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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이드는 것 병드는 것

by 답설재 2021. 7. 15.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늙고 병드는 것에 대한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

저도 나이가 많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더' 혹은 가능만 하다면 오래오래, 그러다가 이 세상이 생긴 이래 유일한 사례로 영영 죽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본능일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한때의 저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젊은이가 이 세상에는 한두 명? 글쎄요., 몇 명일지는 모르지만 전혀 없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오만방자한 생각을 할 때는 죽음이란 주변의 문제이지 결코 저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성적으로는 요양원까지는 가지 않고 조용히, 가족들이 아직은 아니라고 할 때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확실히 노쇠와 사망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어서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는 구체적인 주제인 것이 분명합니다.
아프다고 하면 안타깝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느낍니다.

(후략)

 

 

블로그로 맺어진 인연은 깊을 수도 있지만 한없이 가벼울 수도 있습니다. 하나마나한 얘기입니다.

문득 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던 이가 발길을 끊으면 그걸 알아채기도 하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지나기가 일쑤였습니다.

2018년 봄, 어느 불로그에 가서 위와 같은 댓글을 달았습니다.

먼 나라에 가서 사는 분이었는데 잠시 귀국했을 때 식사를 대접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부모 중 한 분이 아프다는, 아무래도 죽음을 앞둔 듯하다며 노쇠와 죽음의 길에 대한 글을 쓴 걸 본 것입니다.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톨스토이)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분명히 인정했지만 여전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

분명 카이사르는 인간이었고 따라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 나 바냐, 이렇게 나만의 감정과 생각을 가진 이반 일리치, 나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돈이 많거나 적거나, 권력이나 지위가 대단하거나 어떻거나 모든 사람은 다 늙고 병든다는 사실은 엄연하고도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밤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점점 더 가벼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