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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는 왜 아플까?

by 답설재 2021. 2. 21.

 

 

 

심장병이 걸려 응급실에 실려가고 두 차례 핏줄도 뚫고 했다는 걸 주변에서 알게 되고, 무슨 자랑거리나 생긴 것처럼 "이렇게 지낸다"며 이 블로그에 쓰고, 그렇게 지내다가 내 건강을 기도한다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기도? 나를 위해? 놀라웠습니다.

우선 나는 정말 기도를 필요로 하는가, 공연한 일 아닌가 싶었습니다. 절실하면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도 흔히 기도를 하게 된다는 것도 알고는 있고 쑥스럽지만 간절히 기도한다고 해서 효과가 나타나는 건 아니라는 걸 오십 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단 하루이틀만이라도 말미를 달라는 기도를 하며 직접 확인해 본 적도 있었습니다. 구태여 효과를 바라지 않거나 효과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기도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걸 덥석덥석 들어주면 세상의 '질서'라는 게 무너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닭살이 좀 돋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기도를 받을 만한 짓을 한 적이 전혀 없이 살아와서 그럴까요? 기도를 해준다는 그 사람에게 차후 보답할 길이 막연하기도 하고 그런 건 아예 생각해본 적 없이 살아와서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보답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고 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뭘 받으면 온전히 다 갚으며 살아왔다는 건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든 좀 갚아야 마음이 편한 건 사실입니다.

 

감기도 사람에 따라 그 증상이 천차만별이듯 심장병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내 말만 들어봐도 병원 신세를 지고도 멀쩡한 사람이 많은데 내 경우엔 회복이 왜 이렇게 어렵나 싶고, 온몸이 나무도막으로 이루어진 피노키오 같아서 '사람처럼' 그것도 활기차게는 아니고 겨우 노인처럼 움직이는데도 힘이 들고 아픕니다.

암에 걸린 사람도 일어서는데 나는 그 의지라는 게 박약해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고통이 특히 심하게 느껴질 때는 기도해 주고 있다는 그분들에게 그 기도를 좀 더 강력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기도를 더 세게? 가족도 아닌데? 가족이라 하더라도 가족 나름 아니겠습니까? 누가 병든 부모를 소홀히 한다고 하면 흔히 자신은 효도를 다하는 양 그런 놈은 자식도 아니라고 비난하지만 세상에 그런 자식이 어디 한둘입니까? 그게 세상인데 남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내가 아프다" 하면 처음 한 번은 놀라워해 주는 게 세상인심이지만 두 번만 그러면 귀찮아지는 게 당연한데 나를 위해 기도를 더 세게 해 달라니, 그건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결국 나를 감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신문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겨울 나그네』로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던 소설가 최인호 씨는 암투병 3년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터널의 출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적도 아니다."

이 메시지를 신문에서 보고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병원을 들락날락했다더니 요즘은 어때요?"

"아직 환한 곳으로 나서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한 건 아닙니다."

 병든 사람은 대부분 그렇게 지내다가 조만간 결국 가고 마는 것 같습니다. 최인호 씨에겐 정말 미안한 소리지만 나에게는 그리 미안할 것도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최인호 씨의 이야기는 가슴을 찌르며 다가왔습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는 내 이야기도 최인호 씨 이야기도 심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응? '파란편지'는 누군가 모르겠고, 최인호 씨가 아파? 암에 걸렸어?" 그 정도겠지요? 그렇다면 나도 흘러가는 것처럼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리 조심하며 사십시오. 아프더라도 부디 감기몸살 정도로 끝나는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겠습니다. '왜 아플까?' 그런 생각을 깊이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블로그 '임시보관함'에서 2011년 5월 5일에 써놓은 이 이야기를 발견했다. 10년이 된 것이다.

그 당시 누군가로부터 핏줄 속에 집어넣은 그 스턴트('풍선')는 십 년은 버텨 줄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십 년! 어쨌든 나는 십 년 이상 더 살았지만 어언 그 '십 년'이 되었으니 심각한 일이 된 것이다. 그래 얼마 전에 친절해 보이는 전문의로부터 6개월치 처방전을 받으며 물어봤다. "선생님, 스턴트라는 건 수명이 십 년 정도인가요?"

아직 젊디 젊고 고운 그 여성 전문의는 가련해 보이는 노인이라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 스턴트들은 아주 좋은 것들이라고 했다.

 

나는 지난 십여 년에 많은 일들을 겪었다.

사람들 때문에 서러움도 느꼈고 허망하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했고 억울하기도 했고 아주 힘들어서 '내가 어쩌다가 이런 신세로 전락했는가?'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좀 깨닫기 시작했고 자꾸 더 나지막해지며 살게 된다는 것도 알아서 받아들이게 되었고, 반면에 이렇게 좋은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싶은 특별한 일도 있었다.

그러므로 지난 십 년은 다른 어떤 십 년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이 십 년이 없었다면 나는 허수아비 유령이 되어 구천을 헤매고 있을 것이므로 10여 년 전 그때 저승으로 갔더라면 큰일 날 뻔한 것이었다.

 

나는 이런 몸으로라도 또 십 년을 더 살아보면 좋겠다.

그러면 인간이 얼마나 약아빠질 수 있는지, 인간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이고 사악하고 자기만 알고 혐오스럽고 저속할 수 있는지, 나는 또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서 혹 또 다른 즐거움과 기쁨이 있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면서 내 사고는 조금 더 깊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목숨을 부지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라면 곧 떠날 태세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세월이란,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