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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귀가 가장 늦게 닫혀요" (2)

by 답설재 2021. 1. 26.

1분이 지났을까, 웅이에게 간 원장님이 "웅이 죽었나봐요!" 외쳐서 쫓아가 보니 웅이 입이 떡 벌어져있고 혀가 쑥 나와 있었다. 입 안에서 빠져나오는 독한 냄새가 훅 끼쳤다. "죽은 거죠? 그런 거지요?" "아, 예, 그런 것 같아요." 원장님은 바닥에 털썩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웅이를 끌어안았다. "웅아! 웅아!" 부르짖으면서 웅이를 흔들기에 그러지 마시라고, 그러면 웅이가 힘들다고 말렸다. 원장님은 웅이 얼굴에 얼굴을 부비며 "사랑해! 웅아, 사랑해!"라고 부르짖으며 막 울었다. "미안해, 웅아. 나를 불렀는데, 그때 얼른 달려왔어야 했는데, 혼자 가게 했네!" "아니에요. 여기 가까이에서 엄마 소리 엄마 냄새 다 맡으면서 자기가 살던 데서 간 거잖아요. 고통 없이 편하게 간 거예요. 지금 원장님 목소리 다 듣고 있을 거예요." 원장님은 내 말을 믿고 싶으신 듯 고개를 막 끄덕였다.

 

 

황인숙 시인의 에세이 「저마다 사연 많은 삶을 살고 있네」(《현대문학》2020년 12월호. 부분)에서 본 이야기다. 미장원 주인의 개가 늙어 죽는 장면이다.

이 블로그의 다른 글 "귀가 가장 늦게 닫혀요"를 보는 사람이 많아서 이 이야기도 읽는 순간 옮겨놓고 싶었다. 개의 경우를 이야기한 시인의 얘기를 보더라도 믿을 수 있는 얘기라는 걸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하물며 사람의 경우는 오죽하겠는가 싶기도 했다.

 

 

 

2021.1.24.

 

 

세상을 떠날 때 귀가 가장 늦게 닫히는 걸 아는 이가 귓가에 쓸데없는 말 말고 좋은 말을 하며 보내주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그렇다고 굳이 내 아들딸이 이 글을 봤으면 하는 건 아니다. 전에는 더러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건 욕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어디 아무나 바랄 수 있는 일이겠는가. 내가 어떻게 그걸 바랄 수 있겠는가. 나 같은 경우에 어떻게 나의 일들이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겠는가.

 

내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가는 내 삶의 성적표대로이고, 나는 아무래도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는 없다. 그동안 내 뜻대로 된 일도 찾기 어렵고 나에게 그런 행운이 찾아온 적도 거의 없다.

 

다만 누가 "파란편지"의 블로그에서 본 글을 떠올리며("파란편지"를 떠올리지는 않더라도) 세상을 떠나는 이의 귀에 따듯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귀가 가장 늦게 닫혀요" blog.daum.net/blueletter01/7639126#n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