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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죽음56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강초롱 옮김, 을유문화사 2021 죽음은 누구에게나 가장 무거운 숙제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지 않은 척해봐야 별 수 없겠지. 시몬 드 보부아르와 그녀의 어머니는 서로를 부정해 온 사이였다. 딸이 사르트르와 계약결혼을 했으니(그것만도 아니긴 했지만) 그럴 수밖에. 어머니는 그랬겠지. "우리 집안에서 계약결혼이라니! 말이 돼?" 그러나 시몬 드 보부아르가 죽어가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된다. 아주 편안한 죽음? 그런 죽음이 있을까 싶진 않고 죽음의 순간에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리치료사가 침대로 다가와 이불을 걷어 올리고는 엄마의 왼쪽 다리를 붙잡.. 2024. 2. 14.
문성란(산문) 「어느 무명 시인에게 배운 것」 시처럼 읽혔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 같은데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의도하지 않았을 듯한 기승전결(起承轉結)이 보이는 것도 신기했다. 떠난 이가 있고 보낸 이가 있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영영 떠난 이도 보낸 이와 지켜본 이들도 다 행복한 사람들이었다(부러웠다). 지켜본 이 중에는 이 글을 쓴 시인이 있다(늦었겠지, 시인이 아니어도 시인처럼 살아보려고는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어느 무명 시인에게 배운 것 / 문성란 버스를 기다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래된 습관이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 보일 때도 있고, 구름송이를 띄운 하늘이 보일 때도 있고, 더러는 울음을 머금은 것처럼 어둡게 내려앉을 하늘일 때도 있으나 오늘은 빈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시린 하늘이다. 가지에 꽃눈을 움켜쥐.. 2023. 10. 31.
그녀를 위한 눈물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을 때는 좀 일러서 단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녀였고, 말이 없었고, 너무 가라앉은 분위기여서 한 번만 더 쳐다보고는 그만 봤습니다. 예사로운 장면이었다면 마음놓고 몇 번 더 살펴봤겠지요. 어머니는 많이 늙었고, 딸은 삼사십 대?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고 냉랭한 표정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서 나가면서도 그들 사이에는 단 한 마디 대화도 없었습니다. 딸이 계산을 하고 돌아서는 순간 바닥에 무거운 물건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두 명의 여 종업원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습니다. 그런데도 딸과 어머니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출입구와 홀 사이에 파티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한참만에 일어나는 듯했습니다. "괜찮아요.. 2023. 9. 27.
"사람의 일생은 대체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람의 일생은 대체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유종호, 「산등성이의 남향 참호」 『현대문학』 연재 《회상기回想記-나의 1950년》 제10회(2015년 10월호, 206쪽). "한국 인구에 다섯을 기여한 뒤 심장마비로 4·19 나던 해 쉰이 채 안 된 나이로 세상을 뜬 작은이모의 전성시대"를 이야기하며. 나의 어머니도 마흔여덟에 세상을 떠났다. 그 죽음은 죽어서도 흔들렸다. 나도 따라 흔들렸다. 2022. 2. 20.
『상실 수업』⑵ 편지쓰기(발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데이비드 케슬러 『상실 수업』 김소향 옮김, 인빅투스, 2014 때로는 과거를 우리 입맛에 맞게 만들어 그것을 정화하려고 한다. 우리의 실수가 밖으로 퍼져나가기를 원치 않으며 특히 누군가를 잃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이런 작업을 거치다 보면 그 사람의 전부 그리고 장단점, 밝고 어두운 면 모두 포함한 그대로의 모습을 애도할 기회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150) 슬픔은 밖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고통과 슬픔은 오직 표현할 때만이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사랑한 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실천하기 편하며, 단어를 밖으로 꺼내어 언제든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다. 의사소통을 상실해버린 고인이 된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써야 하며 심지어 왜 편지를 써야 하는가? 기억나는 만큼 멀리 과거.. 2022. 2. 10.
앨리스 먼로 〈물 위의 다리〉죽음 앞에서 만난 사람 앨리스 먼로 소설 〈물 위의 다리〉 소설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뿔 2007) 마흔넷 유부녀 지니가 캄캄한 밤에 웨이터 리키와 함께 있다. 처음 만난 사이이다. "보여 드릴 게 있어요. 아마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걸 보여 드릴 게요." 그가 말했다. 이전이었다면, 이전의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지금쯤 겁이 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실 예전의 정상적인 그녀라면 애당초 이렇게 따라나서지도 않았겠지만. "호저예요?" 그녀가 물었다. "아뇨, 호저는 아니에요. 호저만큼 흔한, 그런 게 아니에요. 적어도 제가 아는 한은요." 1킬로쯤 더 가서였던가, 그가 전조등을 껐다. "별 보여요? 저기, 별이요." 그가 물었다. 그가 차를 세웠다. 처음에는 사방이 그저 고요로 가득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아주.. 2021. 11. 28.
혼자 가는 길 여기는 산으로 둘러싸인 곳입니다. 동쪽으로는 마당 건너편 계곡이 숲으로 이어집니다. 새들의 희한한 대화를 들을 수 있고 모기 같은 벌레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저녁을 먹고 현관을 나서는데 때아닌 매미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둠이 짙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워낙 조용하니까 내 이명(耳鳴)이 또 장난을 하나?' 멈춰 서서 작정하고 들어 보았습니다. 날개로 땅을 쓰는 소리도 함께 들립니다. 아! 소리는 바로 발밑에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얼른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켰습니다. 이런! 날개를 퍼덕이며 매미가 울고 있습니다. 구월 초사흘, 한로(寒露)에 매미라니! 하루하루 기온이 떨어져 그에게는 치명적일 것입니다. '저 숲으로부터 매미소리가 들려온 것이 칠월이라면 팔월 한 달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다가 여기를 찾.. 2021. 10. 13.
나이드는 것 병드는 것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늙고 병드는 것에 대한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 저도 나이가 많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더' 혹은 가능만 하다면 오래오래, 그러다가 이 세상이 생긴 이래 유일한 사례로 영영 죽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본능일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한때의 저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젊은이가 이 세상에는 한두 명? 글쎄요., 몇 명일지는 모르지만 전혀 없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오만방자한 생각을 할 때는 죽음이란 주변의 문제이지 결코 저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성적으로는 요양원까지는 가지 않고 조용히, 가족들이 아직은 아니라고 할 때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확실히 노쇠와 사망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어서 남의 일로만 .. 2021. 7. 15.
바다에서의 죽음 그는 거의 새벽 2시까지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자동차의 문을 잠그고, 창문은 올려놓고, 불빛을 끄고, 라디에이터의 격자무늬가 절벽의 모서리 너머 텅 빈 공간으로 투사되게 해놓고서. 어둠에 익숙해져 있는 그의 눈은 바다 표면이 호흡하는 것에, 즉 광대하지만 들떠 있는 거인이 잠을 자면서 악몽 때문에 주기적으로 깨어나는 것처럼, 계속해서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 호흡에 매료되었다. 가끔 화가 난 광풍처럼 소리가 달아나 버렸다. 가끔 그것은 열에 들떠 헐떡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해안선을 갉아먹고는 그들의 전리품을 가지고 멀리 후퇴하는, 밤 파도 소리가 다시 들렸다. 여기저기 거품이 이는 잔 물결은 어두운 표면 위에서 반짝거렸다. 어떤 때에는 푸르스름한 우윳빛의 광선이 하늘 높이 별들 사이로,.. 2021. 2. 28.
"귀가 가장 늦게 닫혀요" (2) 1분이 지났을까, 웅이에게 간 원장님이 "웅이 죽었나봐요!" 외쳐서 쫓아가 보니 웅이 입이 떡 벌어져있고 혀가 쑥 나와 있었다. 입 안에서 빠져나오는 독한 냄새가 훅 끼쳤다. "죽은 거죠? 그런 거지요?" "아, 예, 그런 것 같아요." 원장님은 바닥에 털썩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웅이를 끌어안았다. "웅아! 웅아!" 부르짖으면서 웅이를 흔들기에 그러지 마시라고, 그러면 웅이가 힘들다고 말렸다. 원장님은 웅이 얼굴에 얼굴을 부비며 "사랑해! 웅아, 사랑해!"라고 부르짖으며 막 울었다. "미안해, 웅아. 나를 불렀는데, 그때 얼른 달려왔어야 했는데, 혼자 가게 했네!" "아니에요. 여기 가까이에서 엄마 소리 엄마 냄새 다 맡으면서 자기가 살던 데서 간 거잖아요. 고통 없이 편하게 간 거예요. 지금 원장님 .. 2021. 1. 26.
버나드 오티스 《품위 있게 나이 드는 법》 버나드 오티스 《품위 있게 나이 드는 법》 박선령 옮김, 검둥소 2020 품위 있게 나이 들기. 누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까. 다 운명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한 대로 하면 품위 있어질 것 같기는 하다. 우리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죽음과 그것이 우리 삶에서 하는 중요한 역할에 대해 알려줄 필요가 있다. 죽음은 실재하는 것이므로 얼마든지 말해도 괜찮은 단어이고, 죽음이 우리 삶의 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면 그 여정이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삶을 여행하는 동안 매일같이 행복한 경험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36)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이 자신이나 가족의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슬픈 일이다. 그리고 자기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 2021. 1. 9.
결별(訣別) 2009년 11월 2일, 나는 한 아이와 작별했습니다. 그 아이의 영혼을 저 산비탈에 두었고, 내 상처 난 영혼을 갈라 함께 두었습니다. 이 포스팅을 새로 탑재하면서 댓글 두 편도 함께 실었습니다. .............................................................................................. …(전략)… 우리는 흔히 학생들에게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애에게 교육은 무엇이고 장래는 다 무엇이었을까. 장래는 고사하고 하루하루 얼마나 고달픈 삶으로써 고사리 같은 짧은 인생을 채우고 마감하게 되었는가. 그걸 살아간다고, 어린 나이에 뿌린 눈물은 얼마였을까. 그러므로 교육의 구실은 우선 그날그날.. 2020.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