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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봄이 폭발했다"

by 답설재 2021. 3. 5.

 

 

오늘이 경칩(驚蟄)이죠? 개구리가 봄이 온 것도 모르고 늦잠을 자고 있다가 놀라 깨어난다는 날.

봄이 진짜 완연했습니다.

하기야 입춘 지난 지 한 달이잖아요? 그 사이에 우수(雨水)도 지났고요.

봄은 늘 이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왔던가요?

지난 1일에는 강원도를 중심으로 폭설이 내려서 눈에 갇힌 사람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일곱 시간을 추위에 떨었다는데 그렇게 오들오들 떨며 "봄인데 이 고생이네" 했겠습니까? "아무래도 아직은 겨울이야" 했기가 십상이지요.

그런데 사나흘 후 '완연한 봄'이라고 하면 이건 눈 깜빡할 사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봄은 슬며시 오는 게 아니라 "짠!" 하고 불쑥 얼굴을 내민 거죠.

그러니까 개구리도 "앗! 봄이야?" 하는 것이겠지요. 

 

말벌과 파리 떼들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요엘에게는 너무 과장된 것으로 느껴지는 향과 색채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갑자기 봄이 폭발했다. 정원은 넘쳐흐르는 듯 보였고 꽃송이들은 벌어지고 있었고 초목들은 들끓었다. 과실수들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3일 후에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심지어 현관의 화분에 심은 선인장도 마치 자신의 혀로 태양에게 말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주홍색과 불꽃같은 오렌지빛 노란색을 분출했다. 무엇인가 부풀어 오르는 것이 있었고, 요엘은 귀 기울여 열심히 들으면 거품이 일어나는 것을 들을 수 있다고 상상했다. 마치 식물의 뿌리가 뾰족한 갈퀴로 바뀌어 캄캄한 땅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마침내 검은 수액을 빨아들여 둥치와 줄기의 관을 통하여 위쪽으로 그것을 쏘아 활짝 핀 꽃과 잎에 그것을 제공하고 눈을 멀게 하는 빛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겨울 초에 산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빛은 요엘의 눈을 피곤하게 했다.

요엘은 울타리 옆에 서서 사과나무와 배나무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리구스트럼, 올리엔더, 부켄빌리아, 그리고 히비스커스 관목들은 그에게 따분하고 저속한 인상을 주었다. (...)

 

아모스 오즈라는 작가가 그린 봄의 모습입니다(소설 "여자를 안다는 것", 215).

작가들은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스토리의 전개와 직접적 관련이 적은 주제로 자신의 실력을 한번 뽐내는 기회를 갖는 것인데 어떤 소설가는 몇 번이나 그렇게 해서 '지금 장난하나?' 싶게 합니다. 누구라고 말은 하지 않겠지만 심지어 어느 위대하다고 소문난 소설가는 서두의 이삼십 페이지를 그렇게 해놓아서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은 초장에 지쳐버려서 '에이!"하고 아예 책을 집어던지게 했습니다.

 

봄 얘기를 하다가 딴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모스 오즈는 봄이 무르익는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봄이 "짠!"하고 얼굴을 내밀었으니, 이번에는 폭탄이 터지듯 여기저기서 "펑!" "펑!" 혹은 "우르르 쾅!!!" 하고 온 천지를 흔들어 제압할 날이 머지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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