻겨 나간 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살짝 풍기는 냄새 내지 얼얼한 느낌만이 물과 시내와 호수의 숨결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니, 아무리 슬프고 거칠다 하더라도 그것은 확실히 인간적이었다.

나는 물을 마실 때마다 호수의 중심이 우리 할아버지의 눈이라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무겁고 앞이 보이지 않고 거치적거리는 호수의 물이 우리 엄마의 팔다리를 이루고, 엄마의 옷의 무게를 지니고 있고, 엄마의 숨을 멎게 하고 엄마의 시력을 뺴앗아 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컨대 인간적이면서 신성을 모독한 추억과 영적 교류가 있는 것이다. 가족이란 해체되지 않을 테니까. 그들을 저주하고 추방하고 그들의 자식을 방랑하도록 내보내고 그들을 홍수와 불길 속에 빠트려 보라. 그러면 늙은 여인들이 이 모든 슬픔으로부터 노래를 지어 낸 뒤 포근한 저녁나절 현관에 나앉아 그 노래를 부를 것이다.(260~262)

 

상실감과 사랑의 덧없음, 외로움이 도도하게 흐르는 이야기여서 스토리가 단순한 것이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잔잔한 물결로 다가오는 그 느낌들이 눈앞에 다가와서는 파도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가 시로써 이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