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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바다에서의 죽음

by 답설재 2021. 2. 28.

그는 거의 새벽 2시까지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자동차의 문을 잠그고, 창문은 올려놓고, 불빛을 끄고, 라디에이터의 격자무늬가 절벽의 모서리 너머 텅 빈 공간으로 투사되게 해놓고서. 어둠에 익숙해져 있는 그의 눈은 바다 표면이 호흡하는 것에, 즉 광대하지만 들떠 있는 거인이 잠을 자면서 악몽 때문에 주기적으로 깨어나는 것처럼, 계속해서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 호흡에 매료되었다. 가끔 화가 난 광풍처럼 소리가 달아나 버렸다. 가끔 그것은 열에 들떠 헐떡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해안선을 갉아먹고는 그들의 전리품을 가지고 멀리 후퇴하는, 밤 파도 소리가 다시 들렸다. 여기저기 거품이 이는 잔 물결은 어두운 표면 위에서 반짝거렸다. 어떤 때에는 푸르스름한 우윳빛의 광선이 하늘 높이 별들 사이로, 혹은 아마도 멀리서 떨리고 있는 해안 경비 탐조등 사이로 지나가고 있었다. 안팎을 나누고 있는 피부 표면은 얼마나 얇은가. 뼛속 깊이 긴장을 느끼는 순간에 자기 머릿속으로 바다가 들어오는 느낌을 경험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칼로 그를 위협했던 멍청이에게 겁을 주기 위해 권총을 꺼냈던 아테네에서의 폭풍우 치던 그날처럼. 그리고 코펜하겐에서, 약국의 계산대에서 담뱃갑에 숨겨 온 미니 카메라로 악명 높던 아일랜드 테러리스트의 사진을 마침내 겨우 찍었던 그날처럼. 바이킹 호텔에서 잠이 들었던 그날 밤, 그는 근처에서 여러 발의 권총 소리를 들었지만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모든 것이 조용했지만 덧창의 틈새로 햇빛이 들어오기 전에는 나가고 싶지 않았다.

 

 

소설 《여자를 안다는 것》(아모스 오즈, 181)의 한 장면입니다. "그의 눈은 바다 표면이 호흡하는 것에, 즉 광대하지만 들떠 있는 거인이 잠을 자면서 악몽 때문에 주기적으로 깨어나는 것처럼, 계속해서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 호흡에 매료되었다......"

 

문득 내가 본 바다들이 떠오릅니다.

옛일을 떠올리고 있는 요엘 라비드를 따라다녀야 하는데 내가 보았던 바다들 때문에 나는 라비드와 헤어져 보던 책을 내려놓았습니다. 나의 그 바다들도 라비드의 바다처럼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바다와 마주하면 바다는 내가 오기 전에도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이게 바다야! 바다... 내가 오기 전에도 흐르고 있었을 바다. 나는 뭘 하고 있었지? 이 바다는 이렇게 온 힘을 다해 흐르고 있었는데 나는 터무니없이 이제 바다로 온 거야. 내가 어떻게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지?'

 

바다는 내가 어디에 있든 그렇게 흐르고 있다는 걸 기억하도록 부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다음에 갔을 때는 오랫동안 그걸 확인하지 않은 것을 상기하게 하고 뉘우치게 하고 그렇게 해서 나는 나의 빚이 늘어나는 걸 깨닫게 했습니다.

 

나의 그 빚은 어쩔 수 없이 영원으로 흐르고 흐르고 흘러서 그 바다만큼 불어날 것입니다. 내가 이승을 떠나 오래오래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렇게 흐르며 내 빚을 늘여갈 것입니다.

내가 죽어 있는 시간에도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거나 말거나 그렇게 흘러갈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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