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사키 시키부 《겐지 이야기 ①》
김난주 옮김, 한길사 2010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를 쓴 그 무라사키 시키부의 작품(소설, 모노가타리)으로, 그 일기에는 당시의 '천황' 이치조, 그의 비 '중궁' 쇼시도 이 작품을 관심을 가지고 재미있게 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상황마다 주인공 히카루 겐지가 여색을 밝히는 바람둥이여도 무난하도록 설정된다. 가령 가리쓰보 제(帝)는 사람들의 시기, 모함을 피하게 해주려고 황자 겐지에게 근위 중장의 벼슬을 주어 신하로 삼는다.
기리쓰보 제는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신분이 낮은 기리쓰보 갱의에게 사랑을 쏟는다. 갱의는 황자를 낳지만 천황의 그 특별한 총애 때문에 질투와 빈축 속에서 병들어 죽는다.
제는 황자를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고, 황자는 절세의 미모와 총명함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빛나는 님'(히카루 겐지)이라는 칭송을 받는다.
기리쓰보 제는 갱의를 닮은 선황의 딸 후지쓰보를 후궁으로 맞이했는데 겐지는 어머니를 닮은 젊디젊은 후지쓰보에게 동경심과 사랑을 느낀다.
성인식을 치른 겐지(12세)는 바로 좌대신 딸 아오이(16세)와 결혼하지만 아오이는 마음을 열지 않는다.
열일곱 살이 된 겐지는 '기의 수'의 아버지의 젊은 후처 우쓰세미와 억지로 관계를 맺은 후 그녀의 여동생과도 정사를 치르고, 유모를 만나러 간 밤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몸과 마음을 온전히 맡기는 이웃집 여인(유가오)을 만나는 등 왕성한 연애 행각을 경험한다. 그러나 돌연 그 유가오가 사망하자 겐지는 그녀를 잊지 못한다. 유가오는 '가련하고, 수수께끼에 쌓여 있고, 얌전하면서도 성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여인이었고, '남자가 하라는 대로 몸도 마음도 바쳐 설탕처럼 남자를 녹이고, 남자의 빈틈을 메우려 물처럼 몸을 밀착해 오는' '마치 자아라는 것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였다(해설, 307).
겐지는 정부인 아오이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 억지스러운 연애, 방해물이 있는 연애, 허락되지 않는 사랑 등 마음고생이 심한 사랑과 연애에 도전'하며 정열을 불태운다(해설, 305). 심지어 시녀들의 수군거림을 보면, 겐지는 이미 아버지의 후궁 후지쓰보와도 육체적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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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이야기('源氏物語')는 장장 10권인데 더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을 찾은 것은 두 가지 의미 때문이었다.
# 1 '겐지 이야기'는 일본문학의 걸작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훌륭한 장편소설의 하나로 꼽히며, 겐지 왕자가 여러 여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로서 지극히 세련되고 우아한 귀족들의 사회를 잘 그려냈다고 소개되었다.
# 2 또 한 가지는 세이 쇼나곤의 《베갯머리 서책(枕草子)》해제에서 발견한 소개이다.
콧물을 계속 닦으면서 뭔가를 말하려고 애쓰는 것. 눈썹 뽑을 때의 얼굴 표정.
81번 장단 '어머나 안됐어라─동정심을 자극하는 것'은 이 두 문장민으로 되어 있는데, 해제를 보면 원제목은 '슬픔을 알리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헤이안 시대의 대표적인 미의식으로 대상물과의 일체감에 의해 비애감을 느끼는 감정'이며, 《겐지 모노가타리》의 주조가 되는 감정이라고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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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일본문학의 걸작? 대상물과의 일체감에 의해 비애감을 느낀 헤이안 시대의 미의식?
멋지긴 해도, 내가 지금 그런 것에 이렇게 느슨해져 버린 독서의 잔력(殘力)을 소비해도 될는지가 의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읽지 않으면 안 되는 '답설재의 필독도서' 같은 목록이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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