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1》

by 답설재 2019. 12. 20.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1》 Depuis l'au-delà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19

 

 

 

 

 

 

 

1

 

〈누가 날 죽였지?'〉(15)

 

암살당한 가브리엘 웰즈의 영혼이 의문을 제기하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후 세계가 이 소설 같다면, 이와 같은 일상(?)이 계속된다면 죽는 것도 괜찮겠다, 재미도 좀 있겠다 싶었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의하면 이승과는 '좀' 다른 성격의 일상이 이어집니다.

이승과 다른 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같은 점, 다른 점보다는 좋은 점, 나쁜 점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1. 더 이상 육제적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2. 더 이상 병에 걸리지 않는다.
 3. 더 이상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4.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
 5. 더 이상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6. 더 이상 늙지 않는다.
 7. 더 이상 죽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8. 하늘을 날 수 있다.
 9. 물질을 통과할 수 있다.

10. 어디든 마음대로 가서 보고 들을 수 있다. 당연히 영화관이나 공연장, 박물관에 무료 입장이 가능하죠.\

11. 외모나 차림새를 선택할 수 있다.

12. 다른 떠돌이 영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13. 산 자들 중에서 마약 중독자나 알코올 중독자, 정신 분열증 환자처럼 오라aura가 완전히 〈밀폐〉되지 않고 틈이 있는 사람들 눈에 보인다. 이들에게는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하게 될 거예요.

14. 고양이들 눈에는 보인다. 고양이들은 떠돌이 영혼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15. 양떼들, 특히…… 선한 양떼들과 대화가 가능하다.(52)

 

이렇게 해서 위와 같은 조건('좋은 점') 속에서의 일상이 전개되지만 '나쁜 점'도 만만치 많습니다. 죽은 주제에 항의 같은 걸 할 수도 없으니까 감수해야 하겠지요.

 

  1. 더 이상 촉감이 없다.

  2. 더 이상 맛을 느낄 수 없다.
  3. 더 이상 냄새를 맡을 수 없다.
  4. 더 이상 잠을 자지 않으므로 꿈도 꾸지 않는다.
  5. 더 이상 산 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6. 더 이상 물질과의 접촉이 가능하지 않다.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울 수 없고, 그런 행동을 할 때의 감촉도 느낄 수 없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중에는 몹시 그리워질 거예요.
  7. 더 이상 성행위를 할 수 없다.
  8. 더 이상 물건을 소유하거나 가지고 다닐 수 없다.
  9. 더 이상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이건 금세 짜증스럽게 느껴져요.

10. 더 이상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다.

11. 따라서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다. 어차피 연필을 잡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당신한테는 이 점이 가장 아쉽겠죠.(53)

 

이와 같은 장단점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 하나 밝혀집니다.

이와 같은 조건 속에서의 일상이 이어진다는 것에서도 나는 위안을 느꼈습니다.

좋은 점, 나쁜 점이 열거되었는데 그 세계에서도 사기를 치고 싶은 사람, 거짓말을 하고 싶은 사람, 무엇인가 많이 갖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물질과의 접촉이 가능하지 않지만 무엇이든 차지하고 싶은 습성이 있는 인간은 거기에서도 뭔가를 갖고 싶긴 하겠지요? 2권에 이어지는 이야기까지 읽어보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요.

 

 

  3

 

말하자면 이 소설은 영매와 영혼의 교류로써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별 쓸데없는 얘기 좀 하지 말라고 할 사람도 많겠지만 나는 그게 재미있고 고마웠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오류부터 짚어 볼게요. 당신은 인간이 죽으면 영혼의 90퍼센트가 환생하고 나머지 10퍼센트가 소위 떠돌이 영혼이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떠돌이 영혼의 범주에 자살자들과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포함된다고 했죠.」

「티베트 『사자의 서』와 이집트 『사자의 서』에서 찾아낸 수치들이에요.」1

「사실은 그 반대예요.」

「진짜예요?」

「그 반대가 더 논리적이죠. 이유는 지극히 단순해요. 당신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신의 집〉과 자신이라는 사람에 대해 쌓아 올린 신화에 향수를 느끼기 때문이죠. 〈우리는 스스로 만든 자신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라는 말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을 거예요. 누구나 자기 과거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걸 단박에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가 없는 거예요. 새로운 삶이 과거의 삶만큼 흥미진진하지 못하리라고 지레짐작하니까.」(50~51)

 

 

  4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죽음'에 대한 백과전서를 하나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자기 자신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무의식 속에서 자기 자신의 불멸을 확신한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면지에 이 아포리즘을 제시해 놓기도 했고, 이야기 속에도 "산 자들에게 소리쳐 경고해 주고 싶다. 〈당신들은 정신을 가진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가진 정신이다.〉"(265)와 같은 경구들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또 이야기 군데군데에서 가브리엘 웰즈의 조상 '에드몽 웰즈'라는 인물이 썼다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12권을 인용한 형식의 흥미로운 지식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 엉뚱해서 유명한 죽음들

* 폭스 자매(근대 심령술 운동의 창시자)

* 영혼의 무게

* 플라나리아

* 미라가 된 강도

* 건강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다

* 공식 증인이 된 유령

* 일본 소쿠신부쓰 승려들과 죽음

* 헤디 라마

*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는 과학자

* 심령술에 빠진 작가 코넌 도일과 회의주의자 마술사 해리 후디니

* 하일브론의 유령

 

 

 

.................................................................

1. 이탤릭체는 영혼이 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