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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자신의 죽음이 남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게 하라고?

by 답설재 2024. 8. 27.

 

 

 

 

소노 아야코는 나이 들고 죽는 것에 대해 요모조모 구체적인 생각을 써서 《계로록(戒老錄)》(1972)이라는 책을 내었는데 123가지의 부탁 중 맨 마지막의 것은 "자신의 죽음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것.

죽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만날 수가 없고, 어떠한 이야기도 실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당장 내게 닥쳤다고 하면 온갖 일들이 다 그렇겠지만 이 부탁은 생각만 해도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돈, 지위, 이름 등을 남기라는 것이 아니다.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살다가 죽었다는 실감을 자식들에게 심어주라는 것이다.

종종 '어차피 너희들은 내가 죽는 것을 바라고 있을 테니까'라는 식의 비위를 긁는 말을 하는 노인들이 있으나 이러한 말은 인간의 심리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상당히 머리가 노화한 경우라거나 둘 중 하나이다.

분명히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마찰을 빚는다. 그러나 그런 것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부합되지 않는 바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식량의 양이나 주거 면적이 극도라기보다 비정상적으로 줄어드는 경우라든지,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의 정신적 압박이 가해진 경우가 아닌 한 타인의 죽음을 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리를 지탱해 주는 모든 구조적 짜임새가 필연적으로 생존의 방향을 향해 있기 때문이며 우리들이 특별히 숭고한 정신 등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생명에 가담하게 되어 있다. 쉽게 말해서 죽음만은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나 사회적인 범죄 사건 등으로 이렇게 생존의 방향을 향하고 있어야 할 인간 본성이 파괴되어 버린 듯한 인간이 많이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예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노인들에게 주어진 의무 또한 빨리 죽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수명을 다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지 않은 사이라도 노인이 천수를 다하지 못하게 되면 누구나 불쾌하다.

70세를 넘으면 언제 죽어도 좋으므로 만일의 경우 모두 술 마시고 노래를 불러달라고 유언하는 노인도 있다고 한다. 장례식에서는 아무도 울지 않아야 한다. 전력을 다해서 살아왔고 나의 삶과 온 힘을 다해 싸워왔으므로 여한은 없다는 정도가 된다면, 죽더라도 살아남은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좀 어정쩡한 내용이 없진 않지만 어쨌든 전력을 다해서 살라는 것 아닌가. 여한이 없도록 온 힘으로 삶과 싸워 가라는 것 아닌가.

그것이라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어려운 걸까?

이젠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